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김 사장의 손

by 이미


살을 에는 바람이 불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겨울이 오면 나는 우리 무뚝뚝한 김 사장의 손부터 살펴본다. 우리 김 사장의 손발은 건조하고 추운 겨울날 유독 잘 트기 때문이다. 간혹 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진 그의 손등에 피딱지가 붙어있기도 했다. 옛날 경상도 남자인 김 사장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식들 먹여 살리는 데는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의 손등을 돌보는 데는 아직 서툴다. 그래서 나는 겨울엔, 아빠를 만날 때마다 그의 손등부터 확인한다. 터진 구석은 없는지, 갈라진 데는 없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그동안 나를 먹이고 재우고 돌봐준 보답으로 일찌감치 김 사장의 손등 정도는 내가 맡아 관리해주기로 한 셈이다.

“어휴 손이 이게 뭐야. 누가 보면 거지인 줄 알겠다. 핸드크림 좀 발라!”


큰딸의 날 선 핀잔에도 별다른 타격 없이 남자가 열없게 무슨 화장품을 바르냐며, 이 정도는 아프지도 않고 괜찮다며 허허 웃고 치우는 상남자 김 사장이다.


김 사장은 날이 더우나 추우나 동네 한 바퀴씩은 꼭 돌다 오는 소박한 운동을 매일 하는 아주 규칙적인 사람이다. 더운 날에는 챙 모자 하나만 달랑 덮어쓴 채 그 뜨거운 뙤약볕을 다 맞고 오고, 추운 날에는 귀마개 하나 정도만 두르고서 찬 공기를 담뿍 덮어쓰고 온다. 여름 산책을 위해 얼굴과 목에 꼼꼼하게 선크림을 바르지도 않고, 겨울 산책을 위해 두 손에 따뜻한 장갑을 끼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름의 김 사장은 새까맣게 탄 얼굴과 미처 얼굴의 탄 색을 따라가지 못해 목의 경계가 뚜렷해지는 투톤 남(two-toned man)이 되고, 겨울의 김 사장은 바람이 쌩쌩 불면 불수록 도지는 안면 홍조로 점점 발개지는 두 볼의 소유자가 된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사시사철 촌스러운 것이 나름대로 귀여운 김 사장이 된다.



추운 날 밖에 나갈 땐 제발 장갑 좀 끼고 나가라는 가족의 다그침에 잠깐 그러다가도, 이제껏 맨손으로 살아온 사나이 김 사장이라서 인지 이내 갑갑함과 답답함을 토로하고 만다. 그래서 김 사장은 결국 또 맨손으로 겨울 길을 나선다.


나 어릴 적, 겨울철에 일하고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를 반갑다고 꼭 껴안으면, 그의 모직 코트 위에 내려앉은 한기가 내복만 입은 내 작은 몸뚱어리를 서늘하게 감싸던 기억이 난다. 그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가장의 무게와 삶의 노곤을 툭툭 털어내듯, 코트 위를 구르는 작은 이슬방울을 툴툴 털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서던 김 사장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빠 손이 추울까 봐 내 작은 두 손으로 꼭 잡고 호호 불어주다 보면 허옇게 튼 김 사장의 손이 눈앞에서 투박함을 뽐낼 때가 있었다.


“이익! 아빠 손에 때 있어. 더러워!”


그때는, 그 때 낀 손이 추운 겨울날 야외에서 하는 일도 마다치 않고 도맡아 성실히 돈을 벌던 장한 손인 줄을 몰랐다. 그때는, 추운 겨울날에 부르터지도록 열심히 일한 김 사장의 두 손이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단한 손인 줄을 몰랐다. 그때의 어린 나는 김 사장의 억세고 거친 두 손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했다.


