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아이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다. 원인 미상의 저체중으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있었고, 돌 조금 지나서는 폐렴과 가와사키로 100일 가까이 또 병원 생활을 했던 터라, 평소에도 경미한 피부 접촉만 있어도 예민하게 구는 아이는 수술실 앞에 도착하자 거의 패닉이 되어 버렸다. 난 괜찮아! 난 무섭지 않아! 난 울지 않아! 를 계속 외치고, 엄마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으려 하고, 조금만 엄마한테서 떨어지면 아악, 악 소리를 질렀으며,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여기 병원 정말 최고 1등 병원 맞아요? 나 안 죽어요?”라고 물어대고, 엄마에게는 무슨 말이든 해달라고, 힘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조르고 또 조르더니 나중에는 어떻게 그 노래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는, 동요도 아닌, 소울풀 가득한 노래 <I believe I can fly>를 불러달라고 떼를 썼다. 어이쿠, 요놈 봐라. 엄살이 심하네. 좀 과하다 싶게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래고 어르던 사람들, I believe I can fly 앞에서 그만 끝내는 다같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아이 귀에 대고 조그맣게 I believe I can fly를 불러주었고, 그제야 엄마 손을 놓은 아이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며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도 엄마! 엄마! 라고 외쳤다. 나중에 간호사분께 들은 이야기인데 전신마취로 잠들기 바로 직전까지 계속 의사 선생님들께 온갖 질문을 해대며 I believe I can fly를 외쳤다고.
그렇게 무서워하는 아이를 수술실로 보낸 아이엄마는 수술실 앞에서 어떻게 기다렸을까. 아이의 투명하고도 순수한 감정을 잔뜩 받아 안은 채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울컥, 안쓰럽고 미안하고 짠한 등등의 온갖 감정들이 복받쳐 올라왔다. 아이 앞에서는 “괜찮아. 별일 없어. 앞에 너보다 어린 동생들도 다 수술 잘 받고 나왔는데 뭘. 엄마 여기서 꼼짝하지 않고 기다릴게.” 등등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해놓고는 막상 가슴과 손을 미세하게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더랬다. 그런 아이엄마를 달래주었던 건 놀랍게도 아이의 말들이었다. 아이가 평소에 하던 최강파워를 불러오는 마법주문들. 엉뚱하게도 그 말들이 그렇게 아이엄마의 마음속을 가득 채워 주었고, 아이가 그 말들을 하던 표정, 몸짓, 말투, 목소리, 매번 주문을 외치며 양팔 크게 벌려 엄마에게 뛰어와 안기던 장면까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었다. 아이엄마는 그 마법주문을 속으로 계속 따라 말하며 숨을 천천히 마시고 내쉬면서 기다림을 견뎠다.
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건 정말 최강파워를 불러내 주는 마법 주문이었다. 아이엄마는 잘 기다렸고, 아이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으며, 퇴원 후 몇 번 다량의 토혈이 있어 응급실에 한 번 다녀왔지만 잘 회복했고, 그 와중에도 태권도학원을 가고 싶어 했으며, 게임 최강 아이템 현금구매를 위해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는 작업을 착실히 해내고, 죽만 먹어야 해서 먹을 수 없었던 떡볶이와 치킨과 라면을 향한 애정을 가득 뿜어댔다.
아프고 힘들어서 엄마랑 자야 한다는 아이 옆에 누워서 까르륵, 온갖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쩍 아이엄마는 아이에게 물었다. 실은 말야, 최강파워 그거 있잖아. 엄마가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그거 해주려 했거든. 근데 너가 그건 사람들 있는 데서 하면 부끄러워하니깐 참았는데 엄마가 그때 그거 해줄 걸 그랬나?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11살이잖아. 10대라구, 10대. 그거 말고 I believe I can fly 같은거 해야쥐. 근데 엄마, 실은 나도.... 속으로 그거 했땃. 슈퍼울트라캡숑마그네틱일렉트로 베이비베이비 파워어~!
그날 밤, 아이와 아이엄마는 풍경이었고, 예뻤으며, 반짝였고, 아주 잘 잤다고 한다. 부디 세상 수많은 다른 범인들께서도 그날 그렇게 잘 잠들었기를. 오늘도 모두들 그렇게 잘 잠들기를. 이만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