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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보이 Sep 19. 2024

성난 사람들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을 보고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1957년 개봉한 영화로 아버지를 죽인 죄로 기소된 18세 소년의 판결을 맡은 12명의 배심원 이야기다.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만장일치를 요구했고 유죄가 나오면 소년은 즉시 사형이 집행된다는 말을 남겼다. 첫 투표에서 열한 명은 유죄를, 건축가 역을 맡은 헨리 폰다만이 무죄를 주장했다. 더운 날씨에 선풍기도 작동하지 않는 배심원 실은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곳이라고 하기엔 권태로움과 짜증만 가득 찼다. 

   소년의 유죄는 아래층 노인의 증언과 기차의 창문 너머로 살인 사건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길 건너편 여자의 증언으로 입증되고 있었다. 건축가가 아래층 노인과 살인을 목격했다는 여자의 증언에 모순을 찾아내어 결국 1:11로 유죄가 우세했던 상황을 12:0으로 무죄로 끌어낸 후 법정을 나서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무죄를 항변하는 소년도 과학적 수사 기법도 등장하지 않지만 증언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며 의문을 제기한 배심원 한 명의 열정은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영화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유죄 확신을 가지고 있던 배심원 열한 명에게 큰 목소리 한번 없이 증거와 논리를 기반으로 범인이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 헨리 폰다의 열연은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배심원 제도는 1215년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에 의해 시민의 권리로 보장되었고 이것이 미대륙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화에서 마지막까지 유죄를 주장했던 사업가에게는 주먹으로 자신을 때리고 집 나간 아들이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를 칼로 찔렀다는 죄목의 소년에게서 이 년 전 자신에게 반항한 후 집 나간 아들이 겹쳐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부정당한 권위를 소년에게 투사(Projection)하여 설득력 없는 논리로 유죄를 주장하다 바닥에 떨어진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감정적으로 찢어 버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6개월 이상 진행되고 있는 의료문제가 떠올랐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밥 먹고 살만한 기성세대가 이제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이십 대 젊은이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굴레를 씌우고 강제 노역을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험난한 현실 세계에 발을 들이고 구원자로 살았듯이, 피 끓는 청춘들도 빨간약을 삼키고 매트릭스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구원자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매트릭스 주인공 이름 네오(Neo)가 그리스어로 새롭다, 젊다, 부활한다는 뜻을 가졌듯이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틀림없다. 매트릭스를 빠져나간 젊은이들을 제외한 채 정치, 언론, 노동, 보건의료, 유튜버, 온갖 시민 단체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한 재판이 열리고 있다.

   행정부의 2인자는 현실 세계에서 로그아웃한 젊은 그들이 이번 의료 문제에서 제일 잘못했다고 큰소리로 비난했다. 증거와 논리로 그들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외치는 몇몇 말은 아무런 반향 없이 공중에 흩어지고 있다. 십 년쯤 지나면 이 잔혹한 배심원 재판의 결과는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소년이 유죄라고 말하던 사업가는 열한 명이 무죄에 손들고 나서야 찢어진 아들의 사진을 보며 ‘not guilty’란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영화 속 성난 사람들은 결국 소년을 살렸다. 이번 의료 사태에 참여한 여러 성난 사람들은 누구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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