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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Jan 09. 2024

모든 생이 반짝인다

- 시와 책으로 회복탄력성 키워나가기

모든 생이 반짝인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기 저 먼 곳 어딘가에

작고 작은 반짝임들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손망원경을 만들어

자세히 보고 또 보았다     


더 깊이

더 오래 보니

그 반짝임들, 다

눈물이고 고통이었다     


동그랗게 말아 쥐었던 손망원경

눈물과 고통들 앞에서 그만,

바짝 굳어지고 단단해져 버렸다    

 

여기저기 다른 쪽으로 돌려도

이미 조여들어 작아진 망원경손

돌처럼 꿈쩍 않은 채 여전히

반짝이는 작고 작은 것들에만

가 닿았다     


팔이 저려왔고

몸이 무거워지고

눈꺼풀이 덮어지고

어딘가 헐고 쓰리고

그렇게 아파왔다     


그제서야

꾹 말아쥐었던

망원경손 풀어내

양 팔 털썩,

내려 놓았다     


그랬더니 웬걸!     


온 세상 하늘 가득

모든 삶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분명 그저

그렇고 그랬던

삶이었는데.     


지금도 가끔

삶이 온통 그저

그렇고 그런 것 같으면

손으로 망원경을 만들어

찬찬히 세상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양팔을 내려놓아 본다

그러면 다시금, 온갖 반짝임들

온 생 가득, 깊이, 꽉 차오른다                





         



잘 살고 싶은 마음에 답하기 첫 주였다. 새해 첫 주인 만큼 의욕이 가득했건만 세상은 꼭 나를 돕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아이가 아팠고, 집 보일러에서 물이 줄줄 새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녔고, 진료 의뢰서를 받아 종합병원으로 옮겨 수술날짜를 받았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고 돌보는 중에 날씨는 영하 10도를 웃돌았고, 보일러는 제대로 작동해주지 않았다. 너무 오래 사용한 보일러라 고쳐봤자 또 물이 샐 것이고, 금방 수리 비용이 보일러 교체비용을 넘을 거라 해서 큰돈을 들여 보일러를 새로 들여야만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정말 큰돈이 들었다. 쉽지 않은 한 주였고, 뭔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꽤 지쳐버렸다. 그래서 필요했다. 회복탄력성이, 그리고 회복이.     


새로 바꾼 보일러는 확실히 성능이 좋았다. 평소 쓰던 대로 실내온도를 설정해 놓았는데, 그날 나와 아이는 이 집에 살아온 모든 날을 다 합쳐도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정말 뜨끈뜨근한 밤을 보냈다. 발바닥 디디는 곳마다 뜨끈뜨끈한 집이라니. 너무 좋았다. 살 것 같았다. 우리 집이 이렇게 좋은 집인 줄 몰랐네. 다음 날, 나는 실내온도를 예전에 사용하던 온도보다 6도 내려서 재설정했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보일러를 새로 들여놓은 날 밤, 참으로 뜨끈뜨근한 방바닥이 너무 좋고 그냥 두기 아쉬워 말짱한 침대를 두고 방바닥으로 내려와 누웠다. 대자로 쭉 뻗어서 온몸을 지지는데 어찌나 좋던지. 마음 편히 그렇게 바닥에 누워 있으니 빌 노트의 시 <죽음>이 떠올랐다.    

 

잠을 자면서 나는 두 손을 가슴 위에 포개 얹는다. / 사람들이 나중에 내 손을 이렇게 얹어 놓겠지. / 내가 내 안으로 날아 들어가는 것처럼 보일 거야.     


시의 표현처럼 나는 내가 내 안으로 날아 들어가는 것 마냥 두 손을 가슴 위에 포개 얹고는 나도 모르게 몽글몽글,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다.     


싱글맘. 산만하고 경미한 틱을 가진 어린 아들을 오로지 혼자 힘으로 키우고 있음. 시댁이나 친정 도움 전혀 없음. 출산 후 갖게 된 질병으로 매일 약 복용 중. 작년, 우울과 PTSD 및 불안장애로 잠시 정신과 진료를 받음.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나 적성에 맞지 않으며 언제든 PTSD를 동반할 사태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임.  

