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수상한 시절 목욕 예찬

by 이미



기대에 뿌리내리는 경험은 없다. 오직 행동에만 그 기저가 있을 뿐이다. by. 아리스토텔레스



지금보다 좀 더 젊은 시절 굉장히 나태했던 적이 있었다. 뿌리내릴 행동이 없으니 인생 경험도 전무했던 때. 시간은 하염없이 남아도는데 뭔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다. 충만해야 했던 의지의 자리에 무능과 권태가 들어서 구시렁구시렁 불평과 불만을 낳았다. 시간 죽이기로 시체처럼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이 빙글빙글 돌 때까지 쳐다보는 게 내가 하는 전부일 때였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나는 왜 지금 여기 이곳, 꺼져가는 매트리스 위에 누워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용수철과 함께 삐걱대고 있는 것인가. 자존감이 열등감의 바닥까지 떨어지고 땅속 깊이 꺼진 만큼 우울이 차오른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팽팽하던 무력감의 끈이 드디어 뚝 끊어지면 더 이상 참지 못한 엄마가 방문을 활짝 열고 쩌렁쩌렁 소리를 지른다.


“집에서 아까운 밥만 축내지 말고 목욕이나 갔다 와. 이것아!”


엄마의 울림통을 보면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게 분명하다. 폭발한 엄마에게 축구공처럼 뻥 차여 목욕탕까지 날아오면 그녀의 발길질이 닿은 웅크린 궁둥이가 얼얼하다.


그렇게 입성한 목욕탕은 에덴동산이다. 평소 거추장스럽게 몸을 감싸던 포장지를 벗어던지고 모두 본연의 나체가 된다. 뱃가죽에 겹겹이 산 세월이 쌓인 노인도, 온 얼굴에 뽀송뽀송 솜털 덮인 앙증맞은 아이도, 매끈한 복근과 탱탱한 가슴으로 젊음의 상징성을 뽐내는 새댁도 모두 부끄럼을 모르던 태곳적 이브가 된다.

속 썩이는 남편과 마음 몰라주는 시댁이 지른 속 천 불을 냉탕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꺼뜨리는 며느리들, 전생에 삼계탕이었을까, 온몸이 벌겋게 푹푹 삶기는 열탕 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수도승 같은 아줌마의 꼭 감은 두 눈과 꾹 닫은 입을 보면 살아 있기는 한 건지 콕콕 찔러 확인하고 싶어진다.


다양한 인간이 공존하는 목욕탕은 한 그릇의 비빔밥이 아닐까? 지친 근육을 이완시키는 휴식과 온기 한 스푼, 약간 컴컴하고 누르스름한 백열등 불빛이 주는 분위기상 안정감 한 스푼, 스트레스 유발 인자들로부터 일시적으로 탈출해 모처럼의 자유를 느긋하게 만끽하는 여유로움 한 스푼이 마구 버무려진 건강한 비빔밥 한 그릇. 목욕탕 특유의 서늘한 물때 향과 탕 모서리를 타고 흘러넘치는 물소리는 밥알 위에 뿌려 먹는 고추장소스다. 마지막으로, 달아오른 목젖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목욕탕 표 커피 한 모금은 색색의 음식 재료가 예쁘게 플레이팅 된 비빔밥 위 화룡점정 격인 써니사이드업 같은 느낌이랄까.


부른 배를 퉁기며, 쑥 사우나, 숯 사우나, 수정 보석 사우나, 소금 사우나, 이름은 여러 개지만 모습은 다들 똑같은 후끈한 네모 상자로 들어간다. 간간이 시원한 바람이 오가는 문 앞 명당에 자리를 잡는다. 얼음장 같은 찬물을 담뿍 머금은 수건 한 장으로 머리를 감싸고, 한약처럼 쓰디쓴 커피를 쭉 들이켜 훅훅 올라오는 더운 숨을 KO 시킨다. 정체불명의 백색 가루를 석석 바르고 온몸에 쿠킹 랩을 칭칭 감은 현대판 미라 같은 아줌마의 쓸데없이 진지한 얼굴을 슬금슬금 훔쳐보며 웃음을 참아본다. 눈앞에 반짝이는 우주가 뱅뱅 돌아갈 만큼 현기증을 참아내면 어두운 벽면에 우두커니 걸려있던 모래시계가 다 내려갔다.


