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랑은 향기를 타고

by 이미


내 친구 하하는 늘씬하니, 키도 170cm가 훌쩍 넘고 웃음이 굉장히 괄괄한 상여자다. 우리가 서로를 처음 만 날, 그녀에게서는 묘하게 한의원 냄새가 났다. 하하는 빵집에 친구들을 삼삼오오 모아 수다 떨기를 참 좋아했는데, 그녀가 입을 뗄 때마다, 박장대소할 때마다, 달아오르는 수다의 수위에 덩달아 흥분해 제스처와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그녀에게선 알싸한 한약 냄새가 폴폴 풍겼다. 한약재 향을 가히 좋아하는 나는 매번 하하 옆에 딱 붙어 앉아 풍기는 체취를 음미하는데 몰입했고, 그 바람에 어딜 가나 항상 나란히 앉게 되며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하하는 만날 때마다 다른 향을 품고 왔다. 먹음직스러운 빨간 사과가 프린트된 블랙 스커트를 입고 왔을 땐 그린 애플 향이, 오렌지색 원피스를 입고 온 날은 시트러스 향이 났다. 브라운 계열의 세무 재킷을 입은 날은 시나몬 향이 났고, 연보라색 힐을 신었을 땐 라벤더 향이 났다.


하하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은 꼭 반신욕을 하는 반신욕 홀릭임과 동시에, 온온한 물에 에센셜 오일을 추가해 목욕을 즐기는 아로마테라피 마니아다. 밤에 반신욕을 할 때는 그날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향을 선택하고, 아침에 반신욕을 할 때는 하루 동안 입을 의상에 맞춰 옷의 컬러와 잘 어울리는 향의 오일을 고른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그녀의 몸에서 한약 냄새가 난 것도 클라리세이지와 라벤더, 페퍼민트 등등을 섞어 반신욕을 했던 까닭이었다.


하하의 욕실에는 커다란 욕조 위에 나무 선반이 달려있는데 그곳에 다양한 향을 담은 오일 병들이 일렬로 전시되어 있다. 그곳에서 이따금 하루의 기분에 따라, 또 기호에 따라 향을 고른 후 반신욕을 위한 따뜻한 물에 몇 방울씩 떨어뜨려 목욕을 하는 것이다.

자몽 같은 상큼한 과일 향을 입었을 때 하하는 마치 요정처럼 행동했다. 평소보다 발걸음이 훨씬 가볍고 사뿐한 것이 멀리서 보면 마치 요정이 날아다니는 것만 같다. 더불어, 조잘대는 그녀의 목소리도 왠지 소녀같이 발랄해진 면이 있다. 샌달우드 같은 시원한 나무 향을 입었을 때 그녀는 시크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인다. 고민을 털어놓는 나를 위해 진지한 경청의 자세를 취하고 좀 더 합리적인 평가나 판단을 내려주려 노력한다. 이럴 땐 꼭 친언니 같은 구석이 있다. 재스민이나 라벤더처럼 포근한 향을 입었을 때의 하하는 엄마 같은 편안함이 있다. 갓 빨아 보송보송해진 새 옷처럼 폭 안기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런 향이 그녀에게서 날 때면 나는 속에 있는 우울한 얘기를 꺼내 놓는다. 그녀가 건네는 안온한 위로를 받기 위해서다.


하하의 페르소나는 향이다. 어떤 이는 말과 표정에서, 어떤 이는 행동이나 소지하고 다니는 물건에서 인격이 드러난다. 하하의 인격은 향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때론 낙천적이고 명랑하게, 때론 이성적이고 엄격하게, 때론 유연하고 친절한 향을 풍긴다. 그녀가 흩뿌리는 향에 따라 그녀는 때론 명랑하고, 때론 엄격하고, 때론 친절한 사람이 된다.


나는 한없이 울적할 때면 반사적으로 하하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그녀와 실컷 울고 웃고 떠들다 보면 우울함이 조금 가시기 때문이다. 하하는 내 목소리가 유달리 어두운 날이면 항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의 집으로 나를 초대한다.


“야, 내가 떡볶이 사줄 테니까 우리 집에 와. 우울할 땐 떡볶이가 최고지.”


