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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Mar 01. 2024

나에게 사랑을

- 자기자비 기법으로 새학기 증후군 극복하기

나에게 사랑을     


햇살 고운 어느 날

마알간 도서관 창가에 앉아

나무 속살같이 바랜 책을 읽다가

글자 담은 어떤 문장 끝 종이가

동그마니한 흔적과 함께

오그라져 있는 걸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그 흔적을 어루만졌다

만져주고 또 만져주면서

글자였던 그것을 또로록,

맑은 소리로 바꾸어

종이 밖으로 꺼내주었다

- 고마워, 용케 버텨냈구나. 정말 고마워...     


오늘 나는 나에게

사랑이었던 것 같다     



※ 참고) “고마워, 용케 버텨냈구나 정말 고마워”는 나가노 하루의 책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에서 따 옴.     






  2월 말.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되려 한다. 하는 일이 초등교사이다보니 3월 초에 겪는다는 새학기증후군을 교사인 나도 함께 겪는다. 일 년간 가르칠 아이들과 업무가 배정되었고, 업무 배정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새로운 출발 앞에서 설렘과 희망보다는 버겁고 묵직한 것들이 더 많은 상황이 계속 펼쳐졌다. 올해도 역시, 그저 쉽고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보건 의학자 김승섭의 책이었던 것 같다. 희망은 항상 있다고 가벼이 말하는 것도 무책임하지만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똑같이 무책임한 것이라고. 가끔 온갖 시커먼 감정과 생각들로만 덮여서 옴짝달싹 못 할 때 나는 그의 문장을 떠올리며 속으로 이렇게 읊는다. 희망은 있어, 희망은 있어, 희망은 있어... .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긍정확언을 소리내어 자신있게 말하라고. 혹은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몸이 먼저 미소 짓고 웃으면 감정과 생각도 밝아지고 건강해진다고. 하지만 깊은 우울감이나 무기력에 한 번이라도 휩싸여 본 사람이라면 알거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우울과 무기력을 진정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정말로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여전히 그런 말들이 넘쳐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우울과 무기력이 너무 고생스러워 큰 용기를 내 인터넷에 “상담받으면 정말 효과 있나요?”라고 검색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인터넷은 대략 이런 식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동네 아무 데나 그냥 막 가지 마세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동네 집 가까운 상담실 갔더니 어떤 아줌마가 앉아서 이야기 좀 들어주고는 ‘나는 할 수 있다’를 열 번 외치라고 시켜서 그거 하고 나왔어요. 10만 원 냈어요. 그 돈으로 딴 거 할걸. 상담받고 나와서 더 좌절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해졌어요.“ 온통 그런 이야기들 투성이였다. 무슨 말인지 너무 알 것 같아서, 생에 대한 염증과 혐오감만 더 커질 것 같아서 상담받으려 했던 마음을 지운 적이 있더랬다.      


  일회용 플라스틱같다. 길바닥에 구겨 버려진 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쓰레기들 같다. 힘내, 용기 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할 수 있어, 괜찮아, 다 지나가, 다들 그러고 살아 등등.


  그런 말들이 그렇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이게 아닐까 싶다. 그런 모든 말 뒤에 숨은 말들이 너무 잘 들려서. 힘 좀 내. 밝은 척이라도 좀 하라구! 딴 사람들은 안 그런데 넌 왜 그래?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네가 그러고 있는 거, 그거 그냥 다 네 탓이야.     


  그래, 안다. 알고 있다. 이런 글을 쏟아내고 있는 나를 보며 끄덕끄덕하면서도 이렇게 생각할 거라는 걸. 속이 많이 삐뚤어졌네, 이 사람.      


  다행히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상담이라도 받아보겠다는 마음을 지우고 그저 어떻게든 묵묵히 견디며 일상을 살아내려 했지만 끝내는 모든 게 멈춰 버린 날이 왔고, 정신과에 가게 되었으며, 얼마간 정신과 약과 쉼을 가진 후, 상담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상담은 나에게 큰 위로와 도움을 주었다. 상담 첫날이 생생하다. 상담사의 질문에 이런저런 답을 하며 그때까지 겪은 일들을 그저 무심히 풀어내다가 나의 그 말들 끝에서 깨달았더랬다. 이렇게 힘들었는데. 여지껏 이렇게 살아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였구나. 나, 장하다.     


  허영과 피해의식으로 자기방어가 가득한 채 그 모든 걸 딸들에게 쏟아대던 어미, 뇌수술을 받고 지체 장애 2급이 된 폭력적인 아비, 그래도 나는 부모가 다 있는 괜찮은 집 아이였던 달동네, 더럽고 냄새나고 못 산다고 왕따 당했던 고등학생 시절, 다들 즐거운 캠퍼스 생활하는데 어떻게 안 쓰러져 죽고 살았는지 주중 과외에 주말 야간 편의점 알바까지 해서 졸업했던 대학 생활, 초등교사가 되어서는 신규 때부터 쭉 원어민교사 관리, 방과후, 기초학력, 청소년단체, 학교폭력 업무를 맡아온 시간, 그 와중에 착실히 자기 할 일 다 해준 금쪽이들과 금쪽학부모들. 이 사람은 참 나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며 결혼한 남편은 정말 남의 편이어서 독박으로 육아하며 지독한 결혼생활을 한 후, 하나 있는 아이를 위해 끝내는 이혼했던, 너무나도 클리셰하고 지긋지긋한 싱글맘 딱지까지.     


