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잠시 일을 쉬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때마침 복직 전에 일주일 정도가 비어 가까운 곳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짧은 해외여행을 떠나기에 딱 괜찮은 시간이라 생각하여 엄마와 딸, 둘만의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그동안 권 여사의 인생에는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훌쩍 떠나기 힘든 구석들 천지였다. 그게 다 권 여사의 시집살이 덕택 아닐까 한다.
권 여사는 일본에 가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다. 첫 해외여행에 사뭇 설레는 그녀였지만 어쩐지 김 사장만 집에 두고 떠나려니 일주일 동안 혼자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남편이 못내 마음에 걸렸나 보다. 그래서 권 여사는 떠나기 며칠 전, 커다란 들통에 곰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두었다. 혼자만 좋은 구경하고 온다는 그녀의 미안한 마음이 뽀얀 육수로 밤새도록 우러났다.
여름 성수기도 거의 다 끝난 터라 비행기 삯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드를 마구 긁어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해댔다. 우리는 오사카와 교토, 고베에서 느긋하게 일주일을 보내기로 하였다. 권 여사가 체력이 약하니 이곳저곳 무조건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여유롭게 스케줄을 짜되 그녀가 좋아하는 문화재와 박물관 위주로 루트를 구성했다. 다만 남들이 다 가는 곳은 안 가더라도 매일 일정의 마무리로 목욕은 꼭 하기로 했다. 온천의 나라에 가는 것이니 1일 1욕(浴)은 반드시 해야 한다가 우리 둘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예산 내에서 마음에 쏙 드는 료칸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은수사와 금수사에 가던 날,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려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사찰의 풍경은 운치 있었지만, 습기와 열기 때문에 체력이 두 배로 소진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다가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했으니 권 여사에게는 꽤 힘든 하루였을 테다. 우리는 그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고, 아무런 말없이 목욕 갈 채비를 하였다. 그때의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 진짜 피곤하다. 빨리 탕에 들어가고 싶다.’
굳이 말로 안 해도 권 여사와 나는 이미 목욕이 최고의 피로회복제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오사카에 있는 동안 우리는 난바역에서 쉬이 갈 수 있는 시내의 N목욕탕과, T목욕탕을 이용했다. 일본 목욕탕에서 처음 목욕해본 권 여사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 평을 덧붙였다.
“일본 목욕탕은 한국이랑 비슷한데 때 미는 사람이 없으니 재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목욕탕이 낫다.”
그래도 목욕하고 나니 어느 정도 에너지가 회복되었다.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할 힘이 다시금 샘솟은 듯 밤길을 내달리는 권 여사의 발걸음이 꽤 가벼워 보였다.
교토에서 일박을 묵었던 청수사 근처 Y료칸은 객실에 히노키 욕조가 달려 있어 권 여사가 아주 마음에 들어 한 곳이었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편백욕을 즐기는 순서는 당연히 권 여사 먼저였다. 정말로 숲 향이 나는 것 같아 벌써 건강해지는 느낌이라며, 피톤치드를 음향하듯 눈을 살짝 감은 채 탕 위에 피어오르는 흰 김을 깊게 들이마시는 권 여사였다. 설마 진짜로 그럴 리가 있겠느냐만, 내일 또 건강한 몸으로 관광할 힘이 필요할 테니 권 여사의 말에 무조건 동의해주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권 여사가 도마와 목침을 모두 편백으로 바꾼 것도 이곳의 히노키탕 때문인가 한다.
다음 날 우리는 지인이 추천해 준 로컬 맛 집, 샤부샤부 식당을 찾아 오래도록 거리를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한껏 실망하여 간이 실내 포차 같은 데서 파는 곱창전골 비슷한 것을 먹어 아무렇게나 배를 채우고는 바로 두 번째 숙소가 있는 오고토 온센 역으로 향했다. 이곳의 S료칸을 숙소로 정한 이유는 오직 하나. 객실에 달린 노천탕에서 저녁 어스름이 깔린 비와코 호수의 야경을 바라보고 싶어서였다.
고즈넉한 일본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둔,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은 호수 위에 노을이 내렸다. 나무 욕조에 팔을 괴고 붉은 낙조를 바라보는 권 여사의 뒷모습이 마치 단발머리 소녀같이 아리따웠다. 눈앞에 노을빛이 어려서인지, 맥주 한 잔에 술기운이 올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소녀의 것 같은 발그스레한 홍조가 권 여사의 두 볼에 맺혔다.
