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의미
독일 남부에서 한 난민 청년을 만났다. 시리아에서 온 20대 중반의 청년은 영어도 능숙하게 하는 대학생이었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독일로 난민 입국 신청을 했다고 했다. 얘기를 나누던 중에 배가 고파 초코바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그 청년에게 초코바를 먹지 않겠냐고 물었다. 청년은 손을 세차게 저으면서 자긴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초코바 안에 든 땅콩이 문제이거니 했다. 땅콩 알러지는 큰 문제니깐. 초코바 대신에 바나나를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헤어질 때쯤 청년이 아깐 미안했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왜 초코바를 먹을 수 없는지, 왜 몸서리를 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했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나 목숨까지 위협을 느꼈던 청년과 그의 가족들은 국경을 넘어 탈출 했다. 그리고 엄청난 금액을 주고 브로커에게 보트를 구입해서 바닷길을 이용해 난민 구조대와 만나기를 시도했다. 언제 마주칠지 모르는 구조대를 보트 위에서 3주간을 기다렸다고 했다. 초코바로 버티면서.
어제 오후에 도착한 이길보라 작가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를 읽었다. 얼마 전 북그램 케인님의 리뷰를 보다가 수어에 관심이 생겨 유투브의 여러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이길보라 영화감독을 알게 되었다. 코다(CODA,농인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자녀)인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과 대하는 법 그리고 부딪히는 법을 보면서 나는 뭉클했고 뜨거웠고 그리고 부.러.웠.다.
영화를 전공한 작가는 네덜란드 영화학교에 석사과정을 지원한다. 학비도 생활비도 걱정이지만 아빠의 응원이 있어 가능했다. “괜찮아, 경험”. 그렇게 시작한 타국의 대학원 생활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나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고 또 고개를 떨구면서 함께 울었다. 기쁨의 합격소식, 바로 큰 문제는 학비와 생활비, 새로운 나라와 학교에 대한 기대감, 기대감과 달리 막상 부딪히는 수업 시간 내 영어, 또 부딪히는 영어 자신감, 그럼에도 이해해주는 교수님들과 동기들 그리고 모든 걸 감수할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배움의 즐거움! 나는 이 책 앞 면에 쓰여진 문구가 이 책의 중심을 다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지도를 확장하는 배움의 기록’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책들을 다시 살펴본다. 타라 웨스트오버의 <educated_배움의 발견>과 호프 자런의 <Lab Girl_랩걸>. 배움이 그녀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몰몬교의 신실한 교인이었던 부모 밑에서 세상과 단절 된 채로 유년시절을 보내던 웨스트오버는 오빠의 권유로 대학을 가기로 한다. 배움이라는 세상에서 그녀가 느끼는 배움의 참 의미. 바로 자유였다. <Lab Girl>의 자런은 여성 과학자로서 학계에서 자리 잡아가는 연구 과정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식물학자로 그녀가 대하는 배움의 의미는 열정이었다.
나에게 배움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대하던 배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던 걸까. 이길보라 작가처럼 나를 확장하고 성장 시켰을까. 웨스트오버처럼 새로운 자아를 탄생 시켰을까. 자런처럼 시작과 끝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주었을까. 오직 초코바로만 3주를 보트에서 버텨야만 했던 난민 청년이 생각난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국경을 넘었다던 그 청년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