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목욕탕의 세신사 아줌마는 귀신같이 모르는 게 없다. ‘아가씨, 미혼이지?’ 내가 처음 아줌마에게 세신을 맡겼던 날 대뜸 나의 혼인 여부를 맞췄다. 두 번째 세신을 받던 날도 어김없이 맞춘다. ‘아가씨는 남자 친구 없지?’ 세 번째도 마찬가지. ‘아가씨, 얼마 전에 남자 친구 생겼지?’ 네 번째도 귀신같다. ‘아가씨, 헤어졌지?’
세신사 아줌마는 도대체 어떻게 모든 것을 아는 걸까. 내 뒤를 캐고 다니는 건 분명 아닐 테고, 그렇다고 우리가 원래부터 알던 사이는 더더욱 아닌데도 말이다. 점점 격해지는 궁금함에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아줌마는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춰요?”
그녀는 호방한 웃음을 터뜨리며 오이 마사지를 추가하면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영업했다. 우리 동네 세신사 아줌마는 확실히 지능적이고 전략적으로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다. 그녀의 꾐에 넘어간 나는 당연히 오케이를 외쳤고, 아줌마는 냉탕에 담가 둔 양파망에서 실한 오이 하나를 꺼내 강판에 석석 갈아 내 얼굴 위에 척척 얹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나는 사람들 몸만 봐도 다 알아. 내가 이래 봬도 세신사 경력이 얼만데. 자그마치 이십 이년이야, 이십 이년! 경력만 이십 년이 훌쩍 넘는데 이 정도 통밥 굴리는 실력은 있어야 어디 가서 명함이라도 내밀지 않겠어?”
일단, 미혼자보다는 기혼자가 세신에 임하는 태도가 좀 더 적극적이고 뻔뻔하다고 한다. 겨드랑이나 허벅지 안쪽을 씻기 위해 팔이나 다리를 들어 보라고 했을 때, 다소 부끄러워하고 쭈뼛거리며 뻣뻣한 감이 있으면 미혼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유, 아가씨.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 나를 봐. 나는 삼겹살을 이만큼씩 배에 달고 다녀.' 하며 자신의 뱃살을 두어 번 흔들어 주면 까르르 웃음이 터지면서 손님의 굳은 몸이 사뭇 유해진다고.
미혼자의 애인 유무는 몸에 난 털의 상태를 보고 판단한다고 한다. 겨드랑이나 다리털이 잘 밀려 있으면 애인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털이 수북하던 미혼자가 어느 날부터 말끔하게 제모를 하고 오면 애인이 생겼을 테고, 다시 수북해지면 헤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또 어깻죽지의 때를 밀다 보면, 어깨와 목 근육이 딴딴한 사람이 스트레스에 훨씬 취약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요즘, 일이 많이 힘드시냐.’고 넌지시 말을 건네며 서비스로 공짜 지압을 선사하면 가슴 벅찬 감동의 물결이 일면서 손님이 눈물을 펑펑 터뜨리지는 않지만, 그때부터 자신을 자주 찾아 주는 단골이 된다고.
한번은 단골손님의 때를 밀다 가슴 부근에서 전에 없던 멍울이 만져져 병원을 가보라고 했더니, 글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며, 그때부터 입소문이 퍼져 단골손님이 정말 많이 늘었다는 자랑도 빼먹지 않는다.
세신사 아줌마는 세신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 있는 누드의 청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층 더 신이 나 옛날 손님과 요즘 손님의 차이에 관해서도 설명하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잘 먹어서 몸집이 큰 사람이 부자인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운동을 해서 몸매가 날씬하고 복근이 탄탄한 사람이 시간도 돈도 많은 경우가 대다수라며.
또, 옛날엔 손가락 사이사이를 밀다 보면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의 첫마디가 툭 튀어나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연필을 오래 쥔 흔적이므로 대부분 공부를 많이 했거나 잘했던 사람들이라고. 그때는 손가락만 보고도 ‘학창 시절에 공부 많이 하셨죠?’라는 물음으로 대화를 시작하기가 용이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사용이 늘어서인지 다들 손가락이 길쭉하고 매끈해서 통밥 굴리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내게 묻는다.
“아가씨 운동했지? 어깨가 장난이 아니네.”
‘운동... 안 했는데요...’
그래, 살다 보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다.
남의 때가 더럽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 우리 동네 목욕탕 세신사 아줌마가 담담한 목소리로 답한다.