어린 딸이 더럽다고 기겁하면서 당신 손을 쳐내는 날이면, 김 사장은 민망함에 딸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한번 헝클이고는 말없이 부엌으로 가 물 한 바가지를 팔팔 끓여 세숫대야에 담아왔다. 팔팔 끓은 뜨거운 물 한 바가지와 오이 향 세숫비누 하나, 그리고 녹색 이태리타월이 모두 준비되면 김 사장은 군불을 지핀 뜨뜻한 방바닥에 아빠 다리를 하고 편히 앉았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물에 손을 슬쩍슬쩍 적시다가 별안간 푹 담그기도 했다. 옆에서 이 기괴한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어린 마음에 깜짝 놀라 울먹였다.


“아빠, 안 아파? 왜 손을 끓는 물에 넣어.”


김 사장은 아빠가 되면 이런 건 하나도 안 아프다고 너스레를 떨고는 뜨거운 물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때를 불렸다.



허옇게 튼 김 사장의 손에서 때가 불어날수록 피부가 시뻘겋게 붉어졌다. 김 사장은 벌겋게 익은 손이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손등과 손가락 사이까지 꼼꼼하게 비누를 칠했다. 그러고는 모서리가 헤진 녹색 이태리타월을 왼손에 끼고 오른손의 때부터 밀어내기 시작했다. 세숫대야의 가장자리를 타고 탈출하던 새하얀 김이 한풀 가시고, 투명하던 물이 회색 땟국물로 변할 즘 김 사장은 물을 갈아 왔다. 그러고는 왼손의 때를 벗겨냈다.


김 사장을 따라 어린 나도 물에 슬쩍슬쩍 손을 넣어보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뜨거움에 화들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딸의 얼굴을 보고 김 사장은 껄껄 웃으며 찬물을 한 잔 탔다. 그러면 어린 나도 쉽게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따끈한 온도로 바뀌었다. 첫째 딸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 사장은 자신의 나머지 한 손을 씻다 말고 내 손을 매매 씻어주기 시작했다. 그 시절, 김 사장이 살살 밀어주던 이태리타월의 까칠한 감촉이 참으로 좋았다.


추운 겨울날, 어린 나는 여전히 이곳저곳이 터진 채 미처 밀어내지 못한 때가 반쯤 덮여있는 아빠 손을 따끈한 물속에서 살포시 잡아주었다.

손의 때를 한바탕 깨꼼이 벗겨낸 우리는 사이좋게 베이비 로션을 나눠 발랐다. 목욕탕에서 목욕하고 나온 후 내 몸에 베이비 로션을 발라주던 엄마를 흉내 내며 김 사장의 손에도 화장품을 덕지덕지 발라주었다.


“아휴, 여보 손이 이게 뭐야. 손이 곱질 못해요. 앞으로 피부 관리 좀 해요오~”


김 사장은 특유의 걸걸한 웃음을 한 번 더 쏟아내고는 ‘네 여보, 알았어요오~’하며 맞장구를 쳤다. 아버지와 딸, 어린 딸과 젊은 아버지는 그렇게 소곤소곤 겨울밤을 덥혔다.


요즘도 주말마다 부모님을 뵈러 본집에 가보면, 작년 겨울쯤 사드렸던 핸드크림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안방 화장대 위에 오도카니 서 있다. 도대체 왜 양이 안 줄어드느냐고, 하나도 안 쓰는 데 핸드크림을 사주면 뭐 하냐고 면박을 주면, 김 사장이 개구쟁이처럼 씩 웃으며 뻔뻔하게 대답한다.


“우리 딸이 준 거라서 올겨울에 쓰려고 아껴두었지.”



지금의 나는 진작 훌쩍 장성해, 겨울철 손이 부르트도록 가장 역할을 다했던 그때 그 김 사장의 나이만큼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김 사장의 손을 다시 잡기 시작한 게 그때 이후로 언제였던지 까마득하다.


올겨울에도 아빠의 두 손을 꼭 잡아볼 테다. 어릴 적 그때처럼 터진 구석은 없는지, 어릴 적 따뜻한 대야 속에서 살며시 쥐어 보았던 그때의 두 손처럼 여전히 따뜻할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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