“얘, 우리가 그 샤부샤부 집을 못 찾았던 게 오히려 다행이다. 아니면 여기 와서 이 예쁜 노을을 못 봤을 거 아니야.”
그래, 권 여사 말이 맞다. 계획했던 일이 일그러져 어쩔 수 없이 플랜 B를 선택했을 때, 기대치 못한 좋은 결과를 맞아 낙담했던 기분을 푸는 것이 여행의 묘미 아니던가. 첫 해외여행에서 벌써 여행의 정수를 체득한 기특한 권 여사였다.
목욕을 마친 우리는 유카타를 입고 땅거미가 내린 한적한 마을로 밤마실을 나갔다.
“너, 일본에서 살고 싶다고 또 훌쩍 떠나는 거 아니야?”
잘 걷다 말고 권 여사가 아주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일본의 여름은 섬나라답게 너무 덥고 습해서 못 살 것 같다고 대답했다. 떠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동안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몸과 항상 긴장하고 살던 마음에 여행이 주는 여유가 생기니 부질없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나 보다.
엄마, 그동안 아주 열심히 잘 살았으니 이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여생을 너무 애쓰며 살지 말라고 말해주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이 한마디에 권 여사가 갑자기 슬퍼질지도 모를 연유에서였다. 생애 첫 해외여행 중의 권 여사는 즐겁기만 했으면 좋겠다.
교토에서 고베로 가는 길. 기차 안에서 우리는 끝나가는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권 여사는 오사카보다 교토가 더 좋았다고 말했다. 교토에서 마음에 드는 핸드백을 사서 그러냐는 내 물음에 숙소가 더 좋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권 여사는 작은 젠(zen) 정원과 시원한 다다미, 그리고 욕탕이 달린 일본식 전통 가옥이 숙소화 된 교토가 더 마음에 들었나 보다.
고베에서 머물렀던 아리마 온센의 G료칸은 우리가 묵었던 숙소 중 가장 오래되었고 또 가장 비쌌다. 그만큼 스텝들이 굉장히 친절하고 서비스가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난다. 전용 메이드가 거의 24시간을 따라붙는 느낌이었다. 권 여사는 이곳의 직원들이 유독 친절한 이유가 궁금했나 보다.
“얘, 이게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이니?”
나는 대충 그렇다고 답했다. 권 여사는 아직도 이곳의 일박 가격이 얼만지 모르고, 또 몰라야만 한다. 가격을 안다면 이 료칸이 유달리 더 친절한 까닭은 깨달았겠지만, 나는 권 여사로부터 쓸데없이 큰돈을 썼다고 등짝 스매싱을 골백번도 더 맞았을 테니까. 때론 판도라의 상자처럼 영원히 모르는 것이 더 나은 추억으로 남기도 하는 법이다.
G료칸은 실제로 건물의 나이가 팔백 년이 넘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또 일본의 문호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옛 조상들의 정취를 느끼면 작품을 위한 영감이 더 잘 떠오르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모두들, 목욕하다 말고 밀도 측정법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를 경험하려고 이곳에 오는 것은 아닐까? 목욕 중에 귀신같은 문장들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길 바라면서 이곳 욕탕에 몸을 담그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도 이제는 글을 (취미로)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천년 세월을 간직한 우리나라의 백암온천에 가서 몸이나 푹 담가 볼까? 그러면 문학적 유레카를 마구 외칠 수 있으려나?
권 여사는 일본에 이어 대만과 태국을 여행했다. 더 이상의 시집살이가 없어서 가능한 여행이었다. 요즘도 권 여사는 한 번씩, 해외여행 이야기를 조잘조잘 하곤 한다. 일본, 대만, 태국 모두 온천이 참 좋았다고, 세상에 별별 온천이 다 있더라고 얘기하며 옛 추억에 잠기곤 한다. 또, 일본은 딸이랑 같이 가서, 대만은 김 사장이랑 같이 가서, 태국은 온 가족이 다 같이 가서 좋았다고 말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잊을 수 없는 여행의 경험은 항상 추억이 되어 우리들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는 힘들 때마다 잠깐씩 꺼내 보는 추억의 힘으로 지루한 일상을 애써 잊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리라.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새로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권 여사와 울진으로 여행을 갔다 오려 한다. 요즘 같은 하 수상한 때에는 덕구나 백암에 갈 수만 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천욕이 대단히 즐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