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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May 27. 2024

벗과 함께 남도 정찬

   “상훈아, 내일 학회 있어 여수 가는데 시간 되면 같이 점심 먹자.” 

   열두 시 조금 넘어 도착한 친구의 직장은 조용하고 예쁜 카페 같았다. 간판도 달리지 않았지만, 정형외과로 특화된 전국구 병원이었다. 널따랗고 깔끔한 로비 한쪽에 웃으며 서 있는 반가운 친구. 그의 두 손을 잡았다. 

   친구는 오전 내 병원 일로 힘들었을 텐데 귀찮은 내색 없이 병원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눈에 들어오는 장식이며 안내판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침 두 시간 운전에 세 시간 학회 공부, 한 시간 남짓 병원 구경에 어느새 뱃가죽이 등허리에 들러붙었다. 내 공복감을 알아챘는지 친구는 병원에서 먹자며 구내식당으로 이끌었다. 직원은 말할 것도 없고 환자도 보호자도 병원 식당에서 먹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얼마나 맛있는지, 주변 식당에서 시청 어느 부처에 민원도 넣었단다. 소문난 병원 밥 때문에 식당 영업이 힘들다고. 일부러 맛없게 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웃는 친구 따라 식당에 들어섰다. 

   점심시간 조금 지나선지 건물 9층 뷔페식 구내식당은 한산했다. 건물꼭대기 층에서 보이는 친근한 산새며 탁 트인 전망은 그야말로 뷰 맛집이었다. 파란 하늘 흰 구름을 둘러보고 배식대에서 식판을 들었다. 마늘 절인 고등어 탕수, 소시지와 브로콜리, 입맛 돋우는 겉절이김치, 연어회 접시 그리고 여느 유명식당 버금가는 감자탕까지. 그야말로 남도의 정찬이 식탁에 놓였다.

   오랜만에 흰쌀밥 한 숟갈 먹고 맛깔스러운 겉절이김치를 한입에 넣었다. 아삭아삭한 식감, 입안 가득 알싸한 양념의 톡 쏘는 맛. 노곤했던 두 눈이 번쩍 띄었다. 밥숟갈 한 번 더 들고 연어회 한점 음미했다. 감자탕 국물 조금 맛보고 작은 뼈에 붙은 살코기를 부드럽게 씹었다. ‘저탄고지’ 한다며 참새 눈물만큼 밥 담은 친구 식판을 보니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여수 오길 잘했다. 동문수학했던 기억의 끈 붙잡고 먼 곳에서 불쑥 찾아온 친구를 즐거이 맞아준 그도 나에게서 학창 시절의 그림자를 어렴풋이 보았기를. 식사를 마치고 옛 추억과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 뒤 서로의 생활로 돌아가는 시간. “용과야!” 손 흔들고 돌아서는 나를 부르는 친구 목소리. 걸음을 멈췄다. 

   “사실은, 내가 어제 운동하다 갈비뼈에 금이 갔어. 밖에서 맛있는 여수 한정식 먹어야 하는데, 미안해…” 

   뭐라 답할 새도 없이 커피 선물을 쥐여주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친구.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본 뒤 나도 여수 엑스포 학회장으로 차를 달렸다.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論語 學而1).

   오랜 친구의 따뜻한 환대에 ‘벗이 있어’라는 말을 되뇌어본다. 멀리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오늘처럼 짧은 만남을 위해 서로의 시간을 기꺼이 내는 벗이 있어 과연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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