염라대왕님,
이번 저의 장례식에 바쁘신 와중에도 찾아주셔서......상투적인 인사말이라 생략하겠습니다.
여기 먼저 대왕님께 송장 하나 보냅니다.
독한 약물을 먹고 죽은 놈은 아니니 역겨워하지 마시고, 그렇다고 한평생 잘 살다 간 놈도 아니고, 가진 것이라곤 이승에서 쓰다 남은 몸뚱이뿐이라, 그 흔한 명부전에 이름 석 자도 없으니, 청문회 때 너무 몰아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관공서에서 발급되는 압류예고통지서는 더더욱 아니니,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려 보내지도 마시고, 매일 반복되는 과도한 업무에 지쳐, 실적이나 채우려고 아귀 지옥에도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승에서, 여기저기 쪽쪽 빨려 뼈마디라도 온전하게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으니, 한번 확인해 보시고 부족한 뼈라도 있다면, 대왕님의 영원한 사랑으로 채워 주시기 바라며,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압니다만, 워낙 가난하게 살다 간 놈이니, 사십구재라도 직접 챙겨 주시면 이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물론, 대왕님도 이승으로부터 수없이 배달되는 우편물에 이미 심신이 지쳐 있는 줄로 압니다만,
이곳 사정은 그곳보다 더욱더 열악한 환경인지라, 그래도 나쁜 짓 안 하고 성실하게 살다 간 놈이고, 내라는 온갖 세금 납부기한 넘긴 적 없고, 월급도 적게 받는 놈이 건방지게 많이 냈다고 연말정산 시 되돌려 받기도 했답니다.
대왕님,
청탁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노동이라면 신물이 나는 놈이니 놀고먹는 자리라도 하나 있으면 그곳으로 보내 주시고,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저승사자 자리라도 잠시 맡겨 주시면, 대왕님의 권력을 팔아 남의 돈 갈취하는 놈들 모조리 짓밟아 놓겠습니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목 좋은 재개발 지역의 책임자로 보내 주시면, 저승 제일의 휴양소를 만들어 이승의 삶에 찌든 사람들에게, 평생 무료로 대여해 주는 자선사업이나 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대왕님의 댁내 대소사가 있을 시...... 으레 하는 말이라 생략하겠습니다.
ps : 그럼, 다시 뵐 때까지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코로나-19 빨리 잡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