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는, 멈출 수 있는.
저번 주 수요일을 마지막으로 출근하고 현재 제주도에 와있다. 여행을 가려해도 딱히 갈 곳도 없었다. 도착해서 스타벅스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건 매일 아침 능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고, 점심을 먹고 집에 가고 싶은 발걸음을 돌려 터덜터덜 다시 자리에 앉고, 다음날도 출근을 하니까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는 뜻이다. 매 순간이 움직이거나, 혹은 움직이는 것을 참는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기계적으로 출근하고, 일하고, 오늘도 무탈하게 하루 업무를 마친 후 집에 돌아가고, 그것이 눈 감았다 뜨면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데일리 루틴은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적은 에너지 소모로 견디게 해주는 자동항법장치다. 새벽 6시 반에 깨서 출근하는 것이 두세 달이 지나도 첫 일주일과 같이 힘들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환경적응력이 좋지 않고, 현상유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는 데에 오랜 시간과 큰 용기가 필요했다.
기차에 탑승하는 것도 힘들지만, 기차가 속력이 붙으면 뛰어내리는 데에도 상당한 결심이 필요하다. 뛰어내리면 큰 충격도 받고, 쭈욱 어딘가로 나아가던 방향과 속력도 한순간에 잃는다. 낙오될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차에 계속 타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뛰어내렸다. 선택의 주체로서 멈추기로 선택한 것은 바로 나다. 뭘 잘했거나 좋은 일이 생겨서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이 얼마쯤은 내 손아귀에 있구나 싶어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에겐 누구나 원치 않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잠깐 엎어져있다가 눈물을 닦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자유가 있다.
여러 사정과 환경으로 퇴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분들도 많을 텐데,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내가 잘했거나, 잘 못했거나,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운이 좋았다. 포기하겠다는 것도 선택이고, 아플 수 있다는 것도 선택이고, 계속하겠다는 것도 선택이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운이 좋은 거다. 시간이 흐르며 감사할 일이 하나씩 늘어간다.
힘든 일이 다소 찾아와도 매번 일어선 것을 보면 난 항상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무탈하지는 않아도 일어날 수만 있었으면 운이 좋은 거지. 과분한 운을 가지고 있으니 여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