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 화니

by 이미

“나... 또 떨어졌어.”


메시지만 봐도 화니에게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게 느껴진다. 화니는 수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큼 결과가 좋지 않아 상심이 큰 것 같다. ‘괜찮아!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까 다음번엔 꼭 합격할 거야!’ 따위의 위로는 사실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쉽사리 그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한다. 마땅한 위안의 말을 못 찾은 채 흐르는 시간을 참지 못한 내 손끝에서 예상치 못한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목욕이나 갈래?”


화니와 나는 어릴 적 동네 친구다. 어릴 때 아버지 직장 때문에 옮긴 지역에서 만나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어릴 때부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함께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골에 살던 우리는 사과 서리를 하다 걸려서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날 때도 함께였고, 지역 백일장에 나가 나란히 동상과 장려상을 탈 때도 함께였다. 어릴 때의 우린, 약속을 따로 잡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운명처럼 아니, 우연처럼 만날 수 있었는데...


매주 일요일 점심쯤에 엄마 손을 잡고 목욕탕을 가보면 꼭 나처럼 엄마 손을 잡고 목욕하러 온 화니가 있었다. 화니는 항상 목욕 바구니에 문방구에서 오백 원에 파는 손바닥만 한 물총 두 개를 넣어두고 다니다가 목욕탕에서 나를 만나면 그중에 조금 더 낡은 하나를 선뜻 건네주었다. 그 조악한 물총으로 우리는 어른들이 없을 때 냉탕에 들어가 마구 물총 싸움을 하며 놀곤 했다. 총구에서 가늘게 발사되는 차가운 물의 촉감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감기 든다고 얼른 나오라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냉기에 몸이 덜덜 떨리고 입술이 새파랗게 질릴 때까지 오직 노는 데에만 집중했다. 어른들이 없는 냉탕은 오롯이 어린 우리의 차지였다.


어릴 때의 화니와 나는 부끄러운 것도 없이 매주 목욕탕에서 맨몸으로 놀았다. 하지만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나는 직장인으로 그리고 화니는 수험생 신분인 때의 우리에게는, 목욕탕은커녕 흔하디흔한 카페에서 한번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락이 뜸해졌다. 그녀가 수험 생활에 집중하면 할수록 우리의 연락은 명절맞이 인사치레 정도로 국한되었다. 그녀의 시험 일정을 미리 알고 있었을 때도, 쉽사리 시험 잘 치라고 또는 시험 잘 쳤냐고 물어보기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냥,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마음으로 멀리서 응원하며, 잘 먹으면서 공부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치킨 기프티콘 같은 것을 간간이 보내줄 뿐이었다. 그럴 때면 화니는 ‘고마워. 내가 합격하면 다 갚을게.’라는 답장으로 공부에 더욱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녀의 마지막 불합격 소식을 직접 전해들은 그날도 화니를 보지 못한 지 거의 일 년이 넘었을 때였다. 간간이 연락의 명맥만 유지하던 오랫동안 못 만난 친구에게 불합격 소식을 알리는 화니의 마음도 굉장히 미어졌을 테다.


일 년 넘게 못 본 친구의 불합격 소식을 듣고 목욕이나 가자고 응수한 나의 반응에 화니는 많이 당황했지만, 잠깐의 침묵 후 긍정의 회신을 하기로 한다.


“그러자.”


나는 화니의 동네로 갔다. 거기에는 오픈 초기에만 진짜 해수로 쇼맨십을 한, 이름만 해수탕인 민물 목욕탕이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그곳에서 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초등학교 앞 낡은 문구점 하나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문구들을 이것저것 구경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액괴로 통하는 각양각색의 슬라임이 가장 많았고, 우리 때 추억의 장난감이던 만득이는 애석하게도 종적을 감추었다.


“아저씨 물총 있어요?”


주인아저씨는 바주카포 수준의 커다란 만 오천 원짜리 물총을 보여준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제일 작은 걸로 달라고 했다. 오백 원 하던 제일 작은 것도 이제는 이천 원이나 한다. 새삼 비싸진 물가를 실감하며 물총을 목욕 바구니에 넣었다. 화니를 만나러 목욕탕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목욕탕 입구에서 만난 화니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이전보다 살이 엄청나게 찐 상태였다. 오랜만에 나를 만난 그녀는 겸연쩍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나, 살이 많이 쪘지?”


‘반갑다’나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정도의 평범한 인사이길 바랐는데, 아니라고 답하기엔 너무 명백하고 그렇다고 답하기엔 가히 상처가 될 만 한 인사를 건네는 화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잠깐 짓고서 먼저 몸을 돌려 컴컴한 목욕탕의 입구 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여탕 안으로 들어온 화니는 쭈뼛거리며 옷을 벗었다. 무지막지하게 변해버린 자기 몸을 보여주기 싫다는 의미 같았다. 그녀는 아까 했던 첫인사를 반복했다.


“나, 살이 많이 쪘지?”


나는 최대한 건조한 대답을 건넸다.


