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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Jan 22. 2024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 <두렵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를 읽으며 치유와 회복의 길 걷기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알이 있었다

반투명 껍질을 찢고

애벌레가 되었다

생의 첫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그냥 알았다. 나, 혼자구나     


무얼 먹어야 하는지

어디서 잠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온통

바람이 가르쳐주었다     


달고 상쾌한 내음이 나면

거기로 가 뜯어 먹었고

조용하고 온화한 감촉이 나면

거기로 가 몸을 뉘었다

맑고 환하고 촉촉한 날이면

잠시 멈춰 작은 몸 가득히

숨과 꿈을 채우고 비웠다

그게 다였다     


그 바람, 잘못 읽어낸 애벌레들

뭔가를 잘못 먹어대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에 바짝 말라 버리기도 하고

빗방울과 폭풍우에 휩쓸려 떠나기도 하고

생과 명의 복잡하고 거대한 섭리에 따라

다른 생들을 위한 먹이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수많은 애벌레가 생을 다했다     


그래도 살아낸 애벌레 한 마리, 어느 날

평온한 잠, 들지 못하고, 깊은 밤

하늘 가득한 별들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문득, 동그랗게 몸을 말며

생애 첫 한 마디를 뱉어냈다

........ 엄마.. 엄마.. 엄마...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를

제 안에서 불러낸 그 날부터

바람도 잊고

잎새와 햇살도 잊고

엄마 엄마 엄마 무작정 그렇게

저 스스로 만들어낸 둥그런 밤 속에서

그 말만 되뇌며 잠이 들었다 세상을

잊어...... 갔..............다

꿈을 꾸었고 열망으로 타들어 갔으며 녹아내렸다

그렇게 저 스스로 엄마 품속 같은 자궁을 만들어내

죽음 같은 멈춤의 시간을 맞이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제 할 일 다 한 자궁이 버서석,

갈라지고 부스러지더니

빛살같이 찬란한 나비 한 마리, 그 안에서

눈을 떴다     


새로운 생의 첫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날개를 펼친 채 잠시 그렇게 있다가

나풀나풀 떠올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니 외로워 말라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                    








작고 소박한 상담실. 청년으로 보이는 코끼리 한 마리가 느릿느릿 걸어 들어왔다. 상담실 안이 꽉 찬다. 처음에는 어딘지 어설프고 앳된 느낌이었는데 상담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비친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어둡고 무거운, 주름 가득한 질감이 느껴졌다. 동공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며 여기저기 두리번거렸고, 코끼리 수족냉증이라도 있는지 두 손으로 코끝을 꽉 잡고 자꾸만 비볐다. 불안감, 두려움, 불편한 탐색. 이런 것들이 읽혔다. 전형적인 모습이다. 상담실을 처음 찾아온 내담자의 전형적인 모습 말이다. 상담사 서로는 최대한 나긋하고 편안한 눈빛과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서로: 안녕하세요. 성함이... ‘디짜이(기쁨)’이라고 적혀 있으시네요. 정말 큰 용기 내서 상담실에 오셨을 것을 잘 압니다. 모두들 그렇게 오시거든요. 잘 오셨어요. 상담소에 스스로 오실 수 있을 만큼의 내적 힘이 있으시다는 건 이미 치유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답니다. 자, 그 첫 시작, 바로 해 보죠. 어떻게... 큰 발걸음 하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디짜이: 아, 네... . 저기 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요. 항상 피곤하고, 지치구요. 아침에 눈 떠서 현관문 밖으로 나가는 게 너무 싫고 무서워요.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노력해서 드디어 자유를 얻었는데 몸이...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지지를 않아요. 그래도 꾹 참고 문밖을 나가도 몇 걸음 다 못 걸어서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인간들이 보일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구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던가 정신없이 나무 뒤로 숨게 돼요. 머리로는 분명 이제는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아는데 몸이 먼저 그렇게 반응해 버려요. 이렇게는 못 살겠어요. 여전히 자유롭지 않아요. 저, 어떡하죠? 제발 도와주세요, 선생님.     


