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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Feb 23. 2023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 이야기가 되길

하루가 가끔은 감사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또 그냥 잔인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어제는 하루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만 나가는 것 같더니, 오늘은 한없이 감사하기만 하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오늘 하루에 담겨서 좋다. 하얗게 부담스럽기만 하던 백지에 까맣게 뭐라 뭐라 쓰이는 오늘 여기, 하루.. 감사하다. 



시간이 날 때 글을 쓰자 마음먹으니, 소재가 탐탁지 않거나, 별로 내키지 않게 글을 쓰게 될 때가 꽤 많았다. 그럴 때는 제목부터 막막하고, 그러다 내용은 끼워 맞추기 하다 말다.. 결국 시간만 버리다 마무리 못하고 브런치를 나가 버리게 될 때, 정말 다시 돌아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어제도 결국, 쓰다만 글을 다시 마추지게 되었다. 꽤 길게 써내려 가다 멈춰버린 글을.. 과감히 다 지워버렸다. 아쉬움보다는 힘들게 써내려 갔던 내 마음의 짐을 좀 덜어주니, 오히려 후련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다시 써 내려갔다. 그러나 다 쓴 글을 읽고 나서 내 마음의 표현을 내가 다 해 내지 못할 때 가장 답답하다. 뭔가 아쉽기만 한 나의 전달력에 발행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지울까 말까 또 고민고민 하다.. 꾸준함에 한표 주기로 했다. 



글로 해내지 못하는 꾸준함을 운동으로 답하듯 오늘도 나는 출근 도장을 찍었다. 오늘도 역시 말도 못 하게 힘들고, 쉽게 지치는 내 체력.. 순간 내려놓고 싶다가.. 다시.. 다시 이 길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았다. 조금 모자라도 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나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않을까.. 



휘청거리며,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그 짧은 찰나에 이겨 내려고 끝까지 1시간을 채워내는 내가 대단하기보다 대견하다. 그러나 아직은 이렇게 애쓰는 내가 애처롭다. 뭐가 되겠다는 대단한 포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알아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도 아니지만, 하루를 채워 나가고, 나를 만들어 가는 삶을 꾸준히 살아가고 있다는 나를 보듬어 주고 싶었다. 



오늘 문득, 브런치에 나와 글을 쓰려니 나를 붙잡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나의 삶을 누군가 알고 싶어 할까? 나의 생각을 누군가 공감하고 싶어 할까? 나는 과연 궁금한 사람인가? 꽤 오랜 글쟁이로 밥벌이라도 하는 중견 작가나 돼야 고민할 법한 같지도 않은 슬럼프 이 작가병 같은 생각이 오늘은 그냥 좀 씁쓸했다.



꽤 많은 소재의 제목들이 나의 서랍에는 가득했다. 당시에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 메모해 둔 것들이겠지만,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들부터, 꽤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것들까지.. 차곡차곡 모아둔 이 작은 제목들이 나의 이 얄궂은 생각들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나의 서랍 속 밀린 메모들]

1. 언제나 처음이란 건 있는 거야 (우리 모두에게 다 처음은 있었다)
2. 나이에 맞는 꿈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꿈을 꾸다(소제목 없음)
3. 너의 그까짓 것이 나의 모든 것일 수 도 있다.(작은 일에 몸숨을 걸고 사는 이유)
4. 나누고 싶은 짐도 가끔 힘이 되기도 합니다.(불행을 나누다 보면 이겨내야 할 힘이 생긴다)
5. 감사하지만 후회됩니다 (겸손과 과신은 가끔 후회를 남긴다.)
6. 타로가 들려주는 나의 위로 이야기
7. 네임밸류는 안전빵, 듣고 잡은 몰빵(내가 몰빵인 이유 그래서 위로가 된다)
8. 개꼬리 흔들기론 (에너지 총량의 법칙)
9.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사실 별로  하고 싶지 않거나, 절대 못하는 일이다)
10. 아무렇지 않지 않은 게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괜찮은 척 살아가기)

*만약, 누군가 10가지 이야기 중 듣고 싶은 내 이야기가 있다고 요청이 온다면 꼭 들려드리겠습니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쓰기로 한 것도 아니고, 나를 알리려 글을 쓰려고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내 삶을 기록이라도 해보고 싶어서였다. 어제 일도 오늘은 전혀 기억이 없고, 일 년이 지나도 설, 추석, 생일, 정도 겨우 생각정도 나는 삶에서 벗어나, 내 인생의 구석구석을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 처럼,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들려주고 싶은 내 삶이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

내가 나를 먼저 보듬을 줄 알게 해 준 브런치에게 나를 나누어 줄 수 있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

지금 이 길이 맞는지 아무도 모른다. 가다가 되돌아봤을 때, 걸어온 그 길이 바로 맞는 길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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