  그러네. 내 상태 안 좋을 만하네. 내가 이상한 거 아니었네. 나, 이 정도면 정말 잘 버텼다. 장하고 기특하다.

     

 그렇게 상담실 안에서 상담사 앞에 앉아 그간의 일들을 내 스스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는 그제서야 나는 그동안 일회용 플라스틱같게만 느껴젔던 말들에 닿을 수 있었다. 드디어 나도, 그 말들을 내게 해줄 수 있게 되었단 말이다. 그렇게 속 좁고 삐뚤어지고 예민하고 지지리 궁상에 못나기만 했던 내가 말이다. 이것이 되고 나자 그다음 치유와 회복은 술술 쉬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상담사께서 너무 상담이 잘 되는 케이스라며 정말 기뻐해 주셨고, 나는 용기를 내어 독서심리지도사의 슈퍼비전에서 배운 자기자비 기법을 내게 사용해 보았다. 자기자비는 세 가지 하위 요소를 가지가 있다. 알아차림, 자기친절, 인간보편성. 이 세 가지가 시퀀스를 가지고 있는 건지, 순서 상관없이 그냥 적용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명상을 하며 익힌 알아차림 기법을 먼저 실시하고, 자기친절을 수행한 후, 인간보편성을 받아들이는 순서로 해 보았다.     


1. 알아차림(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나는 지금 신학기증후군을 겪고 있다.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2. 자기친절(자기 스스로에게 이해와 친절 베풀기): 새로운 시작 앞에서 불안하고 두려운 건 이상한 게 아니야. 불안과 두려움을 통해 새로 만날 아이들을 위해 배려를 담은 세심하고 조심스러운 수업준비를 할 수 있는 거잖아. 너는 지금 잘하고 있어. 심지어 너는 네가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런 너를 돌보고 챙기는 것까지 해내고 있잖아. 너는 충분히 지혜롭고 강인해.

3. 인간보편성(지금의 경험을 개인적으로 보지 않고 모든 이들이 겪는 일임을 이해하기): 불안과 두려움은 너에게만 있는 게 아니야. 다들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학생과 업무배정 과정에서도 그렇게 많은 부딪힘과 조율이 발생했던 거잖아. 네가 못나고 약하고 문제가 있어서 불안하고 두려운 게 아니야. 우리는 이 불안과 두려움을 기반으로 더 평화롭고 안전하고 따뜻한 학교와 학급, 수업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어.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자연스럽게 와서 자연스럽게 사라질거야. 불안과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도록 너그럽게 허용해주렴.      


  아... . 뭐지. 따뜻하다. 말랑말랑해졌다. 후아... . 숨이 뱉어진다. 여유로워진다. 마지막 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너그럽게 허용해주렴.     


  신기하다. 예전엔 분명 이런 말들이 쓸데없고 의미없는, 폭력적인 말로 들렸었는데. 내가 나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해주고 있다니. 마법같다. 마법같은 일이 또 일어나고 있다. 업무배정에서 일어났던 온갖 잡음들과 신학기 불안, 두려움으로 침대 속에 콕 틀어박혀 와구와구 나를 갉아먹던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요가링을 꺼내 굳어진 몸을 풀어주고, 컴퓨터 앞에서 딴 세상 가 있는 아이를 불러서 아이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 동네 도서관으로 갔다. 불안하고 두려워 힘들어하는 나를 맘껏 놀고 쉬게 해주고 싶었다. 내겐 도서관이 그런 곳이다. 도서관은 그런 나의 바람을 단 한 번도 무너뜨린 적이 없다. 정말 진실로 진심으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꼭 읽고 싶었던, 조현병 엄마를 둔 아이였던 소녀가 어른이 되어 그간의 일들을 기록해낸 책, 나가노 하루의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가 신착도서로 들어와 있었다. 열람실에서 가장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고 적당히 따스한 창가에서 책을 읽었다. 책 표지였던 것 같다. ’타인을 돌보던 사람이 자신을 돌보는 사람으로 돌아오는 그 멀고도 험난한 시간에 관하여‘라고. 책을 읽으면서 울음이 차 올라와서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고, 꿀떡꿀떡 삼켰더랬다. 아, 집에서 읽을걸. 아냐. 집에는 이렇게 좋은 소파와 햇살 드는 창가가 없잖아. 딱 좋아. 분명 신착도서인데 책 끝 무렵에 있는 어떤 문장 위 종이가 우글우글 오그라져 있다. 동그랗게 약간 누런 형상으로 바래 있다. 뭔지 알 것 같다. 책 읽다가 눈물 떨군 누군가 있었으리라. 그 눈물 자국, 손끝으로 쓸어본다. 자기자비 기법을 실행하고 도서관으로 온 나. 나도 나에게 다시 한 번 자기자비를 위한 자기친절을 수행해 본다. 그 문장을 조용히 소리내 읽는다. 고마워, 용케 버텨냈구나. 정말 고마워... .     


  톡톡. 아이가 신호를 보낸다. 이젠 집에 가자고. 책 속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었다. 내 안 어딘가가 맑아졌다. 나를 방문했던 신학기 불안과 두려움은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많이 옅어졌다. 배고프다. 집에 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햇노란 콩나물로 뜨끈뜨끈한 국을 끓여내야겠다. 병아리마냥 샛노란 계란말이도 해야지. 말갛고 하얀 쌀밥에 첫마음 첫설렘처럼 노란 음식들을 정성스레 해 먹으련다. 3월 첫 날이다. 하얗고 노란, 햇살같고 금빛같은 마음도 같이 먹어야겠다. 행복이 별건가, 뭐. 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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