하하는 달걀과 치즈를 듬뿍 추가한 떡볶이와 와인 한 병을 미리 세팅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도착하면 하하는 떡볶이와 함께 큰 치즈 덩이를 쭉 찢어 내 앞접시에 덜어 준다. 느끼하고 맵고 짜고 달고 살찌는 것을 많이 먹어 우울감 따위는 얼른 몸속에서 밀어내버리라는 듯 쉴 새 없이 나를 먹이고 또 먹인다.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나면 하하는 언제나 목욕물을 받아 준다. 호호바 오일에 우울한 기분을 가시게 하는 라벤더와 베르가모트, 그리고 일랑일랑 두어 방울을 더해 따뜻한 온도로 맞추어 준다. 손으로 휘휘 저어 오일을 물에 풀어주며 하하는 각각의 특유한 향에 관해 설명한다.


“라벤더는 꽃 향이지만 뭔가 흙냄새가 나는 것이 가장 자연에 가까운 향 같아. 우리 인간도 머릿속이 어지럽고 마음이 복잡할 때는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을 찾아 떠나잖아. 탁 트인 곳에서 좋은 경치를 보고, 좋은 공기도 마시려고. 그러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곤 하지. 인간은 정말 아이러니해. 인간이 인간 속에 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괴로움이 쌓이니까. 반대로 자연 속에 있을 땐 쌓였던 괴로움이 절로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지. 그런 의미에서 라벤더는 자연의 향, 그 자체야. 괴롭고 불안한 인간의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탁월하거든. 숙면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지?”


“너 저번에 캔들 샵에 갔을 때 보니 시트러스 향에 완전히 꽂혀 있던데, 베르가모트가 시트러스 계열의 향을 뿜어. 상큼해서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향이지. 한번 맞아봐. 향긋하지? 스트레스를 받을 땐 억지로라도 기분 좋아지는 뭔가를 할 필요가 있어. 근데 그게 말이 쉽지, 온몸과 마음에 스트레스가 가득할 때 기운을 내서 뭔가를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때 베르가모트 오일 몇 방울을 떨어뜨려 반신욕이나 족욕을 한번 해봐. 기분이 훨씬 나아질 테니까.”



“이건 일랑일랑인데, 약간 프루티(fruity) 하기도 하고 달큼한 향이야. 어떤 사람들은 이게 좀 섹슈얼한 향이라고도 하더라고. 왜 ‘섹슈얼하다’라는 형용사가 이 향기에 붙은 건진 잘 모르겠어. 이번에 네가 반신욕을 하면서 그 이유를 찾아보겠니? 개인적으로 일랑일랑의 향을 맡으면 아주 행복한 느낌이 들어. 마치 은은하게 달콤한 사탕 하나를 입안에서 천천히 굴려 먹는 느낌이랄까. 왜, 기분이 다운됐을 때 단 걸 먹으면 잠시나마 행복해지잖아. 감정이 너무 조울의 극단을 오갈 때 몇 방울 떨어뜨려 반신욕을 하면 서서히 감정의 밸런스가 맞춰지기도 해.”


향기에 취해 향기를 설명하던 하하는 내 머리맡에 그녀가 평소 즐겨 읽는 책 두어 권을 놓고, 욕실의 조명을 어둑한 주황빛으로 맞춘다. 그리고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삼십 분짜리 음악 동영상을 튼 뒤, 엄포를 놓는다.


“이거 딱 삼십 분짜리니까 끝날 때까지 꼼짝 말고 목욕해. 너를 괴롭히는 생각들은 다 잊고 그냥 푹 쉬어.”


욕조 안에서 오롯이 혼자가 된 나는 하하의 말대로 최대한 휴식을 취하고자 힘을 빼고 몸을 축 늘어뜨린다. 이때 코끝을 간지럽히는 오묘한 향이 내게 하하의 사랑을 실어 나르며 말을 건넨다. 친구는 그런 이라고. 많은 말 없이도 나의 쓸쓸함을 알아주는 이, 나의 불안한 마음도 불편해하지 않는 이,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게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이, 자신의 시간적 여유를 슬픈 나를 초대하는데 망설임 없이 사용하는 이, 우울한 내게 떡볶이와 치즈를 기꺼이 양보하는 이, 따뜻한 목욕물을 받아 차가워진 마음을 데워주는 이. 힘든 하루를 살아 낸 나를 위해 목욕물에 향을 더해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나는 언제쯤 하하처럼 타인의 곤란과 슬픔에 명징하게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여전히 그녀만큼 고매하지 못한 나는 그녀의 향을 맡고 사랑을 느끼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하하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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