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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Mar 17. 2024

되찾은 심장

- 역설적 의도 기법으로 공황 극복하기


되찾은 심장     


늪.

거기가 내 고향이다

세상에는 섭리라는게 있다는데

그곳의 섭리는 그저 끝없이 반복되는

밀물 썰물 눅눅함 끈덕함 숨막힘

진흙뻘의 들고 남, 그게 다였다.     


그렇게 뻘 속에서

그저 무한히 힘겹게 어기적대던

고 어린 것의 팔과 다리는

끝내 몽당거린 채 더 크지 못했다

아무리 뻗어내봤자 닿는 건 그저

온통 뻘이었기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게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렇게 가만히

동그랗고

작게.     


궁, 쿠

궁, 쿠궁

쿠궁 쿠궁 쿠궁

쿠궁 쿠궁 쿠궁 쿠궁!     


들려왔다,

들렸고, 들었다.

심장 소리였다.     


그건 북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자신의 온 존재를 쥐어 짜내

뜨거운 피를 뿜어내는 소리였다

그것은 뛰고 있지 않았다, 다만

마치 꽃처럼 오무려졌다 펴졌다 했다.     


아, 그랬구나. 섭리여.

그대는 북이 아니다, 치지 말아라.

그대는 들짐승이 아니다, 뛰지 말아라.     


피고 지는 꽃처럼

뜨고 지는 해처럼

들고 나는 파도처럼

오고 가는 바람처럼

한껏 웅크렸다, 활짝

열리는 그대의

꽃, 그대의

심장.     


잠시 웅크렸던 덕에

잊었던, 잃었던 심장을,

그 소리와 역동을 되찾았다.     


밖으로 뻗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내 안의 심장 소리, 그것을

들으며 살자, 그러면

살 수 있다.                         







  재작년이다. 공황발작으로 약을 먹었다. 딱 2개월, 긴급할 시 입에 털어 넣을 약도 들고 다녀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후, 딱 한 번이었다, 발작은. 병원 진료가 끝나고 날이 너무 좋아 그냥 집에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그런 날이었다. 근처 예쁜 커피숍에 들어가 창가에 앉아 꽤 근사하게 있었던 거 같은데 발작이 왔고, 약을 삼켰더랬다. 그게 다였다. 그 후, 한 번도 증상이 없었다. 다행히 2개월 만에 우울증 약과 수면장애를 돕는 약 정도면 충분해졌고, 의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급성으로 온 공황이라고. 상황상 집단적으로 발생했을 텐데 직장의 다른 분들은 괜찮으시냐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내가 휴직을 하고, 한 달 후 또 한 분이 휴직을 했으며, 내가 있던 자리에 새로 오신 분께서도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기 시작하셨다고. 내게 병원을 소개시켜주신 보건선생님께서는 휴직은 안 하셨지만 갑작스런 증상으로 병원 가셨다가 심부전증 진단을 받으셔서 명퇴 신청하셨다고.     


 작년이다. 꽃같이 젊은 분께서 세상을 등지셨고, 광화문에 얼마간 검은 파도가 크게 일렁였다. 나, 이상한 거 아니었구나. 나 같은 분들, 많아도 정말 많았구나. 내가 무능력하고 부족하고 못난 게 아니었구나.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던 거구나. 내가 있던 직장은 그래도 동료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셨고, 우린 그래도, 그래서 생존은 했구나. 그거는 해냈구나.     


  올해다. 괜찮은 줄 알았다. 어느 정도 회복한 줄 알았다. 뭔가 잘못되었음을 다들 인식했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으며, 한참 멀었겠지만 치유와 회복, 온전함으로 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그것이 시작되었으니 시작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뤄낸 거라고, 계속 걸어내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안심했던 것 같다. 아니, 안일했던 거겠지. 그리고 지지난 주였다.     


  수업 시작 종소리가 났다. 그것을 듣자마자 내 심장은 그만, 갑작스럽게 고통스럽게 조여들면서 뛰기 시작했다.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3월 첫 주, 첫 수업 시작 종이었다.     


