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엄청
편안함에 이르기까지 화이팅
긴 호흡,
느린 장면,
사람 냄새,
절제,
사람,
그리고
치유
그리고 다시,
사람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아저씨'를 보며 감동받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작품은 그 의미가 개인화되는 힘이 있을 때 파급력이 극대화된다. ‘나의 아저씨' 속에선 너무도 많은 나를 볼 수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려 했던 내 모습도 있었고, 너무 일찍 어른이 된 내 치부도 있었고, 상처 받고 모욕당하면서도 아무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속였던 나도 있었고, 그것이 사실은 나를 갉아먹는 것이란 걸 깨닫지만 떨치지 못하는 나도 있었고,
그렇게 너무 많은 내가 있었다.
이 글의 시작을 연 그 말,
여러분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엄청. 편안함에 이르기까지 화이팅
작가가 마지막에 남긴 이 자막이 참 좋았다.
그리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아주 정직하고 간단한,
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여기는,
그 사람다운 말들도 참 좋았다.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좋은 사람”
“행복하자”
“화이팅”
짧지만 길게 남는 이런 사람다운 말들이 좋았다.
사람과 사람
몇 만 번을 다시 태어나도 결국엔 사람과 사람뿐이다.
거기에서 편안하지 못하면,
거기에서 치유받지 못하면,
아무것도 없다.
당분간 미디어로 표현되는 그 어떤 장르의 예술에서도 이보다 더 “사람”을 잘 표현한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울 듯싶다. 종종 또 뒤적이면서 치유받을 생각이다.
좋다.
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