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박카스

by 이미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는 어른들에게 목욕탕은 꽤 신경 쓰이는 곳이다. 혹시나 한눈파는 사이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혼자 탕에 빠져 허우적대면 어쩌나 하며 노심초사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목욕하러 오는 엄마들을 보면, 꼭 친정엄마나 시모랑 같이 셋이서 오는 경우가 많다. 엄마 본인의 때를 밀고 머리를 감는 동안 애를 돌봐 주는 사람 하나는 꼭 있어야 뒤탈이 없으니까 그렇다.


하지만 애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목욕탕은 신세계다. 일단 제 몸의 몇 십 배나 되는 수영장만큼 넓은 탕이 기본으로 두 개가 있지 않은가. 어른들이 없을 때 첨벙첨벙 발을 굴려 천장까지 물보라를 튀기며 노는 것은 정말이지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가지 테마가 있는 목욕탕은 훨씬 더 재미있다. 쑥 탕에는 녹색 물이, 황토탕에는 노란 물이, 참숯탕에는 검은 물이 철렁인다. 보기에는 초록에 노랗고 까만색의 물인데, 막상 손으로 한 움큼 떠보면 보통의 투명한 물인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탕 물을 색색으로 물들이는 약초 주머니를 찾아 조물조물하다 터뜨려 주인아줌마의 호된 야단을 맞기도 하지만, 눈물 콧물을 쏙 뺄 만큼 혼이 나도 여전히 재미있는 건 어쩔 수 없다.


나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 아이들이 많아서 목욕탕에 가면 쉽게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바가지로 배를 만든 후 탕에 띄워 배 몰이 놀이도 했고, 바닥이 미끄러운 것이 위험한 건지도 모르고 꼬리잡기 놀이를 하다 넘어져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그래도 재밌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엄마를 졸라 얻어먹는 그때 그 초콜릿 맛 우유와 딸기 맛 우유는 얼마나 달았던가.


어린 우리는 온몸을 강타하는 뜨거운 열기를 뚫고 어둑어둑한 사우나에 입성해, 벽에 오도카니 걸려있던 모래시계를 얼른 돌려놓고 나오는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어른들 몰래 그러는 게 엄청난 미션이라도 되는 양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사우나 습격 작전 계획을 세웠다. 탕 속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서로 얼굴만 쳐다봐도 즐거워 까르르 웃곤 하던 수많은 동네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다들 그때 그 시절 자기만 한 애를 데리고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는 애를, 나머지 한 손으로는 자기 몸의 때를 미는 둥 마는 둥, 머리를 감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호랑이 할머니는 어린 내가 이토록 재미있는 목욕탕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도, 손톱으로 팔이나 다리를 일자로 쫙 긁었을 때 허연 각질이 일어나지 않으면 절대 불허했다. 아무리 떼를 쓰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봐도 단호했다. 밀릴 때가 충분하지 않으면 목욕비가 아깝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 그래서 나는 굳이 손톱으로 긁을 필요 없이 눈으로만 봐도 팔다리에 허옇게 각질이 일어나 있을 때만 목욕탕에 쉬이 갈 수 있었다.


우리 호랑이 할머니는 손자에게는 무한정한 물심양면의 사랑을 보였지만, 손녀들은 가차 없이 냉정하고 무심하게 대했다. 그 차이가 얼마나 심했냐면, 손자용 비누와 손녀용 비누가 달랐다. 손자용 비누는 최고급 세안용으로 아주 향기로운 비누였고, 손녀용은 무향의 거친 빨랫비누였으니... 손자의 몸에서 나오는 때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녀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아이고, 우리 장군이 밥을 많이 먹어서 다 때로 키웠나 보네. 국수같이 쭐쭐 밀리네. 아이고, 장해라.’ 하며 연신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반면에 손녀에게서 때가 많이 나오면, ‘계집들이 밥만 먹고 때만 키웠나 보네. 너희들이 지우개냐?’라며 핀잔을 주었다. 똑같은 자식인데도 성별에 따라 선택되는 때에 대한 클리셰의 어휘나 명사 뒤에 붙는 조사, 목소리 톤과 음의 높낮이, 말을 전달하는 그녀의 몸짓과 표정은 서운할 정도로 달랐다. 그 당시 호랑이 할머니의 남아선호 사상이 비누 한 장에도 이토록 짙게 묻어나니, 참 섭섭할 노릇이다.


나는 평소, 너무 무섭고 매정한 호랑이 할머니를 엄청나게 싫어했는데 단, 목욕탕에서만은 예외를 두었다. 그녀를 목욕탕에서만은 좋아해 드리기로 마음먹은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박카스 때문이었다. 박카스의 영롱한 레몬 빛을 보시라. 그렇게 눈이 부실 정도로 형형한 노란 색에 반하지 않을 아이가 세상에 어디에 있으랴. 박카스는 예쁜 색만큼 맛도 정말 기똥찰 것 같았다.

호랑이 할머니는 목욕탕에 가면 꼭 박카스를 한 병씩 사 마셨다. 그때마다 쥐똥만큼 남겨 나에게 주곤 했다. 새 모이 받아먹듯 마신 박카스가 그땐 왜 그렇게 꿀맛이던지. 마귀할멈 같은 손톱으로 팔다리가 마구 긁히는 수모를 당해도, 똑같은 ‘때’임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지우개 취급을 받아도, 차디찬 목욕탕 바닥에 아무렇게나 눕혀 빨랫비누로 온몸이 빨리는 한 장의 빨랫감이 되어도, 그 찬란한 노란빛의 박카스 한 모금이면 나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나는 요즘도 목욕탕 냉장고 한편에 박카스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노라면, 그때 그 호랑이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목욕탕 냉장고 속 일렬로 정렬된 박카스 병만 보면 왜 그리 할머니 생각이 나는 건지... 일제 강점기에, 육이오를 거쳐, 보릿고개까지 넘은 그녀도 여자로서 모진 세월 견뎌내느라 힘들었겠지, 하며... 병약한 남편 대신 가장이 되어,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과일을 팔아 번 돈으로 저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저 입고 싶은 옷도 한 번 못 해 입고, 아들부터 챙겨 먹이고 입혀 키웠겠지, 하며... 몇 백 원 하던 그 당시 목욕비가 아까워 손녀 몸에서 허연 각질이 쌓이는 것을 한참이나 지켜봐야 했겠지, 하며... 아끼고 아껴 모은 돈으로 손자와 손녀를 한꺼번에 데리고 목욕탕으로 가서 본전을 뽑는 심경으로 씻겼겠지, 하며 말이다.


목욕탕 입구에 있는 냉장고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할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 찰나에 박카스를 사 먹을지 말지 수도 없이 고민을 하고 나서, 떨리는 손으로 겨우 한 병 꺼내 마시던 그 호랑이 할머니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들르는 목욕탕에서만 겨우 사 먹을 수 있었던 박카스 한 병에 꽂힌, 내 기억 속 그녀의 시선이 왜인지 사뭇 처량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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