  지금 이 순간, ‘어떡해!’라고 외치셨을 분들을 위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남겨본다. 다행히 나는 올해, 담임이 아니라 교과전담 교사이고, 첫 주, 첫 수업 시작 종이 울렸을 때 수업이 없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다행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수업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전혀 긴장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내 심장은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나는 학기 첫날, 첫 아침을 그렇게 책상 앞에서 통증과 함께 웅크린 채 보냈다. 식은땀, 공포, 두려움, 불안, 그런데 그동안 상담심리 공부한 건 있어서 머리로는 다른 말들이 돌아가는 기묘한 경험. 생각도, 감정도, 몸도 다 내 것이 아닌데 그걸 온통 다 그대로 느끼고, 인식하고 있는 나. 교과 전담실이었고, 나 혼자 있었고, 조용하면서도 고요했다. 내 심장 소리만 또렷이 들렸다. 개학식을 하느라 애국가와 교가가 들려오는데 신기하게도 아주 생생하면서도 먹먹하게 느껴졌다. 심장 소리, 그것만 진짜 같았다.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증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5~10분 정도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문제는 또 있었다. 40분, 10분 간격으로 종소리는 6교시까지 6번 계속되었고, 나는 그 종소리를 오롯이 겪어야 했다. 다행히 그날, 나는 하루종일 수업이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그냥 내 심장과 함께 하리라. 그날 처음으로, 나는 학교 종소리에 내 심장이 이렇게까지 뛰고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1교시 시작 때는 너무 무서웠는데, 2교시, 3교시 지나가면서 기묘하게도 증상을 겪으면서 동시에 그래도 괜찮아졌다. 공부라는 게 참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나는 머리로 그동안 배운 상담심리학 기법들을 떠올리고 있었으니. 굳이 학문적으로 설명하자면 나는 그날 ‘역설적 의도’라는 상담 기법과 유사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 거였다. 역설적 의도 기법은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다. 내담자가 공포심을 느끼고 두려워하는 것을 일부러 유발하고, 그 안에 있게 하는 것. 그렇게 막상 그 일을 겪었는데 별일 없더라는, 그렇게 무섭고 공포스러웠던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더라는 걸 실제로 경험하게 하는 것. 공포는 공포일 뿐이고,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해서 부정적 심리도식을 교정 및 치료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실제로 공황증세가 있는 분들에게 사용한다고 배웠는데 의도치 않게 그런 상황 속에 있게 된 것이다. 굳이 나의 심리도식을 분석하자면 이런 걸 거다. 수업이 두렵다. 학생들 만나는 게 두렵다. 종소리를 들으면 수업이 시작되고 학생들을 만난다는 걸 내 몸은 안다. 그래서 종소리를 듣자마자 내 심장은 두려움과 공포 신호를 받았고,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행동, 즉 빨리 뛰어서 지금 여기에서 도망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어주려고 했을 거다. 내 심장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그저 나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     


  수업 둘째 날, 그날도 하루종일 수업이 없었다. 나는 그날도 심장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있었다. 물론 나름 이런 생각도 했다. 음, 오늘도 역설적 의도 기법 치료를 받을 수 있겠군. 그날 하루, 별일 없이 지나갔다. 역시 그 전날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     


  수업 셋째 날, 감사하게도 그날도 수업이 없었다.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만 했다. 이제는 제법 여유가 생겼다. 종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요가 아사나 중 나름의 물고기 자세를 취했다가 풀었다가 몸을 한껏 웅크렸다가 풀었다가 했다. 독서심리지도사에서도 비슷한 동작을 배웠고, 개인상담 받던 때에도 연습했었으며, 요가수련을 할 때 실제로 요가 선생님께서도 아사나 수련 중간중간에 이완 기법으로 쓰시던 움직임이라서 익숙했다. 이젠 이런 기법들을 떠올려 내게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몸과 마음, 정신에 여유가 생긴 걸 테지. 역설적 의도 기법, 확실히 효과 있네.     


  개학 후 넷째 날, 여전히 종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평소보다 과하게 뛰는 걸 느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수업을 다 해냈다. 심지어 아이들과 즐겁게 웃으면서, 농담도 하면서 여유롭게. 그리고 하루종일 역시나, 다행히도 별일 없었다. 뭐, 당연한 일이다. 학기 초인데. 아직은 아이들도 적당한 거리감을 지키며 적당한 긴장감 속에서 학생답게 있는 시기이니. 수업을 다 끝내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앉는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요즘 내 심장소리에 가장 집중하며 지냈다는 것을.  그리고 꽤 괜찮게 지냈다는 것을.


  눈을 감았다. 더 잘 듣고 싶었다. 내 심장소리를.


  심장이 이제는 알고 있을까. 종소리가 들려도 괜찮다는 걸. 아무 일 없었다는 걸. 심지어 어떤 반의 어떤 수업은, 어떤 학생들은, 아니 실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새 학기 새 출발 속에서 잘 해내고 싶은 선한 마음으로 나의 수업을 들어 주었다는 걸. 우리는 수업을 하면서 즐거웠고, 기뻤고, 감사했다는 걸. 지금 나는 감사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벅찬 상태라는 걸. 그래서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심장이 평소보다 과하게 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걸. 내 심장이 부디 알아주기를. 심장도 인간의 언어를 이해할까. 말로 해줘야 할까. 아니다. 언어로 전하고 싶지 않았다. 말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런 내 상태를 내 심장도 함께 온전히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고요히, 그리고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심장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연필을 들어 위의 시를 적었다.      


  지금까지는 지지난 주, 3월 첫 주의 이야기였다. 지난 주, 3월 둘째 주, 나는 여전히 종소리를 들으면 평소보다 좀 과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 소리 안에서 나는 물론 여전히 두려움, 불안, 걱정도 느끼지만 그래도 괜찮음을, 그 박동은 어쩌면 기대감일지도 모름을, 잘 해내고 싶은 의욕을 담은 소리이기도 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교사인데, 교사가, 종소리 들으면 심장이 뛰어야지. 그게 맞는 거네. 이상한 거 아니네. 어쩌면 힘든 일들 겪고 나서 이제야 아주 조금은, 제대로 된 교사가 되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수업 종소리를 들으면 세차게 심장이 뛰는 교사가 이제야 겨우 되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주 조금은 성장한 걸까. 다시 또 눈을 감아본다. 내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끊임없이 강인하고 아름답게 피고 지는 나의 붉은 꽃이여. 나도 그렇게 피어나기를. 우리 모두 그렇게 피어나기를. 온 세상이 그렇게 피어나기를. 부디 모든 존재가 그러하기를.


눈을 뜬다. 오늘도 잘 살았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자, 다시 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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