서로: 디짜이, 여기까지 오시느라 너무 힘드셨겠어요. 식은땀을 많이 흘리셨으니 잠시 수분 보충을 좀 해야겠습니다. 코 잡고 있는 손 잠시 풀으시고, 온기 담긴 이 머그컵을 두 손바닥으로 감싸보세요. 향이 참 좋답니다. 아마 그리도 간절히 꿈꾸셨던 코끼리 공원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드실 거예요. 숲과 풀, 촉촉하고 싱그러운 향이 난답니다. 코를 가까이 대고 가슴 가득, 향을 들이 마셨다가 “후우~”하고 뱉어내 보세요. 저는 신경쓰지 마시고 원하시는 만큼 그렇게 해 보세요. 다시 고개들어 저를 바라보실 수 있게 되실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디짜이: (몇 번 큰 한숨을 내쉬고) ...... 흑, 흑흑, 흑흑흑, 흐어엉~~~~~.     


서로: (티슈를 가져와 엉엉 울고 있는 디짜이에게 건네준다) 에휴...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요, 디짜이. 그리고 너무 잘 해냈고, 여기까지 너무 잘 왔어요.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잘 버텨오셨어요.      


디짜이: (한참을 울고 나서 고개를 든다) 아, 죄송해요.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숲속 공원 같은 향을 맡으니 제가 이제는 정말 자유로워졌다는 걸 실감했던 것 같아요. 말라이홍이 너무너무 생각나요, 선생님. 흑, 흑흑, 미안해, 말라이홍, 나만 이렇게 자유를 찾아서 정말 미안해... . 흑흑... .     


서로: (디짜이가 잠시 울게 두었다가 잦아지자 조심스레 말을 건다) 디짜이... . 그거 아세요? 아까는 두 손으로 코를 꽉 쥐고 놓지 못하고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손도 내려놓고 어깨도 떨어졌고, 소파에 푹 잠겨 앉아 있으세요. 뒤통수도 소파에 기대 놓고 있으시구요. 이제 제대로 여기 도착하셨네요. 다시 인사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상담사 ‘서로’라고 합니다. 저희 상담실에 오신걸 정말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서로 함께 천천히 치유의 길을 걸어내 봅시다!     


디짜이: 아, 네. 감사드려요, 선생님. 마음이 한결 놓였나봐요. 좋은 향이 나는 따뜻한 차 한 잔만으로도 이렇게 편안해질 수 있군요.      


서로: 그럼요. 조금은 희망이 생기셨을까요? 머리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몸이 먼저 공격 혹은 회피, 스트레스 반응을 보일 때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은 향이 좋은 따뜻한 차 한 잔 말고도 정말 많답니다. 너무 많아서 어떤 것부터 알려드리면 좋을지 모르겠을 정도예요. 현재 디짜이씨는 공황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시는 것으로 보여서 일단은 위급 상황에서 실시하는 안정화 기법을 알려드릴까 해요. 이거, 외우셔야 해요. 저랑 같이 오늘 연습하실 거구요. 혼자 계실 때도 스스로 이 기법을 사용하실 수 있는 걸 일단 목표로 해 봅시다.     


디짜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다니 너무 기뻐요, 선생님.      


서로: 그쵸?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차근차근 치유해 나가요, 우리. 외워야 한다고 했던 거, 기억하시죠? 시작합니다. 따라하세요. 호흡, 근이완, 나비포옹, 착지, 안전지대 안착!     


디짜이: 호흡, 근이완, 나비포옹, 착지, 안전지대 안착!     


서로: 저는 이걸 외울 때 나비 한 마리를 심상화하곤 해요. 그러면 외우고 익히기가 좀 수월하더라구요. 디짜이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크고, 힘세고, 강한 코끼리인 거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상태예요. 조금만 차고 강한 바람이 불어도, 작은 빗방울 하나만 떨어져도 날개가 휘청거리고 젖어서 날지 못하고 추락하는, 여리디 여린 나비 같은 상태랍니다. 나비가 날다가 바람이나 빗방울, 천적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짜이: 음... 빨리 안전한 곳으로 숨어야 할 것 같아요.     