    

내가 진술한 나에 대한 글이다. 참 탐탁찮다. 불편하다. 어둡다. 위의 글만 봐서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진실도 있다. 세상이 여하 어쨌든 그래도 멋지게 잘 살아낸 사람들이 있다고. 독서심리지도사 공부를 하면서 무척이나 인상 깊게 남았던 내용이 하나 있다. 김주환 교수의 책, <회복탄력성>에 자세히 나오는 이야기이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 정말이지 극한의 힘든 상황에서 성장했음에도 잘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 맞다, 이거네. 내게 필요한 거. 그동안 돈 내고 배운 거, 나에게 이렇게 써먹어 본다.     


아이는 이미 깊이 잠든 밤, 나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회복탄력성을 검색했고, 김주환 교수의 한국형 회복탄력성지수 <KRQ-53 테스트>를 해 보았다. 테스트 실시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안 좋았다. 쉽게 말해 나는, 유리멘탈인걸로 나왔다. 어이쿠야.     


독서심리지도사와 시치료지도사를 사사해주신 교수님께서 수업 중에 해주신 말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각종 비싼 심리검사지에 관한 말씀이셨다. 심리검사 한 번 제대로 받으려면 정말 엄청 비싼 게 현실이다. 그 정도의 심리검사가 필요한 정도이면 심리상담소가 아니라 병원에 가서 제대로 심리검사를 받고 병원처방을 받으며 상담도 받는게 맞다고. 일상이 흔들릴 정도의 질병군이 아니라면 무료 간이검사를 활용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주기적으로 자주 검사를 해 볼 수 있고, 나아지는지 혹은 놓친 부분이나 다른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가며 심리상담 및 회복과 치유를 해나갈 수 있다고. 그러니 병원 갈 정도 아니면 무료 간이검사지들을 적극 활용하라고, 주기적으로 자주 활용하라고 하셨더랬다.      


교수님 말씀이 떠오르며 ‘그래, 이 말씀이었네!’ 하며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지금 나, 이 뜨끈뜨근한 새벽에 올 한 해 내가 더 잘 살아가고 있는지, 나아지고 있는지 점검해 볼 도구, 획득한 것 같다. 바로 김주환 교수의 한국형 회복탄력성지수 <KRQ-53 테스트>이다.     

 

부끄럽지만 의미있는 기록을 해나가기 위해 고백해 본다. 24년 1월 첫 주, 나의 회복 탄력성 지수는 144이다. 한국인 평균은 195이다.   

  

독서심리지도사 및 시치료지도사로서 전문가 과정까지 마치고 올해 슈퍼비전을 받는 동안 3개월에 한 번씩 <KRQ-53 테스트>를 실시하고 그 지수를 기록해 보아야겠다. 김주환 교수는 이 테스트를 상업적 용도가 아니면 누구든 무료로 사용해도 된다고 하였고, 쉽게 테스트하고 결과도 볼 수 있도록 사람들이 엑셀파일로 만들어서 인터넷 사이트 여기저기에 올려놓은 것들이 많다. 오늘 내가 검사해 본 테스트지도 그런 감사한 자료 중 하나이다. 1월은 일단 144이다. 4월, 7월, 10월, 그리고 24년의 마지막 해인 12월까지 총 5회 실시해 보려 한다. 심리지도사로서의 슈퍼비전 과정. 과연 나의 회복탄력성 지수를 얼마나 높여주게 될까. 흥미롭고 궁금하다. 내일은 도서관에 가야겠다. 슈퍼비전 과정의 첫 책, 김진세의 <두렵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를 빌리러 말이다.



 ( 혹시 이 글을 읽고 김주환 교수의 회복탄력성 검사지가 궁금하실 분들이 계실까 싶어 자료 올려 봅니다. 저도 그저 인터넷 돌아다니다가 얻게 된, 그저 귀하고 감사한 자료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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