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위로와 위로가 오가는 곳 , 진료실
“제 탓인가요?”
물기어린 아이 엄마의 눈과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소아과, 그중 소아 신경 분야를 전공한 의사다. 진료실, 병동, 응급실에서 아픈 아이들을 만난다. 그 부모가 들려주는 아픈 사연들을 찬찬히 듣는다. 그리고 때로는 그 부모에게 상처가 될지 모르는 냉정한 사실을 전해야 한다. 경련이 멈추지 않아 응급실에 실려 온 아이는 매뉴얼대로 약물을 투입하여 진정되면 중환자실로 이동시킨 후 부모에게 여러 검사를 해야 하고 경련이 멈추지 않으면 이런저런 처치를 더 해야 해서 아이가 힘들 수 있다고 얘기했다. 얼굴 생김이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고 데려온 아이에게 심장병도 같이 있고 염색체 이상도 있어 무슨 무슨 증후군에 해당하니 몇 년 못 갈 수 있다고, 의사로서 그렇게 말해야만 했다.
“아닙니다. 엄마 아빠 탓이 아니에요.”
몇 달 새, 세 차례나 경련이 있었던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두 번은 잠들고 삼, 사십 분 지나서, 한번은 아침 녘 잠이 깰 무렵이었다. 아이 방에서 ‘꺽꺽’ 대는 소리가 들려 달려가 보니, 눈이 한쪽으로 쏠린 채 팔다리가 뒤틀려 뻣뻣해져 있었고 몸도 움찔움찔 떨렸다고도 했다. 부산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뇌 MRI를 찍었지만 뇌파 검사 일정이 한참 뒤로 잡혀 발만 동동 구르다 우리 병원을 찾아온 터였다.
오늘 ‘뇌전증’이라는 한마디에 눈물 흘리며 자식 아픈 것을 자기 탓이라 생각하였던 이도 부산의 대학병원으로 먼저 갔다. 왕복 열 시간 걸리는 서울 길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부모 마음이니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리는 부산 정도야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알게 된다면 ‘왜 시골 동네 의사한테 아이를 맡기느냐?’라며 피할 수 없는 화살이 날아올 것이 뻔한데, 나를 찾아온 그 걸음에는 얼마나 큰 용기와 절실한 믿음이 필요했을까.
‘제가 다 낫게 해 드릴 테니 저만 믿으세요.’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말을 나는 끝내 삼켰다. 대신 가장 현실적인 위로를 건넸다.
“인지기능 부작용이 제일 적은 약으로 시작해 봅시다. 약 잘 먹으면 좋아질 겁니다.”
젖은 눈가를 채 닦아내지 못하고 돌아서 나가는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 들썩임에 내 마음 한쪽도 쓰려왔다. 문득, 코로나에 걸려 작은 방에 격리된 딸아이의 기침 섞인 쉰 목소리가 떠올랐다. 며칠만 지나면 나을 '유통기한 있는‘ 병에 걸린 자식 생각에도 이리 아픈데,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모를 기약 없는 처방전을 받아 든 아이 엄마의 발소리가 유난히 아프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