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의 에로티시즘

by 이미

서양이나 동양, 구별할 것 없이 에로티시즘적 요소가 가장 잘 집약된 드라마 속 장면은 단연코 목욕 신이다.


미드 ‘스파르타쿠스’를 보면, 대전 바로 전날 밤, 결연한 얼굴을 한 글래디에이터의 목욕 장면이 꼭 등장한다. 올리브기름을 온몸에 바르고 때를 미는 금속 도구인 스트리질(strigil)로 목욕하면서 마음가짐을 굳건히 다잡는 장면이 필수적으로 나온다. 피부를 쓸어내리는 그들의 손길에 맞춰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팔에서 어깨, 굵은 목선에서 가슴팍 그리고 복근으로 이어지는 야성적 행로를 담아낸다. 그 흐름을 따라 내 시선도 그들의 섹시한 구릿빛 피부 위에 한참을 머물곤 한다.

글래디에이터의 목욕 신은 시각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찐득하고 농염한 배경음악은 유달리 청각을 건드린다. 그들의 피부 위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또 왜 그렇게 크게 클로즈업되는 것인지, 실제로 코끝에 특유의 남성미가 풍기는 것만 같다. 한껏 에로틱한 상상력이 후각까지 간지럽히고 나면 어느덧 블러디한 검투 신이 끝나 있다.


대결에서 이긴 검투사를 기다리는 다음 장면 역시 목욕 신이다. 아주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로만 바쓰(bath)에서 육감적인 나체의 도미나(domina)가 승리한 그를 요염한 포즈로 기다리고 있다. 여주인과 검투사의 육체가 섞이는 목욕 신이 방영되는 동안, 동 시간대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스크린에 꼼짝도 하지 않고 꽂혀 있는 나의 시선과 목젖 너머로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뿐이다.


동양의 사극에서도 노출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목욕 신이 갖는 기능은 서양의 드라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중전이 간택되고 왕과의 합방일이 정해지면 꼭 목욕 신이 등장한다. 거사를 앞두고, 음기를 뿜는 달빛 아래서 하얀 무명 치마를 가슴골의 봉긋한 곡선까지 끌어올려 동여매고 나무 욕조 안에서 몸을 청결히 씻으며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장면은 글래디에이터의 스트리질과 그 맥이 같다. 이 장면의 끝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칠흑 같은 밤하늘과 대비되며 줌아웃 되곤 한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달은 유독 목욕 중인 여성의 속살만큼 보얗고, 그녀의 풍만한 몸매처럼 만지고픈 유형의 탐스러움을 자랑한다.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탐스럽고 농익은 인간의 나체에는 매번 달콤한 이름이 따라붙는다. 남자의 탄탄한 복근에는 초콜릿을, 여자의 그득한 가슴에는 복숭아라는 별칭을 붙여주지 않았던가. 달콤하기 그지없는 별명을 입은 인간의 몸매는 사뭇 구미가 당기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엉큼한 입맛으로부터 지극한 달콤함을 가리려 항상 옷을 걸친다.


목욕은 엉큼함과 달콤함의 경계를 허물고, 느슨해진 경계 위에서 왕성한 에로스를 불러내는 의식이다. 에로스의 또 다른 이름은 관능적인 사랑으로, 에로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고유한 관계 욕구에 기저 한다. 특히나 인간의 육체적 관계를 증폭시키는 데에는 관능미가 큰 몫을 한다. 남자와 여자 - 때에 따라서는 동성의 사이가 될 수도 있다 - 각각이 가진 농밀한 관능미를 뽐내고 더욱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데는 목욕만 한 것이 없다. 아주 사적이고 은밀한, 그리고 굉장히 에로틱한 목욕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꽂히는 대상이었다. 신윤복의 단오풍정 속 멱 감는 여인들의 몸에도 까까머리 중 두 명이 엿보는 시선이 꽂혀있고, 르누아르의 목욕하는 여인들 속 여인들 또한 남성 화가의 시선 속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목욕은 일방이 아닌 양방이 서로를 감상하는 순간이다.


염탐과 감상의 차이는 교차 중인 서로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는 당사자 둘의 동의 여부에 있다. 한 몸이 되어 욕조에 누운 채 목욕물을 공유한다는 것은 나를 감상해도 좋다는 어젠다에 대한 동의 표현이다. 그러니 맘껏 자신을 뽐내도 좋다. 가슴을 한껏 내밀어 올리고 볼록한 엉덩이를 두 손으로 꽉 쥐어 봐도 좋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으로 나지막이 아 하는 소리를 내도 좋다. 활짝 벌어진 허벅지 사이를 손으로 쓱 쓸어내려도 괜찮다. 목욕 중인 애인은 실시간 감상과 터치가 가능한 살아 있는 예술품인 까닭이다.


목욕은 생물학적 섹스의 구분 없이 한 욕조 안의 당사자 모두에게 동등한 감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서로의 자아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또,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의 본유한 개성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사랑은 지극한 생의 미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고, 살기 위해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장단점이 가득한 서로의 몸을 나눌 수 있는 에로틱한 탐닉의 기회가 바로 목욕인 것이다. 목욕은 내 남자의 배에 글래디에이터의 초콜릿 복근이 없어도, 내 여자의 흉부에 중전마마의 복숭아 같은 가슴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눈에 담고 사랑할 기회를 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는 시각, 그의 체취를 맡는 후각, 머리칼, 피부, 몸의 굴곡을 느끼는 손끝의 촉각, 짭짤한 땀방울이 입술을 적시어 혀끝에 맴돌 때의 미각, 그의 입에서 내뿜기는 야릇하고 후끈한 숨소리를 듣는 청각에 이르기까지, 목욕만큼 사랑에 빠진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켜 주는 것은 없다.


목욕은 따뜻하고 다양한 매력이 있다. 세상에 사랑스러운 목욕용품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배스 밤, 배스 오일, 버블 바, 솝, 샤워 젤, 바디 버터, 바디 스프레이, 샤워 코오롱. 서로의 취향에 따라 아주 다채로운 목욕을 즐길 수도 있다. 밀당은 필요 없다. 그저 마음에 드는 목욕 제품을 골라 따뜻한 물에 풀거나 몸에 바르기만 하면 된다. 그걸로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씻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이것저것 사용해 보면서 향과 촉감 그리고 기억을 공유하기에 괜찮은 제품을 골라내기만 하면 된다.


목욕이 사랑이라는 행위라면 목욕 제품은 그 행위를 함께하는 애인이다. 그는 아직 내가 모르는 여러 가지의 모습을 띠고 있을 테다. 나는 적극적인 자세로 욕조 속에서 이뤄지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 그의 매력을 깊이 탐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인간이여! 우리, 목욕 속에 집약된 에로티시즘을 온몸으로 즐기도록 하자. 따뜻한 물속에서 온몸의 오감을 열고 본능에 집중하자. 사랑이 물 안에서 조금 야해지는 것을 허락하자. 자욱한 수증기로 희뿌연 욕실 속에서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보면 우리 애인들이 왠지 더 섹시해 보이는 법이다. 목욕 중인 그들은 완전한 날것의 관능으로 온몸을 닦아내고 있다. 그러니 맘껏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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