서로: 그렇죠! 바로 그거예요. 위험한 상태에 빠졌음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비는 먼저 상황 파악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을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경직되고 쪼그라들어 버린 날개를 이완시켜 넓게 펼쳐낼 거구요, 그다음엔 일단 땅 어딘가 착지할 겁니다. 그리고는 잘 숨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안전해질 거예요. 이 심상을 가지고 한 번 다시 천천히 따라해 보세요. 호흡, 근이완, 나비포옹, 착지, 안전지대 안착.    


디짜이: 나비... 나비... 나는 나비다... 호흡, 근이완, 나비포옹, 착지, 안전지대 안착.     


서로: 자, 이제는 한 번 실제로 해 봅시다. 저기, 인간이 걸어옵니다. 심지어 커창(코끼리를 길들이는 파잔 의식 때 사용하는 송곳 달린 창)같아 보이는 긴 뭔가를 들고 있어요. 우산인거 같아요. 두렵고 앞이 깜깜해지고 몸이 경직되는 걸 느끼고 있어요. 알아챘으면 바로 안정화기법 실시합니다.     


자, 호흡! 천천히 깊게 숨 마십니다... 다시 천천히 내쉬세요. 숨 깊이 마시고... 내쉬고... 열 번쯤 반복합니다. (디짜이가 열 번쯤 반복하며 잘 따라온다)     


그 다음, 근이완! 손바닥을 하늘 향한 채로 앞으로 쭉 뻗으세요. 그 상태 그대로 주먹을 있는 힘껏 꽉, 쥐면서 팔꿈치도 꽉, 몸 안쪽으로 굽히세요. 꽉, 쥐고, 꽉, 굽히는 게 핵심입니다. 잠시 그대로 있다가 다시 손바닥 하늘 향해 앞으로 쭉 펼쳐냅니다. 오늘은 이걸 세 번만 해 봅시다. 상황에 따라 원하는 만큼 여러 번 하시면 됩니다.     


다음, 나비포옹! 손바닥을 몸쪽으로 향한 후, 양 팔을 교차시키면서 자신을 안아 보세요. 손과 팔 모양이 나비같지요? 그래서 나비포옹이라고 합니다. 손바닥이 자신의 몸에 닿는 감각을 느끼면서 자신을 토닥토닥 안아주세요. 토닥토닥... . 디짜이씨는 손이 크시니까 손바닥이 어깨와 양팔 뒷부분까지 닿으실 것 같아요. 어깨와 양팔도 토닥토닥 안아주시고 천천히 쓸어 주세요. 원하시는 만큼 실행합니다.     


다음, 착지! 양발을 어깨 넓이 정도로 벌리세요. 두 발바닥이 땅에 닿아 있는 감각을 느끼세요. 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바닥이 닿는 느낌에 집중해 보세요.     


마지막, 안전지대 안착! 가장 편안한 곳을 떠올리세요. 실제로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면 그곳으로 갑니다. 안되면 마음으로 상상하세요. 눈을 감고 안전한 곳, 평화로운 곳을 떠올리고 거기에 있다고 상상하세요.     

직접 해보니 어떠셨어요?     


디짜이: 좋긴 한데.. 제가 이걸 정말 상황에 맞춰 할 수 있을까요? 두려움과 불안이 앞서서 아무 대처도 못하면 어쩌죠? 정말 제가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서로: 그럼요! 당연히 하실 수 있죠. 안정화기법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문밖을 나와 여기 상담실까지 오는데 성공하셨잖아요. 스스로 자유를 찾아 떠나는데 성공한 분이시기도 하구요. 그렇게 강인한 정신을 가진 분인데 당연히 하실 수 있습니다. 잊지 않고 거의 자동적으로 이 기법이 몸에서 발현될 정도로 열심히 외우고 연습하셔요. 익히는 건 제가 해드릴 수 없어요. 디짜이씨께서 직접 익히셔야 해요.     


디짜이: 말씀 감사드려요. 알겠습니다... . 나는 할 수 있다!     