온탕과 사우나의 사디즘적 콜라보, 뜨거움에 뜨거움을 더해 온몸에 고통을 사정없이 가하면 묵은 때가 드디어 백기를 든다. 불어나는 땟자국 위로 극한의 고통 속에서 마주한 카타르시스가 인다. 때가 불어날수록 점점 가벼워지는 몸의 아이러니가 짜릿하다. 쪼글쪼글해진 손가락과 벌어진 모공 사이로 이제껏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나태, 무능, 권태, 불만, 불평, 우울, 무기력이 쑥 빠져나간다.


온몸의 때를 털어내는 세신사의 손길은 멜로디다. 위아래 위위 아래, 리듬에 맞춰 내 몸도 덩달아 들썩인다. 우리 동네 세신사는 플라멩코(flamenco) 무용수다. 별안간 발을 한 번 쿵 구르고 손뼉을 탁탁 치면 내 몸은 반자동처럼 뒤집힌다. 마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 춤사위 같은 이 수신호는 그녀와 나 사이 오랜 신뢰가 만들어낸 코 레오 그래피(choreography)다. 다시 멜로디가 시작된다. 위아래 위위 아래.


새때가 내려앉기 전인 피부가 참 매끈하다. 시간이 흘러 모진 세월이, 만만찮은 인생이 피부에 다시금 내려앉으면 이내 사포처럼 거칠어질 터, 지금 이 잠깐의 고움을 마음껏 사랑하기로 한다. 끝으로 냉탕에 몸을 담가 세월의 오물을 쏟아내느라 수고한 모공을 조인다. 머리까지 감고 나면 풋풋한 샴푸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목욕탕을 떠나려는 두 발이 아쉬운 듯 자꾸 걸음을 멈춘다.


“아 참, 바나나 우유를 안 사 먹었군.”


빨대로 단지 우유 하나까지 쪽쪽 빨아먹고 나면 목욕이 끝난다. 덜덜거리는 선풍기 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꼭 빤스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은 속옷을 입은 아줌마 몇몇이 여탕 입구와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둔 평상 위에 앉아 화투판을 벌이고 있다. 휙 하고 부는 한 줄기 바람에 커튼의 틈새가 벌어진 줄도 모른 채 가벼운 도박과 심각한 취미,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카드놀이에 푹 빠져 있다. 위층 남탕에서 내려온 꼬마들이 화투패를 패대기칠 때마다 덩달아 출렁대는 축 처진 장년의 젖가슴을 틈새로 엿보며 킥킥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다.


앗싸! 아이고! 서로 결이 다른 두 종류의 감탄사가 동시에 연발되면 게임 한 판이 끝난다. 이쯤 되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노랗게 구워진 달걀 한 판 위로 손을 뻗는다. 누군가는 승리의 기쁨으로 뿌듯하게, 누군가는 패배의 아픔으로 시무룩하게 텁텁한 달걀을 까먹는다. 박카스 한 모금을 채 마시다말고 별안간 아줌마 하나가 쇳소리를 내지르며 호들갑을 떤다.


“에구머니나!”


여탕을 몰래 엿보던 꼬마들이 딱 걸렸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로 시작하는 육두문자가 후다닥 도망치는 작은 뜀박질을 뒤쫓는다. 쿵 하고 굳게 닫힌 철문 앞에는 ‘여탕, 남자 출입 금지’라는 플라스틱 팻말만이 삐딱하게 걸려있다.


목욕탕 문을 나서는 순간 태초의 에덴동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끝끝내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신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멍에를 짊어진 채 또다시 현실이란 길을 떠난다.


목욕을 다녀온 내 말끔한 얼굴을 보고 엄마가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이제야 좀 사람 같네.”


그래요, 엄마. 새로 태어난 기분이에요. 맑은 정신에 마음이 따뜻하니, 기분이 참 산뜻하다. 몸과 마음 모두 한껏 건강해진 느낌이다. Sound Body, Sound Mind. 건강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이 명언을 제일 처음 말한 사람은 아마 그때 목욕 중이지 않았을까?


털썩 누운 침대에서 바라본 천장이 가만하다. 갓난아이는 아주 순수한 상태로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나지만 이미 일찌감치 세상에 나와 세월의 때가 묻은 어른은 목욕탕에서 새로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하 수상한 시절이 끝나면 제일 먼저 목욕탕에 가야겠다. 묵은 때가 많이도 쌓였다. 어서 개운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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