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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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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Jun 29. 2021

우리는 천사로 태어나 전사로 살아간다.


나는 핑크를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분쟁 해결을  업무로 하는  직업은 필자를 워리어로 만든다.


그 사실이 가끔 슬프다.


더욱 씁쓸한 건,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인간이 살아 있는 한 분쟁은 계속되고, 필자는 그 한가운데에서 동동 거리며 전후방 경계 늦추지 못하리라는 사실이다.


사랑스러운 시절의 나, 핑크 베이비


저렇게 작을 때부터

핑크 핑크, 레이스 달린 공주옷을 좋아했는데.


키가 자라고, 머리가 크고, 나이를 먹으면서, 저 천사 같던 꼬마는 어디 가고, 싸워야 사는 여자만 남은 것인가.




분쟁은 그 성질상 다급하고 민감한 경우가 많다.


문제가 불거진 시점부터 당사자들의 예민함, 불쾌함, 불안은 최고조에 달해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분쟁 해결을 자문하는 건 단순히 법적인 이슈를 분석하고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당사자들의 심리를 보살피거나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할 때도 많다. 이미 불만의 색안경을 장착한 사람들에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을 하려면, 먼저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분쟁이 사방팔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경우 멘탈을 지키기 녹록지 않다.


A 사건에 대해 열일을 하고 있으나 일은 줄어들지 않는 와중에, B사건이 새로 터진다. 그래.   정도는 멀티를 해야지. 그런 다짐에 메롱을 날리듯이 C사건이 터진다.


어? 이러면 좀 곤란한데... 싶을 때, 그간 잠잠하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D 사건이 살아난다.


적군들이 연합작전으로 총공세를 펼친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던가.

그런 날은 꼭 택시기사님 운도 없지.


집으로 돌아오는 난폭운전 택시 안에서 내일 오전 보고를 잡고, 오후 회의에 소집당하고, 다시 다른 회의에 참석하라를 지시를 받고, 그 와중에 의견서를 수정하고, 오늘 밤 당장 컨콜이 필요하다는 외국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수락한다.


그렇게 또 억세게 워리어답게 하루를 보낸다.  


출처: 구글 이미지



비단 필자만이 전사는 아니다.
당신도 분명 삶의 어느 순간부터는
전사가 되었을 것이다.



마흔 즈음이 된 나와 당신들은 모두 전사에 가깝다.


우리는 매일 밤 내일은 분명 내가 세운 계획대로 평화로운 하루가 흘러갈 것이라고 믿으며 잠들지만, 결과가 같은 적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에 맞서 싸우고, 곧 꺼질 것처럼 깜박거리는 멘탈에 보조배터리를 장착하며 버티고 또 버틴다. 그렇게 매일 새로운 전투다.


살수록 '인생을 계획한다'라는 말은 참 공허한 것 같다.


그러니 그냥 눈 떴을 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은 다하되, 너무 마음 주지 않고, 조금 시크하게 대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매일 너무 처절하면 장기전을 할 수가 없다. 내일도 전투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우리는 천사로 태어나 전사로 산다.



필자는 여전사로 태어난 적이 없다.

(부모님은 분명 나를 공주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사로 살고 있다.

그것이 선택이든 운명이든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나는 본래 천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매일 참호전투 같은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아마 각자가 가진 그런 믿음 비슷한 자기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핑크 네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냥 그런 결심.


모두들 내일도 이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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