"남의 때가 왜 안 더럽겠어. 처음엔 나도 만지기 좀 그랬지. 그래도 어떡하겠어. 먹고살려고 시작한 일인데. 하다 보면 이골이나. 나중엔 때가 내겐 돈이구나, 남의 몸에서 때가 많이 나올수록 나한텐 좋은 거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버리지. 이 죽은 때로 내 산 자식들 밥 먹이고 학교 시키고 하는구나.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희한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고맙더라고. 열심히 살아서, 이렇게 많은 때를 키워 내게 몸을 맡겨준 그들이 도리어 고맙지 뭐야. 그때부터 때가 아니라 사람을 보게 됐어. 그 사람이 궁금하고, 때가 묻은 그들의 인생이 궁금하고. 그래서 사람들 때를 살살 밀면서 관찰을 해봤어. 이 사람의 특징은 이렇고, 저 사람의 특징은 저렇고. 내 딴엔 사람 공부를 한 거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해 질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거야. 나는 매일 똑같은 목욕탕에서 평소랑 똑같이 때를 밀지만, 여기 세신 침대에 누운 사람 중엔 똑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 모두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나처럼 한 곳에서 가만히 이렇게나 가지각색인 사람들을 만나보는 직업도 없을 거야.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삶이 주는 좋은 기회니까, 즐겨야지. 내가 세신사 하면서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아가씨도 그중에 하나야."
세상사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누군가는 꼭 남보다 더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해야만 세상이 윤활히 돌아갈 때가 있다. 그저 맡은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적당히 만족하면서 '지금 하는 일 덕분에 그래도 먹고는 산다.'라는 소소한 감사함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이런 보통사람들 덕택에, 덕지덕지 때가 묻고 까맣게 오염된 세상의 구석들도 다시금 깨끗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일확천금은 못 벌어도 요령 피우지 않고, 요행 바라지 않고, 남 등쳐먹지 않으며 준법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 때문에 그럭저럭 살만한 세상이 된다.
“목욕탕에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진탕 지친 상태로 와. 회사 일에다 육아에다, 다들 힘들게 살아가잖아. 뭉친 근육도 풀고 마음속 스트레스도 풀어내서 개운해지려고 목욕탕에 온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기운 없는 사람들한테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는 거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어. 단골 만드는 비법이란 게 사실, 별거 없어. 그냥, 기진해 보이니까 힘내라고 응원해주고, 목이 뻣뻣하니까 주물러서 좀 풀어주고, 그러면 그다음에 또 나를 찾아 주기 마련이거든. 그럼 나는 두 번, 세 번씩 찾아 와 준 게 고마우니까 더 잘해드리려고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단골손님 되는 거야. 손님들도 열심히 번 돈을 나한테 주는 거니 얼마나 고마워. 그래서 손님들 가실 때는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씀드리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단골이 돼. 아가씨처럼 말이야.”
혹자는 때밀이가 비위생적인데다 수분을 앗아가 피부를 상하게 하는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렇든 말든, 나는 목욕을 할 때마다 아주 정성껏 때를 밀고 있다. 기왕이면 돈을 내고 전문가에게 몸을 맡겨 죽은 때를 깨꼼이 벗겨내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동네 목욕탕 세신사 아줌마는 동네 세신사 협회 간부까지 역임한 출중한 세신 전문가다. 우리 동네 목욕탕 세신사 아줌마는 말이 약간 많은 편이지만, 가끔 클렌징도 서비스로 해주고 두피 마사지도 공짜로 해준다. 우리 동네 세신사 아줌마는 무엇보다 공감을 잘해준다. 남자 친구를 사귀면 예쁜 사랑 하라고 응원도 해주고, 그놈과 헤어지면 천하의 나쁜 놈이라 같이 욕해주기도 한다. 세상에 좋은 남자가 네 몸에서 나온 때만큼이나 많으니 아무 걱정 말라는 덕담도 슬쩍 건넨다. 직장에서 스트레스 주는 상사가 있을 땐, 자기에게 말만 하면 대신 혼내주겠다며 허세 가득한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우리 동네 목욕탕 세신사 아줌마는 이것저것 모르는 게 없어 속칭 참견쟁이의 기질이 있긴 하지만, 다소 민망해하는 벌거숭이를 위해 세신 시간 내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우리 동네 목욕탕 세신사 아줌마는 때때로 몸의 때를 밀면서 동시에 마음의 때까지 벗겨 주는 재주를 가졌다. 특유의 공감과 오지랖으로 몸과 마음의 때를 시원하게 밀어준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꽤 오래도록 나의 알몸을 맡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