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잘 살고 싶다고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른 날이 있었다. 다르게 살 거라,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 자조하며, 그 말이 너무 거짓 같아서, 뱉어내면 허공에서 그냥 사라져 버릴까 봐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글로만 남겼더랬다. 글이지만, 글로라도 힘을 내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세상사 다 그렇듯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세상 사람 모두 다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테지. 역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무슨 업이 그렇게도 많았던 걸까. 1, 2월 내내 여전히 내 발목을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과, 그 쇠사슬 달고서라도 도망칠까 봐 그 버거운 삶, 그걸 또 땅속 깊숙이 박혀 있는 말뚝에 굳게 걸어 놓은 것 같은 그런 하루하루였다. 나 아니면 맡을 사람이 없다며 올해 또 학폭을 맡아달라는 주변의 계속된 압박, 이젠 괜찮은 줄 알았는데 끝내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해서 다음 주면 수술대 위에 누울 하나뿐인 내 아이, 아무리 탈탈 털어도 이젠 먼지 한 톨도 더 털어줄 게 없는 인연이 되었으니 더는 연락 없이 살 줄 알았던 전남편 식구들의 설 연휴 맞이 전화질, 대충 상황 알고 있을 텐데 아무 연락이나 조치도 없는 전남편, 손주가 연휴 동안 수술 때문에 입원하는데 구정이니 노인 된 몸 모시고 성묘와 친척 모임 뒷바라지할 것이지 그것도 안 하는 천하의 독한 년 죽일 년이라 하는 친정. 그 와중에 내 몸은 참 정직하고 착실하게도 아파주었다. 온몸이 퉁퉁 붓고, 관절 마디마디가 다 아프고, 피곤하고, 절절 끓었다. 뭐야. 그렇게 노력하는데. 하나도 안 변했네, 나.
아니다. 그동안 한 가지 변했다. 내겐 ‘치유 글쓰기’라는 마음치유 운동법이 생겼다. 오늘은 이 운동 좀 해야겠다.
오늘 내가 계획한 운동의 개요는 대략 이렇다. 독서심리지도사 슈퍼비전 과정의 두 번째 교재인 <솔직하게, 상처주지 않게>에 나오는 것으로 ‘자신에게 강해질 기회를 주자’와 ‘깊지 않은 관계가 깊은 상처를 치료한다’를 해보려 한다. 이는 외상후 스트레스를 외상후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기법이다. 크게 네 가지 척도 문항을 점검하면 된다.
1. 자기 지각의 변화: 예)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대인관계의 깊이 증가: 예) 나는 이웃의 필요성을 이전보다 더 인정하게 되었다.
3.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예) 내 삶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4. 영적, 종교적 관심의 증가: 예) 영적 정신적 세계에 대한 이해가 커젔다.
책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 전미경에 의하면 ‘이런 외상 후 성장을 이루어내려면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지지도 반드시 요구된다’고 한다.‘혼자의 힘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타인도 존재해야 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 뒷받침으로는 ‘깊지 않은 관계’를 제시한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느닷없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게 되면, 세상 모든 이들이 원망스러워지는데 자신과 특별한 관계도 없으면서 사심 없는 호의를 베푸는 이들을 통해 세상 속으로 다시 걸어가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깊지 않은 관계에서 깊은 상처를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세요.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작은 호의’를 얼마든지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현재의 세계가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 여겨봅시다. 그 소리가 ‘나는 더 이상 그 과거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신호와 같다고 말입니다.”
이 부분을 읽는데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낀다. 사심 없이 내어주는 작은 호의들. 맞다. 나는 항상 그런 것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것으로 인해 지금껏 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심 없는 작은 호의들이 나에겐 나를 뒷받침해주는 공동체였던 것 같다. 그 따스한,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해서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는 공기같이, 햇살같이, 혹은 싱그러운 바람같이 항상 존재하는 무언가에서 힘을 받아본다. 오늘 내가 선택한 그 공기와 햇살, 바람의 공간은 여기 브런치이다. 사심 없는 호의로 가득한 곳 말이다. 자, 그럼 글쓰기 운동, 시작해볼까.
