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그 핸드폰 쓰세요?”
수능이 끝나자마자 몇 년 동안 써오던 사과폰을 새것으로 바꾼 아들이 물었다. 나도 한동안 사과폰을 사용했다. 초창기 모델부터 몇 년 동안 사용해 오다가 표준화의 물결을 피해 갈 수 없어 안드로이드를 OS로 사용하는 핸드폰, 그중 마이너에 속하는 구글폰으로 바꿨다. 아들 눈엔 그게 이상해 보인 것 같다. 하지만 특이한 걸 좋아하는 아빠 성향을 알기에 더 묻지는 않았다.
이십여 년 전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운영체제로 사용하는 286이니 386이니 하는 컴퓨터가 대세였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한입 베어 문 사과에 끌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사과 농장에 투자한 줄 알았던 애플 주식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그 회사였다. 본과 3학년 무렵, 말 그대로 아버지를 졸라서 애플의 매킨토시 LCII를 샀다. 그 시절 애플 매킨토시는 전자출판과 그래픽 디자인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컴퓨터였다. 내게 컴퓨터는 아래 한글이면 충분했고, 그 작업도 필요하면 학교에서 할 수 있었는데 서울에서도 등록금이 제일 비싼 아들의 학비 대는 것도 녹록지 않았을 아버지를 졸라서 산 비싼 사과 하나,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시간이 빌 때마다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종로3가의 맥 센터를 들락거렸다. 요샛말로 어둠의 경로도 몰랐었고 프로그램 구하기도 어려웠기에 그곳에서 PDS(public domain software) 무료 프로그램을 카피하기도 하고 최고급 사양의 Mac 컴퓨터를 만져보며 십여 년을 Mac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지금은 없어진 매킨토시 관련 정보를 다루는 <맥마당>이란 잡지와 인터뷰 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서랍 깊숙한 곳에 누워 있던 그 잡지를 발견했다. 1999년이니 무려 24년 전이다. 오래된 잡지 속엔 파릇파릇한 청년의 이야기가 두 페이지 가득 차 있었다. 호기심 많던 그 청년은 매킨토시 노트북 배터리를 직접 교체했다. 하지만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아 상심 끝에 부품을 분해하여 CPU와 메인보드만 빼고 모두 팔아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결 케이블이 정확하게 꽂히지 않아 작동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허름한 중고 노트북 몇 개를 구매해 필요한 부품을 조달하여 매킨토시 노트북을 새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 노트북은 세상에 하나뿐인 모델이 되었다. 매킨토시 방랑자로 살았던 그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기사의 말미를 읽어 내려가다 멈칫했다. 잊고 있던 삶의 미션이 적혀 있었다.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나가 의료봉사 활동을 하는 게 제 꿈입니다. 사실 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데는 국내보다는 오지이거든요. 만일 이 꿈이 실현된다면…”
인터뷰했던 기자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기사의 단서가 될 수 있는 말은 했을 것이다. 옛 기록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숨어 있던 꿈 하나를 만났다. 분명 내가 한 말이다. 하루하루에 얹혀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런 미션이 남아 있었다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몇 해 전 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포럼에서 애플에 근무하는 분을 만났다. 놀랍게도 1999년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나의 인터뷰 기사를 본 후 매킨토시에 흥미를 느꼈고 결국엔 애플코리아에 취직했다고 했다. 언제고 식사 한번 하자는 그의 얘기에 내가 오히려 고맙다고 얘기했다. 나의 작은 실수담과 좌충우돌한 기록에 삶의 방향 하나를 잡은 그를 보면서 한편으론 가슴 먹먹한 느낌이 들었었다.
수능 시험이 끝나자 메인보드, CPU, 그래픽카드며 메모리 등 원하는 컴퓨터 사양을 자세히 얘기하며 환하게 웃는 아들을 보았다.
“아빠가 그렇게 맞춰줄게.”
웃으며 대답하곤 한껏 들떠있는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청년과 함께할 컴퓨터엔 어떤 꿈과 미션이 그의 삶과 함께할지 궁금했지만 묻진 않았다. 웃는 아이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볼 뿐이었다. 오래된 잡지를 다시 펼쳐 들었다. 내 앞에 떨어진 커다란 과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 가만히 들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