서로: 어머나...... . 아쉽지만 상담 시간이 벌써 꽤 지났네요. 디짜이씨, 실은 아까 오늘 상담 초기에 잠시 해주신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가 서로 도와가야 할 과제들이 아주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디짜이씨께는 안정화기법과 같은 신체 안정화가 우선 긴급하게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평생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이런 안정화기법이 필요 없어지도록, 일반적인 상황을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지하지 않도록 인지과정을 바꿔 나가는 것, 말라이홍씨에 대한 애도, 자신을 비난하는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용서하기 등 여러 과제가 좀 더 있어 보입니다. 기나긴 여정이 될 수도 있어요... . 하지만 치유와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만 하지 않으신다면 디짜이씨께서 원하시는 만큼 자유롭게 잘 살 수 있게 되실 겁니다. 그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디짜이: 힘들긴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포기하지 말자! 이 말씀, 맞을까요? 보통... 치료와 회복에 얼마나 걸리나요?     


서로: 음...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완전히 회복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의를 가지면 어느 정도 평범하게 지내실 수 있는 데에는 보통 2년 정도 걸립니다. 완전히 회복되었다 싶은 만큼이 되는 데에는 개인차가 있지만 4~5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디짜이씨의 몸의 반응을 보통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즉 PTSD라고 부르는데 최근 연구 결과인 이화여대 뇌융합과학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PTSD로 인해 손상된 편도체와 해마가 약물 및 상담을 병행했을 경우, 일반인 수준으로 회복되는데 3년 10개월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지 마시고, 천천히 차근차근 회복의 길을 걸어 내겠다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해요.     


디짜이: 아... 그렇군요. 그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에 많이 위로가 됩니다. 쉽지는 않지만 안 되는 일은 아닌 거네요. 그 끔찍한 곳에서도 탈출했는데 그 정도 쯤이야 꼭 해내고 말겁니다. 저를 위해 희생한 말라이홍을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서로: 음... 친구분 말라이홍씨에 대한 부분에서요.. 괜찮으시다면 디짜이씨께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좀 소개시켜드려도 될까요? 방금 전 말씀드린대로 회복의 여정은 생각보다 길 수 있어요. 상담사인 저도 그렇고 디짜이씨도 그렇고 우리는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또 내일이 다른, 언제는 힘과 용기가 솟지만, 또 어떤 날은 지쳐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실수나 예기치 않은 일들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기도 해요. 오늘은 제가 디짜이씨께 상담을 잘 해드린 것 같은데 다음 상담에서는 못 해드릴 수 있기도 하구요.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이 우리들만으로 서로 의지하고 이 먼 길을 가는 건 제법 어렵고 힘들고 위험할 수 있답니다. 도리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구요. 그래서 늘 변함없이 있는 그대로 그 자리를 지켜주며 지혜와 따뜻한 공감을 주는 어떤 의지처가 있으면 아주 큰 도움이 돼요. 책이 바로 그런 의지처가 되어줄 수 있구요. 어떠실까요? 한 번.. 책과 함께 이 길, 걸어 보시겠어요?     


디짜이: 아,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책, 잘 읽지도 못하고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지만 읽어보겠습니다. 책이 있으면 혼자 있을 때에도 상담실에서 도움받은 것처럼 저 스스로 필요한 내용을 찾아서 읽고 실행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읽으라고 하신 책이니 집에 있으면 그 책만 봐도 선생님과 여기 상담실이 떠올라서 마음에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      


서로: 책에 대해 긍정적이셔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네요. 먼저 추천해드릴 책은 단 카츠의 <내 머릿속 도마뱀 길들이기>입니다. 편도체나 해마, 변연계 등 지식이 필요한 내용들을 그림과 함께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에요. 불안과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과 신체 반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특히 권하는 책입니다. 분명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리고 한 권 더 있습니다. 채정호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입니다. 소중한 친구 말라이홍과 디짜이씨의 인생 이야기 전반에 아주 중요하게 등장하시는 어머님에 대한 디짜이씨의 마음을 돌볼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저도 실은 디짜이씨의 <꿈꾸는 코끼리 디짜이>를 본 사람이랍니다. 디짜이씨의 팬이에요. 그래서 디짜이씨의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있어요. 어머님과 마라이홍씨를 위해서도 꼭 이 책 두 권 읽으시며 꾸준히 치유와 회복의 길을 걸어나가시길 기원드립니다.     