“그래. 살이 찐 화니네. 그래도 여전히 화니인 화니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나지막이 고맙다고 읊조렸다. 나는 사실 무엇이 고마운지 잘 몰랐지만, 화니는 전보다 한결 편하게 옷을 벗었다. 탕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샤워기 앞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화니는 큰 비치타월을 갖고 와서 몸을 감쌌다. 내가 온탕에서 때를 불리는 동안 그녀는 탕에 들어오는 것을 한사코 사양하며 물 밖에만 있었다. 나는 탕에 들어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저렇게 어색하게 굴 거면서 왜 목욕탕에 가자고 했을 때 선뜻 그러자고 한 걸까.


아마 그러자고 대답하기까지 걸린 찰나에 그녀는 이랬을 것이다. 고대하던 시험에서 고배를 마셔서 괴로운 마음을 풀어내고는 싶은데 방법은 모르겠고, 그동안 세상과 담쌓고 공부만 하느라 노는 법도 까먹었고, 그래서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던 카톡을 열어 친구 목록을 쭉 훑어보니 때마침 내 이름이 눈에 들어왔을 테고, 꽤 오랫동안 못 본 친군데 무슨 말을 해야 덜 민망할까 하며 고민했을 것이다.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 생각나서 문자 해봤다는 말을 건넬까 아님, 그냥 대놓고 힘드니까 위로 좀 해달라고 징징거릴까 하다가 최대한 담담한 첫마디를 골랐을 것이다. 용기 내 문자를 보내 놓고도 내가 읽을 때까지, 어설픈 위로만 받을 텐데 그냥 보내지 말 걸 괜히 그랬다며 자책도 했을 거다. 그러다 문득 확인한 내 답장이 아주 뜬금없이 목욕이나 가자는 말이었고, 살이 많이 찐 그녀는 거울에 자기 몸을 이리저리 비춰 봤을 테다.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데다 왠지 이런 패배자 같은 모습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보여주기도 싫었겠지. 그러다 문득 도대체 목욕탕을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인지 까마득해진 자신이 측은해, 오랜만에 목욕이나 가볼까 하는 마음에 ‘그러자’고 답장했을 것이다.


나는 온탕에서 일어나 화니를 불렀다.


“야, 탕에 들어가기 싫으면 우리 사우나나 하자. 때는 밀어야 할 거 아니야.”


화니는 여전히 비치타월로 몸을 가리고서 사우나에 들어왔다. 사우나 안에는 때마침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드디어 몸을 감싸고 있던 타월을 벗었다. 사우나에 들어간 우리는 얼마간 말이 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맨몸을 감싸는 후끈한 공기만이 존재했다. 사우나의 후텁지근한 공기 때문에 숨이 막히는 건지, 옆에 있는 말 없는 화니 때문에 답답한 건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무슨 말이라도 마구 해야 할 것만 같은 충동이 들었다.


“화니야 그동안 고생 많았다. 오늘 그동안 고생한 거 다 씻어 내고 가. 또 고생해야 하잖아.”


이 말을 하고 나서 하... 나는 정말 위로에 젬병이라는 것을 느끼는 와중에 화니가 훌쩍였다. 길어지는 수험 생활에 그녀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많은 친구가 그녀의 곁을 떠났다고 한다. 먹는 거로 스트레스를 풀었더니 살은 있는 대로 쪘다. 가족들조차도 거듭되는 실패에 이젠 지지와 격려보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래도 간간이 응원 메시지와 함께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내가 있어 많은 위안이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이번엔 꼭 내게 합격 소식을 전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나는 그녀의 한풀이를 다 듣고 나서, 괜찮다고 사람 일이란 게 다 때가 있지 않느냐고, 결국 다 잘될 거라는 평범한 위로로 그녀를 달랬다. 그녀의 훌쩍임이 줄어든 걸 보니 때론 아주 평범한 위로도 괜찮을 때가 있는 것 같다.


한바탕 울고 나니 조금 개운해진 건지 그녀가 먼저 때를 밀러 나가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서로의 몸에서 나온 때의 양에 흠칫 놀랐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서로의 때가 더 많다고 마구 놀려댔다. 몸의 때는 이렇게나 많은데 화니 인생의 때는 언제쯤 찾아올까. 그녀의 등을 밀면서 나는 그녀가 곧 맞이할 합격의 때가 어서 오기를 기원했다.


열심히 때를 벗기던 화니는 뭔가를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나더니 열탕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몸을 담갔다. 그러고는 그 뜨거운 데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시험 도전에 대한 의지를 다시 다잡았을 수도 있고,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을 수도 있다. 한참 뒤, 열탕에서 나온 그녀의 눈빛이 사뭇 달라진 것 같다.


목욕을 마치고 바구니를 챙기는 화니에게 말 없이 아까 문구점에서 산 물총을 건넸다. 삼십을 훌쩍 넘긴 다 큰 처녀 둘이서 장난감 물총을 들고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여 냉탕에서 물총 싸움을 하는 불상사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화니는 미소를 지그시 지으며 역시나 아무 말 없이 물총을 받아 들었다.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었다. 그녀의 미소면 충분했다. 물총을 보고 얼굴 위에 떠올랐던 미소가 그녀도 역시 우리의 공유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


그날 밤, 화니의 카톡 프로필이 바뀌었다. 내가 준 물총이 포장도 안 뜯긴 채 프로필 사진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녀의 상태 메시지는 추억, 딱 두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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