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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Dec 01. 2022

믹스견을 위하여

100번째 글, 세상의 모든 믹스견을 위하여♡


혼자서 반려견 둘을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에이, 진짜 못해 먹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 첫째는 13킬로의 중형견 사이즈에 다리에 비해 허리가 무지하게 긴, 소위 똥개 내지는 진도 믹스라고 불리는 황색 시고르자브종이다. 그리고 우리 둘째는 5킬로 정도 되는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라는 소형 품종견이다. 모든 이가 반려인일 수는 없기에 모든 이의 이해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처럼 키우는 나의 개 아들딸에게 이런저런 사견을 붙이는 사람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날 때가 많다. 일단, 둘째를 향한 그들의 형용사는 몹시 긍정적이다. 작다, 귀엽다, 예쁘다, 키우기 좋다, 털도 안 빠질 것 같다, 애교 많다, 사회성 좋다, 순종이라 그런지 품위 있다, 등등이 그것이다. 반면, 첫째에게 붙는 형용사는 이와는 아주 상반된 성질을 가진다. 이제껏 들은 것 중 그나마 가장 나은 평이 개가 아니라 고라니 새끼 같다, 정도고, 정말 큰 싸움 날 뻔했던 말은 바로 생긴 게 바보 같다,였다.


사람들이 순종견을 선호하면서 순종이 아닌 것은 모두 믹스견으로 분류되었다. 그 순종도 처음에는 다들 믹스견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로 말이다. 믹스견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모질도, 생김새도, 체형도, 특징도 모두 다른 고유한 생명체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도 못 하면서 그랬다.


믹스견 하나와 품종견 하나를 돌보는 반려인이 된 지 어느덧 2년 차에 접어들었다. 고라니 새끼 같지 않고, 생긴 게 바보 같지도 않은, 평생 키우기 좋은 소형 순종견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데도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유기견이 발생하는 현실을 애석해 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돼 간단 말이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첫째와 나에게 스트레스 요인임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밤 시간을 이용해 산책을 나가곤 한다. 어느 날부터, 익숙한 산책 길 위에서 둘째가 풀밭에 코를 고 정신없이 자연의 냄새를 맡는 동안, 첫째는 미동도 않고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한 곳을 물끄러미 응시하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이라도 지나가는 걸까 하여 첫째의 시선이 닿은 곳을 따라가 보면, 달 없는 밤의 어둠뿐이다. 인간은 볼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느끼는 것인가 하는 섬뜩함에 목줄을 끌어 발걸음을 재촉해 보아도 떡하니 버티는 첫째였다.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어제도 첫째는 산책길 위에서  곳에 시선을 꽂고 걸음을 멈췄다. 살을 에는 겨울바람에 빨리 가자, 고 연신 외쳐보았지만, 그날따라 어쩐 일인지 첫째의 뒷다리가 땅에 박힌 듯 유달리 굳건했다. 할 수 없이 자력으로 움직이길 바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그 순간, 첫째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그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13킬로의 개에게 55킬로의 인간이 질질 끌려가는 진풍경 끝에 도착한 그곳에서 조그마한 기척이 느껴졌다.


부스럭부스럭.


첫째가 코와 앞발로 덤불을 헤치자 자그마한 개 한 마리가 추위에, 그리고 두려움에 두 눈을 사정없이 굴리며 벌벌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털이 푸석푸석하고 엉킨 것이 꽤 오래 떠돌이 생활을 한 것처럼 보였다. 첫째는 처음 만난 떠돌이 개 앞에서 혀를 쑥 내밀고 더운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었다. 힘이 없어서 인지 마냥 떨고만 있는 개에게 얼른 목도리를 벗어 덮어주고 간식 통에서 사료 한 줌을 꺼내 바닥에 뿌려주었지만,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봉사활동을 다니던 유기견 보호소 매니저님께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흔쾌히 구조에 응해주었다.


“한 십분 뒤에 도착해요. 추워도 그 자리에 있어요. 피부병이 있을 수 있고,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괜히 만지려고 하지 말고요. 오늘 걔 꼭 잡아야 돼요. 안 그럼 이 날씨에 걔, 백 프로 얼어 죽습니다.”


영겁 같은 십분 동안 냉동고 같은 추위 속에서 우리 첫째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주변을 경계하며 떠돌이 개의 곁을 지켰다. 테리어 믹스로 보인다는 떠돌이 개가 무사히 구조되고 매니저님을 차까지 배웅하고 나서야 첫째의 긴장이 풀린 듯했다. 그제야 쫑긋 했던 귀가 내려가고 빠짝 솟아있던 꼬리를 살랑댔다. 집으로 와 첫째를 따뜻한 물에 목욕시키며 수고한 두 볼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너는 어떻게 처음 본 개한테도 그렇게 충성스럽냐?”


검은 자로 가득한 첫째의 눈이 내게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처음 본 아니에요. 계속 보고 있었어요.’


문득, 매일 걷는 산책길에서 어느 순간부터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어딘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첫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부터 산책 중에 그 자리에 멈춰 는지, 그 시작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얼마간 반복되던 행동이었다. 첫째는 이미 며칠 전부터 그곳에 꺼져가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첫째는 누군가에겐 순종이 아니라서 버림받은 개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겐 가장 추운 날, 가장 따뜻한 마음을 보여준 개다.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예쁘고, 착하고, 품격 높은 믹스견, 이토록 기특한 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완성, 부족한 그 자체로 사랑하는 나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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