먼저, 첫 번째 단계 ‘자기 지각의 변화’부터 해봐야겠다. 책에 예시로 주어진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든다.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문장이다. 정신과 진료도 받아보고, 상담심리학 공부도 하면서 병식이 생긴 후 바뀐 생각의 길이 하나 있다. 나는 약하고 못난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아픈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심리 치유 관련 정신과 의사의 책 중에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권순재 저>도 있다. 아픈 거라면 낫게 도우면 된다. 나을 수 없다면 적어도 일상생활을 해낼 수 있을 만큼 보조하고 지원하고 도우면 될 거다. 나는 그것을 하는 중이다. 잘은 못 하지만 요가와 명상도 하려 하고, 염치없지만 전문가분들 틈에 껴서 상담심리학 공부도 하고 있으며, 그렇게 알게 된 기법들 중에 시쓰기와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나는 어쩌면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픈데도 이런 걸 다 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니, 나는 강한 사람이다!
다음, '대인관계의 깊이 증가'시키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마트에서 사과를 샀는데 계산원께서 바코드 찍으시다가 내게 몸을 굽혀 살짝 말해주셨다. “저기 코너 돌면 더 크고 싱싱한 사과 팔아요. 그걸로 바꿔와요. 그걸로 계산해줄게요.” 잽싸게 코너 돌아 가봤더니 정말 있었다. 더 싸고, 더 큰 사과들이. 뭉클. 그날 정말 오랜만에 냉장고 과일칸이 꽉 찼었더랬다. 지금도 과일칸에 사과가 두 알 남아 있다. 또 뭉클. 사과 두 알. 신호이다. '현재의 세계가 나를 부르는 소리'이다. ‘나는 더 이상 그 과거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신호’이다. 신호 잘 받았으니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다.
다음,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이다. 음, 지금 떠오르는 건 이거다. 아이가 수술을 잘 끝내고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지면 아이와 함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근교로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꼭 여행이 아니더라도 집 근처 공원이나 산에 자주 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좀 트인다. 나와 아이, 조촐한 우리 가족의 삶에도 좀 여유로운 시간이 허락될지도. 음, 생각난 김에 지금 장소까지 정해보련다. 선녀바위 바닷가. 대중교통으로 다녀올 수 있는 바닷가이다. 아이 수술 잘 끝나고 회복되면 바닷가 한번 다녀오고 싶다.
마지막, '영적, 종교적 관심의 증가'단계. 문득, 어떤 책에서 읽었던 말이 떠오른다. '치유'의 어원에는 '빛으로 채우다'라는 뜻이 있다고 했던 것 같다. 내게 '빛'이라는 단어는 항상 뭔가 영적인 어떤 것을 떠올리게 한다. 자가치유를 위해 이렇게 앉아 시도 쓰고 글도 쓸 때마다 매번 내면 어딘가가 밝아지고 온화해지는 걸 느끼곤 한다. '빛'같은 느낌 말이다. 나에겐 치유의 글쓰기 작업이 영적이고 종교적인 무언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작업, 해내야지. 잠시 멈춰서 나만의 치유 시 한 편, 또 끄적여 본다. 내 삶이 엉망진창이라 하더라도, 내게 주어진 조건이 이렇다 저렇다 할지라도 나는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살아내겠다는 마음, 한참 부족한 솜씨이지만 시에 담아 본다. 오늘도 그렇게 시가 내 안에서 태어났다, <조건에 대하여>.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어쩌면 아이 수술을 앞두고 불안과 두려움, 걱정에 평소보다 더 몸과 마음이 무거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수술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 아이와 함께 바닷가에 놀러갈 기대감으로 바꿔본다. 다시 한번, 생이 감사해진다. 잊지 말자. 나는, 생각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