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미는 것은 죽은 피부를 벗겨내 새살을 드러내는 행위다. 죽은 피부는 머릿속에 한가득 퍼져있는 상념과 맥이 같다.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나 딱딱하게 굳어 버린 과거에 자행한 과오나 실수 같은 것. 아무리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도 떨치지 못하는 흘러간 후회나 미련 같은 것.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지금 결과가 달랐을까 하고 끊임없이 되뇌는 통한 같은 것. 나의 기억과 자아의 일부이긴 하지만 결코 맨발로는 지나가기 힘든, 희로애락의 생로 위에 뿌리박힌 뾰족한 돌부리 같은 것. 과거로 회귀하는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인력으로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일들 말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내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과거 또한 무효 될 수 없다. 안 좋은 옛 기억일랑 그저 툭툭 털어내고 지난날의 허물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현재의 나를 다잡을 수밖에 없다. 과거가 어떻든 인간은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까닭이다.
때를 미는 것도 과거를 툭툭 털어내는 행위와 같다. 죽은 표피를 털어내어 그 아래 새로 돋아나는 살갗이 제대로 숨을 쉬도록 도와주는 행위. 그럼으로써 건강한 외모를 가꾸어 가는 과정이 바로 목욕이다. 우리 몸에서 때가 유독 두드러지게 잘 들러붙는 곳들이 있다. 손가락 마디 사이나 팔꿈치, 무릎, 발뒤꿈치 같은 곳. 이곳에 오랫동안 붙어있던 때는 때수건 같이 거친 무언가로 밀지 않는 이상 벗기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지금 보드라운 피부를 갖고 싶으면 과거에 죽은 때를 적당한 때에 털어내야 한다.
때가 더 잘 쌓이는 몸의 구석이 있듯이 마음속에도 유달리 더 잘 쌓이는 때가 있다. 스트레스, 우울, 짜증, 불안, 허무, 염세, 무능, 자책과 같은 것들이 바로 마음에 쌓이는 때다. 이들은 연약한 인간의 구석진 마음에 꼭 들러붙어 결국 쉬이 떨어지지 않는 질긴 각질이 되어버린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채 수년 동안 겹겹이 쌓여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구질구질한 잡념들을 떨쳐 내기가 쉬웠더라면, 우울이나 불안, 공황, 화병과 같은 세상의 온갖 부정적인 병명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고유한 주체를 부정하게 하는 근심과 걱정, 시름과 고민을 털어내는 게 그리 쉬웠더라면, 이 세상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인간의 수가 그토록 많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쌓인 때를 밀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즉, 마음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오는 필연적인 고통을 인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선천적 기질, 자라온 환경, 과거의 경험, 어린 시절 부모의 양육방식이나 삶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 등에 따라 인간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마음속 통점의 수는 판이하다. 똑같은 정도의 고통이라도 어떤 이는 참아 낼 줄 아는 반면 어떤 이는 버티기를 빠르게 포기하고 만다. 어떤 이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는 마음가짐으로 삶의 고통을 대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그것이 삶을 끝내야 끝날 고통이라고 극단적으로 여길 수도 있다.
몸의 때를 미는 것도 똑같다. 피부의 상태나 민감도에 따라 때를 미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진절머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 때수건은 색깔에 따라 마찰 강도가 다른데, 가장 오리지날인 녹색 때수건이 보통 세기의 마찰력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노란색이나 분홍색은 그 강도가 녹색보다 약하고 파란색이나 검정은 더 세다. 녹색 때수건으로 때를 밀다가도 시원함이 덜해 파란색을 찾는 이가 있는가 하면, 너무 아파서 노란색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다. 그마저도 고통스러워 인견 때수건처럼 자극성이 거의 없는 것을 쓰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고통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모두 다른 연유다.
똑같은 탕 안에 있어도 역시 느끼는 바는 모두 다르다. 온탕에 들어온 지 일 분도 채 안 되어 답답함을 못 이기고 대뜸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고, 살이 붉게 변할 정도로 뜨거운 열탕에서 열반에 든 듯 고요히 침수 중인 사람도 있다. 같은 탕 안에서 때를 불려도 몸이 겪는 변화 또한 모두 다르다. 아주 빨리 때가 불어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탕 안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때가 충분히 불지 않아 공치는 날도 있다. 그날의 컨디션이나 사람의 고유한 살성에 따라 때가 잘 밀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밀 수 없는 때는 없다. 때수건의 도움으로 결국 떨어져 나간다. 아무렴, 죽은 피부는 반드시 벗겨지기 마련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견디지 못할 삶의 고통은 없다. 평생 가는 아픔도 없다. 모두 곧 나을 아픔과 곧 가실 고통일 테다. 나쁜 때가 있으면 좋은 때도 있는 법이다. 사람에 따라 뜻한 바를 이루는 인생의 때가 다 다른 법이다. 누군가는 때를 일찍이 맞이하여 이미 삶의 전성기를 누렸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여전히 분투하며 알맞은 때를 간절히 염원 중일 수도 있다.
나쁜 때가 생각보다 오래가서 삶이 녹록찮을 땐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어보자. 때를 미는 아주 단순한 행위, 겨우 두 시간 남짓 되는 목욕이라는 행위가 일주일은 너끈히 지속되는 개운함을 선사할 수도 있기에.
죽은 때를 몸에서 털어내며 밑에 숨어있던 새 살의 보드라움을 향유하자. 긴 시간, 당신의 마음에 먹구름 같은 삶의 고통이 드리웠어도 그 속엔 이미 새 삶을 갈망하고 영위할 준비를 끝낸 작은 용기가 새싹으로 피어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