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여사가 목욕탕에 가는 이유

by 이미


“엄마, 나 자꾸 재채기가 나. 감기인가 봐.”

“얼른 목욕탕 다녀와. 뜨뜻한데 몸 푹 담그고 오면 감기 뚝 떨어져.”


“엄마, 나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네. 몸살인가.”

“얼른 목욕탕 다녀와. 사우나에서 땀 쭉 빼고 나면 나을 거야.”


“엄마, 나 오른쪽 어깨가 좀 뻐근하네. 잠을 잘못 잤나?”

“얼른 목욕탕 다녀와. 온탕에서 몸 좀 오래 지지고 세신사 아줌마한테 어깨 마사지도 해달라고 해.”

“엄마, 나 방금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나서 목이 약간 뻣뻣한 데 목욕탕 가면 되겠지?”

“야! 빨리 병원 가!!!”


우리 집엔 비록 민간요법이지만 불문율 같은 한 마디가 있다. 바로 '목욕탕 다녀와.’이다. 특히 우리 집 안방마님, 권 여사는 가족의 가벼운 감기나 몸살, 근육통, 염좌 등에는 가차 없이 목욕탕을 처방한다. ‘온탕이나 사우나에서 몸을 지져 땀을 쭉 빼면 웬만한 병은 낫는다.’가 권 여사만의 고집 가득한 개똥철학이다. 모두 다른 병명에 하나뿐인 처방이지만, 참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진 돌팔이 권 여사의 만병통치약, 목욕 때문에 딱히 악화한 병은 없다. 오히려 진짜 피로가 풀리고, 감기나 몸살 기운이 가시고, 근육이 부드러워진 느낌적인 느낌이라 그녀의 ‘목욕탕’ 처방에 꽤 신뢰를 두는 편이다.


권 여사는 어려서 목욕탕집 딸을 부러워했다. 꾀죄죄하여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머리에는 이가 득실득실, 얼굴에는 허연 마른버짐이 듬성듬성 핀 권 여사의 어릴 적 친구들 사이에서 목욕탕집 딸은 단연 발군이었다. 유달리 하얗고 깨끗한 피부의 그녀. 반들반들 예쁘장한 얼굴에 항상 새 옷 같은 옷을 입고, 몸에서는 당시 보기 드물었던 포근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또래 남자애 중에 그녀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그때부터 권 여사는 자고로 깨끗하고 건강한 사람이란 목욕탕집 자식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권 여사의 ‘목욕탕 만병통치설’ 또한 이때부터 고개를 든 게 아닐까 싶다.


목욕탕집 딸을 보며 어린 권 여사는 나중에 커서 꼭 깨끗하고 건강한 목욕탕집 아들에게 시집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목욕탕의 ‘목’ 자와도 관련 없는 평범한 집안의 적당히 생긴 아들을 만나 결혼했다.


권 여사는 육 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스무 살쯤 차이 나는 제일 큰 언니 한 명에 내리 오빠밖에 없었던 귀한 막내딸. 가족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수줍게 자랐다. 스물여덟이 되던 해, 여자는 아홉수에 결혼하면 팔자가 사나워진다고 외할아버지가 밀어붙인 선을 보고 부랴부랴 시집을 갔다. 그렇게 김 사장의 와이프가 되어 이듬해 첫째 딸을 낳고, 줄줄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밥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막내딸이었던 권 여사는 졸지에 김 사장의 호랑이 같은 엄마와 병약한 아빠까지 돌봐야 하는 며느리가 됐다. 곧 돌아가실 줄 알았던 투병 중의 시아버지는 그 뒤로도 오 년을 더 살았다. 권 여사는 오 년이란 긴 시간, 부모를 병원에 모시는 건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는 김 사장 누님들의 호령에 하루도 빠짐없이 시부의 똥오줌을 집에서 받아내며 간병했다. 자기 딸들도 무시한 골골대는 남의 아버지를 제 몸이 부서지라 돌보아도 권 여사는 집 안에서 목소리 한 번 크게 낼 수 없는 애석한 처지였다. 호랑이 시모에 서슬 퍼런 시누이가 다섯이나 있는 막내아들에게 시집온 죄려니 하며 아내로, 엄마로, 한 집안의 며느리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갈 뿐이었다.


침묵이 곧 자아인 양, 제집에서는 목소리 한 번 낼 줄 모르던 권 여사의 목소리가 한없이 커지는 곳이 있다. 바로 동네 목욕탕이다. 목욕탕에 가면 권 여사는 동네 슈퍼스타가 된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게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이 되는 곳... 초등학교 동창인 설이네 엄마, 기똥찬 맛의 물김치 담는 법을 가르쳐 준 희수네 할매, 중학교 합창반 동기였던 준이네 엄마, 고등학교 절친이던 영이네 엄마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권 여사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녀의 목소리도 함께 커진다. 예전 막역했던 영이네 엄마를 만나면 권 여사의 목소리가 도에서 바로 솔 톤으로 넘어간다. ‘어머! 영이 엄마! 목욕하러 왔네. 오랜만이다. 영이는 잘 지내지? 영이 아부지는 요즘 뭐해. 계속 화물차 하시나?’ 별로 안 친한 설이네 엄마를 만나면 미 톤으로 낮아지고 과도하게 예의를 차린다. ‘아, 설이네 엄마. 그래요. 반가워요. 목욕하고 가요오.’ 설이 엄마는 대충 인사한 후 빨리 보내버리고 다시 영이 엄마한테로 가 못다 떤 수다를 떤다.


