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_위로와 위로가 오가는 곳 , 진료실
진료실 문밖에서 나지막한 흐느낌이 들려왔다. 조금 전 진료를 마치고 나간 아이 엄마였다. 직원이 건넨 손수건에 얼굴을 묻은 그녀의 사연은 이러했다.
창원에서 한 시간 반을 달려 몇 년째 아이의 뇌전증 약을 타 가던 엄마였다. 오늘 떨리는 마음으로 뇌파 검사받았고, 나는 아이 엄마에게 혈액 검사와 뇌파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이제 완치됐으니 더 오실 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선 그녀는, 문이 닫히자마자 그 앞에 주저앉아 그간의 설움을 토해낸 것이다. 고혈압이나 당뇨였다면 주변에 털어놓기라도 했을 텐데. 아이의 병은 물어볼 곳도, 아픔을 나눌 곳도 마땅치 않아 얼마나 속으로 끙끙 앓았을까. 엄마의 흐느낌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토록 한 가족을 몇 년 동안 말 못 할 고민과 아픔으로 짓눌렀던 뇌전증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발작이 두 차례 이상 반복되는 질환’이다. 2012년 이전까지 ‘간질(癎疾)’로 불리며 수많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감수해야 했던 병. 그래서 병명을 ‘뇌전증(腦電症)’으로 바꾸었다. 간질이란 용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랄병 또는 간질이라는 단어에 깊이 박혀있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문제였다. 드러내놓지 못하는 관습에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강압적인 감금으로 인권 또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덕분에 단 한 명이라도 더 제대로 된 치료받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변화일 것이다.
뇌전증은 기원전 1,000년경 바빌로니아의 기록에도 나오며, 성서 속에도 나오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질환이지만 치료가 어려웠던 병이다. 그러나 의학의 발전 덕에 뇌전증 치료는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과거 이백 년 동안 열 가지의 뇌전증 치료제가 있었다. 반면 최근 십 년 사이 열 가지가 넘는 신약이 개발되어 많은 환자가 도움받고 있다.
“간질(뇌전증)도 완치가 됩니까?”
오늘 또 다른 엄마가 내게 물었다. 서른 살 된 딸의 손을 잡고 온, 예순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환자라기보다 ‘어른아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 초점 없는 눈의 딸아이였다.
이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리 물었을 것이다. 뇌전증은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다. 통계적으로 열 명 중 여섯에서 일곱의 환자들은 한 가지 약물만으로 발작이 완전히 조절된다. 국제 뇌전증 연맹(International League Against Epilepsy)은 ‘약물 복용 여부와 관계없이 5년 이상 발작이 없는 상태’를 ‘완치’로 규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 어르신에게 바로 답하지 못했다. 일곱 살 정도의 지능, 이미 손상된 뇌. 그 ‘어른아이’가 완치에 이르는 길은 교과서의 통계보다 훨씬 험난할 것이기에. 나는 다른 곳을 보는 다 큰 자식 손을 잡고 돌아서는 늙은 엄마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음 환자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