 

디짜이: 아, 제목만으로도 지금 당장 읽고 싶어지네요. 책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밑줄 쫙쫙 그어가며 읽고 또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로: 도움받으셨다니 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상담 꾸준히 받으시구요, 우리 같이 책도 꾸준히 읽어 나가구요.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시면서도 안정화기법도 다시금 익히시길 바랍니다. 가시는 길에 여유가 있으시다면 서점에 들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향기 나는 따뜻한 차 한 잔은 항상 들고 다닐 수 없지만 책 한 권 정도는 항상 들고 다닐 수 있거든요. 혹시 오늘 서점에 들렀다가 디짜이씨께 향기 나는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책 한 권 만나게 되실지 누가 또 알겠어요. 그 책을 손에 잡기만 해도 마음에 안정을 찾아주는 그런 책 말이지요. 그럼 가시는 길 조심히, 평안하게 돌아가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상담실을 나가는 디짜이씨의 뒷모습은 들어올 때와는 달리 많이 편안해 보였다. 안정화기법 하나 가르쳐 드린 것뿐인데. 차 한 잔 드린 것뿐인데. 이야기를 조금 들어드린 것뿐인데. 책 몇 권 알려드린 것뿐인데. 단지 그뿐인데 디짜이씨는 많이 환해져 있었다. 돌아가시는 길은 괜찮았을까. 혹시 또 어떤 불친절한 인간이나 뾰족하고 긴 창 같은 물건이나 큰 소리 같은 걸 만나서 다시 또 세상 길 한가운데에서 얼음이 되어 버리지는 않으셨을까. 마음이 쓰이고 염려가 된다. 아직은 첫 만남인지라 꼭 해드리고 싶었던 말 하나를 전하지 못했다. 디짜이씨가 잊지 않고 지켜내었던 소중한 기억. 디짜이씨를 힘나게 해주었던 기억. 어머니에 대한 기억. 어머니. 비록 지금은 곁에 없으시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이미 디짜이씨는 잘 살아가고 계신다고 말해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안 계심. 자신을 돌볼 그 어떤 가족이나 울타리가 전혀 없음.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아주 당연한 건데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나비의 이야기이다. 나비는 평생 자신의 부모를 모른다.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기 때문이다. 애벌레를 낳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비는 알아서 나비가 된다. 자신의 부모가 나비인지도 모르는데도 말이다. 디짜이씨와 같은 분들을 만날 때면 그래서 더더욱 나비가 생각난다. 그 어떤 역경이나 환경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면의 소망을 잃지도, 잊지도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을 정직하게, 굳건하게 걸어 내 그 소망을 이뤄내는 이들. 그들이 나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디짜이씨를 생각하며 <나비는 나비를 낳지 않는다>는 시를 한 편 끄적여 본다. 언제 또 어떤 인연으로 이 시가 디짜이씨께 전해질지도 모를 일이니. 이제는 좀 쉬어야겠다. 서로의 상담소는 오늘 이렇게 또 새롭게 길어 올린 한 편의 치유 시와 함께 문을 닫아본다. 모두들, 오늘은 이만 안녕히.          






※ 본 글은 정신과 의사 김진세의 <두렵지만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를 읽고, 제게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이야기 속 캐릭터를 불러와 해당 책의 형식처럼 그 캐릭터를 상담해주는 내용으로 적은 글입니다.  

   

※ 디짜이: 책 <꿈꾸는 코끼리 디짜이>의 주인공. 태국어로 ‘기쁨’이라는 뜻. 강민경 저. 코끼리 트레킹을 하는 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잔인한 파잔 의식을 치루고, 나이 든 엄마가 다른 곳으로 팔려 가는 것을 보았으며, 코끼리 투전판에 나갔다가 발목을 다칩니다. 일을 하지 못하게 된 디짜이를 대신해 새로 들어온 말라이홍과 친구가 되고, 말라이홍이 이야기해 준 자유로운 코끼리 공원을 꿈꾸며 함께 탈출 했으나, 인간으로부터 도망가는 중에 말라이홍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도망가자고 말한 자신 때문에 말라이홍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심신이 모두 지쳐 이제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것 같던 순간, 말라이홍의 말을 떠올리며 견디고 버티고 살아내 꼭 코끼리 공원에 가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일어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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