온탕에서도, 냉탕에서도, 사우나에서도, 세신 침대 위에서도 권 여사의 수다는 끊어질 기미가 없다. 높아진 권 여사의 솔 톤 목소리도 낮아질 낌새조차 없다. 권 여사의 목소리와 쉴 새 없는 웃음소리는 안 그래도 웅웅 울리는 목욕탕을 쩌렁쩌렁하게 뒤흔들곤 한다.


권 여사는 큰딸과 주로 목욕탕에 가는 편이다. 등 미는 것 같이 힘쓰는 걸 맡기기에는 체격 좋은 큰딸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권 여사의 큰딸은 솔직히 ‘엄마, 그만 좀 웃고 목소리 좀 낮춰.’라고 말하고 싶다. 권 여사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말을 전달하려다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고, 언제 권 여사가 또 이토록 행복한 목소리를 크게 내보겠나 싶은 마음에 권 여사 하고픈 대로 두기로 한다. 집에 가면 남편에게 기죽어, 시누이들 등쌀에 못 이겨, 한없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살아야만 할 텐데 목욕탕에서만은 그냥 큰 소리를 내게 둬야겠다고 생각하는 권 여사의 큰딸이다.


권 여사는 아주 행복하게 웃을 때면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된다. 눈이 안 보이게 웃을수록 권 여사가 행복하단 말이다. 목욕탕에 오면, 권 여사의 눈은 한동안 찾기 힘들어진다. 동네 엄마들을 만나 그동안 못 다 낸 목소리를 한껏 내며 박장대소하느라 정신이 없어서다. 권 여사의 큰딸은 아줌마들끼리 무엇이 그렇게나 즐거운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다.


비슷한 나이에 결혼해 엄마가 된 친구들이 하나둘 목욕탕을 떠나고, 혼자 남은 권 여사는 어린아이가 된다. 보글보글 물이 올라오는 온탕 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헤엄도 쳐보고, 냉탕의 천장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물줄기를 정수리로 받아내며 시댁 스트레스로 달아 오른 속을 한 겹 식혀도 본다. 식혜를 먹을까, 포카리스웨트를 먹을까, 바나나 우유를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오늘은 왠지 요플레가 먹고 싶어 딸기 맛으로 골라온다. 돈은 돈을 버는 큰딸이 내도록 외상으로 사 온다.


권 여사는 다시 태어나면 꼭 목욕탕집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목욕탕집 딸로 태어나서, 목욕탕에서 파는 음료수를 종류 별로 하나씩 다 먹어 보고 품평하고 싶다. 목욕탕집 딸이 돼서, 바가지 두 개를 겹 붙여 만든 튜브를 양 겨드랑이 아래에 끼고 탕에서 마구 물장구를 치고 싶다. 목욕탕집 딸이 돼서, 매표소에서 엄마 대신 손님에게 목욕 표를 나눠주고도 싶다. 목욕탕집 딸이 돼서, 울상 죽상을 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목욕을 깔끔히 끝마치고 나갈 즘엔 모두 활짝 웃으면서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목욕탕집 딸이 돼서, 명절맞이로 예쁜 아기, 예쁜 엄마, 예쁜 엄마의 예쁜 엄마 - 시엄마 말고 친정엄마 - 삼 대가 오순도순 손을 잡고 목욕탕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보고 싶다.


나는 주말마다 엄마 집에 들른다. 집에 들러서 엄마를 찾으면, 그녀가 유독 의기소침해 보이는 날이 있다. 이유를 물어보면, 아빠랑 싸웠거나 고모들의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담긴 전화를 받아서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목욕이나 가자고 한다. 목욕하러 가면, 우리 둘은 온탕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 권 여사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하소연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남편 욕, 시누이 욕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넘쳐난다. 가끔 온탕에 같이 있던 아줌마들이 권 여사의 사연을 가만히 엿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어머머머' 하고 맞장구를 치는 바람에 졸지에 주요 대화 참여자가 되는 기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덧 아줌마 네 명이 온탕으로 모여들어 권 여사와 한마음이 되어 수다를 떤다. 간혹 권 여사의 사연에 그들이 더 흥분한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덩달아 흥분한 권 여사의 몸짓을 따라 탕의 물이 마구 넘실대다 흘러넘친다.


제각각의 가슴 사이즈를 가진 벌거벗은 아줌마들의 가슴속에는 신기하게도 비슷한 사연이 존재한다. 헐벗은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또 다른 헐벗은 여자의 가슴속 상처를 이해하고 아픔에 공감하며 심심한 위로를 건넬 줄 안다. 한마음 한뜻이 된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들이 지금 민틋한 나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만 같다. 지극한 타인에게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자기 속에 담긴 모든 것을 내어 보여도 자연스러운 데는 아마 지구상에 목욕탕뿐이지 않을까?


나는 옆에서 가만히 듣기만 한다. 오직 엄마, 한 사람만을 위한 완벽한 청자가 되는 것이 때로 딸들의 임무일 때가 있다. 씩씩대며 하고 싶은 말을 다 끝마친 엄마가 내게 말한다.


“아이고, 이제 좀 속이 시원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네.”


이 말을 들으면 ‘엄마를 위한 완벽한 청자 되기’ 미션은 클리어 한 셈이다. 나는 험담을 싫어하지만, 권 여사에겐 예외를 두기로 했다. 그녀가 말한 내용이 다 사실이라면 속에 쌓아만 뒀다간 진짜 화병 날지도 모를 일이라서다. 나라도 권 여사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맘껏 외칠 수 있는 대나무 숲이 되어 줘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주말마다 우리 엄마 화병 나지 말고 때깔 좋은 할머니로 오래오래 살라고 같이 목욕탕을 간다. 내고 싶은 소리 실컷 질러도 보고, 하고 싶은 얘기 맘껏 쏟아내라고 오늘도 엄마와 목욕탕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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