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메스와 나이프 소리만 들리던 수술실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수술을 돕던 나를 부른 건 흰 머리카락에 선한 눈의 마취과 선생님이었다. 산부인과 1년 차에게 리트랙터(retractor 장기나 조직을 당겨서 유지해 주는 의료기기)를 넘기고 수화기를 들었다. 장모님이었다. 돌도 안 된 첫딸이 1m 남짓한 부엌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내의 얼굴은 눈물범벅으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울고 있는 딸을 품에 안았다. X선 사진을 확인하고 진찰을 마친 소아과 교수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하셨다. 근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은 그제서야 짧은 숨이 돌았다. 나 역시 의사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픈 딸아이의 아빠일 뿐이었다. 딸아이를 지켜준 수많은 손길에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감사했다.
그날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인턴을 마치고 망설임 없이 소아과를 선택했다.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손 내밀고 싶었다. 하지만 소아과 레지던트 1년 차의 현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삼십 년 전 대학병원 소아과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지막 희망을 붙잡으려는 부모의 애달픈 마음이 먼저 달려오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연약한 생명 지키는 얼기설기 무수한 줄들 사이로 어린아이 손을 꼭 잡은 부모의 떨림을 보았다. 먼저 떠난 아이를 위해 울음 삼키던 기도를 들었다. 아이를 살리려 밤새 애쓰다 끝내 고개를 떨구던 동료의 하얀 가운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 틈에, 사색이 된 얼굴로 딸에게 달려가던 나도 서 있었다.
소아과 레지던트 생활은 24시간이 모자란 스케줄이었다. 아침에 출근해 입원환자를 돌보고, 저녁 여섯 시부터 밤새 응급실이나 병동 당직을 섰다. 꼬박 36시간을 뜬눈으로 일하고 퇴근하는 205번 버스 안에서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졸던 기억은 셀 수도 없다.
대부분의 아이는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이를 먼 곳으로 보내고 홀로 돌아서던 부모의 무거운 발걸음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그렇게 아이를 잃고 나면, 다음 아이는 반드시 살리기 위해 콘퍼런스를 하면서 지식과 경험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삶과 죽음의 서슬 퍼런 경계에서 매일 같이 밤을 지새웠다.
소아과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미소 짓는 아이를 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환자 가족, 씩씩하게 걸으며 퇴원하는 환아의 모습, 누군가에게 안도의 한숨을 선물했다는 기쁨으로 이십 년 넘게 아이들을 돌봤고. 지금은 섬마을 소아과 의사로 살고 있다.
얼마 전, 밤 열 시가 넘은 진료실에서 오래된 잡지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저는 아기를 보면 사족을 못 씁니다. 전공 선택할 때 많이 고민했죠. 아기를 좋아하니까 아기가 아픈 것은 안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아기를 위해 의술을 펼친다면 평생 보람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소아과를 선택했고, 이 결정에 후회는 없습니다.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나가 의료봉사 활동하는 게 제 꿈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곳은 국내보다는 오지이거든요.”
잡지 인터뷰에서 지금보다 이십몇 년은 젊은 내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소아과 의사가 사라져가는 이 땅이 어느새 ‘오지’가 되어 굳이 외국까지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씁쓸한 현실이다.
사명감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낸 소아과 의사들은 이제 ‘하필 소아과 의사가 되었다’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우리는 정말 하필 소아과 의사가 되었을까. 필히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던 과거의 나는 그 사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나도 하필 소아과 의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픈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손 내미는 의사이고 싶다.
하필(何必). ‘되어 가는 일이나 결정된 일이 못마땅하여 돌이켜 물을 때’에 사용하는 단어이지만, 나는 다른 뜻으로 읽고 싶다. 하필(下筆). ‘붓을 대어 쓴다는 뜻으로, 시나 글을 짓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이십 년 넘게 소아과 의사로 살아왔고 또 그만큼 더 소아과 의사로 남을 것이다.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된 아이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을 기억하며, 나는 이제 하필(下筆) 소아과 의사로 남고 싶다. 그래서 나의 작은 기록이 아이 하나 살리기 위해 애쓰는 또 다른 동료에게, 생사의 갈림길에 선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하필 소아과 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