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 남해에 출장 갔다가 우연찮게 활쏘기를 했고, 그때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기웃댈 뿐 이런저런 핑계로 시작하진 않았다.
안 할 핑계는 무궁무진하니 이러다 시작도 못하겠다 싶어, 산책 삼아 종종 왔던 대신공원 내 활터를 찾아가서 설명 듣고, 신입회원 등록하고, 입회비(20만 원), 월회비(4만 원), 깍지/궁대 이런 비용(8만 원) 입금했다. 모든 시작은 입금으로 출발한다.
며칠 뒤 활터에 갔더니 사범님이 자세를 가르쳐주며 연습용 활(35파운드)의 시위를 끝까지 당기는 연습을 시킨다. 다들 예사롭게 당기기에 별 꺼 아니라 여겼는데, 5번 연속으로 당기는데 의외로 힘이 들어가고 땀이 난다. 쉬는 시간에 선배회원에게,
-활 쏘신 지 얼마나 됐어요?
-2년 정도요. 아직 한참 배워야 합니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던데…
-영화가 사람 마이 배리놓지요
-아입니까?
-올림픽 양궁도 바람 계산해서 쏘는데, 국궁은 거리가 두 밴데 바람을 계산 안 하고 쏘마 되겠는교?
-아~
-부지런히 당기는 연습하이소.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대회 출전복이 상하 하얀 옷에 신발까지 흰색이라기에,
-전국 모든 활터가 그래요?
-네
-왜요?
-백의민족이니까
백의민족, 햐아~ 얼마만이고! 섬유와 염색산업이 발달하지 못해서 일부 특권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흰색(이라 볼 수 없는 누런) 옷만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어느 순간 민족의 색깔이 된 웃픈 사실. 그나저나 백의를 입던 평민들은 낫이나 호미를 들었지, 활을 거의 쏴보지 않았을 텐데, 웬 백의민족일까? 궁금했지만 신입이라 묻지 않았다.
국궁을 비롯해 태권도, 택견, 검도 등 전통에 내세우는 운동(무술)들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전통을 뒷받침하는 엉성하고 빈약한 논리와 예의범절에 대한 꼰대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내 선택과 무관하게 믿게 된 모태신앙처럼.
어쨌든 바람 없는 숲 속 활터,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