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가 살던 그 시절
OO동 XX골
엄마가 태어나 열세 살까지 살던 곳.
육십 년대 그 시절, 집집마다 아이들은 바글바글.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밥 세 끼만 먹을 수 있어도 부자 소리 듣던 그 시절.
옆집 영수 네는 우리 집과 같이 여섯 식구가 살았지. 하루에 한 끼 정도만 먹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네. 꼭 아침밥 먹을 때쯤이면 ‘숙아, 학교 가자’ 하고 방으로 영수가 쓱 들어왔지.
외할머니는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서 ‘얼른 먹어라’ 하셨지. 보리밥 한 그릇 앞에선 눈치코치 볼 염치조차 없던 배곯는 시절이었다네. 그래도 그땐 정이란 게 넘쳐 날 때였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삭막함은 없었어. 대문도 방문도 잠그지 않아도 안심하고 살았던 순수한 시절이랄까...
2. 어릴 적 우리 집
지붕을 짚으로 이은 초가집이었지. 몇 년에 한 번씩 지붕을 새 짚으로 이을 때, 지붕 밑에 주먹만 한 애벌레가 마구 쏟아졌지. 칠 년 동안 땅 아래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매미 애벌레의 인내가 신기해, 한참을 바라만 보기도 했지. 몇 년 지나 지붕은 기와로 바뀌었고 그런 추억도 기억 저 너머로 사라졌지.
방방마다 다 세를 놓아 복작복작 한집에 많이도 살았다네. 세 들어 사는 집 바로 옆에 붙은 변소는 하나뿐이라서 아침이면 전쟁터를 방불케 했지. 변소 갔다가 변소 옆집에서 한참을 놀다 집에 돌아가기도 하고... 비 오면 변소 냄새는 향수 정도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지.
3. 설익은 밥
군불 때고 가마솥에 밥하던 그 시절.
엄마 아빠 늦게 오시는 날, 가마솥 부뚜막에 걸터앉아 설거지하던 생각이 나네.
한 번은 초등학교 삼 학년 때 밥을 했었지. 삭발키가 없던 그때 그 시절. 쌀을 잘 못 일어서 설렁설렁.
밥은 그럴싸하게 된 것 같은데, 한 숟가락에 돌이 버석버석.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시던 하늘 가신 엄마 아빠가 그리워지네.
큰 가마솥에 불을 때서 꽁보리밥 먹던 시절. 가족 중 누가 생일을 맞으면 흰쌀밥은 그 주인공만. 식육점 가서 몇 천 원어치의 기름 쭈치와 고기를 사서 물만 멀겋게 국을 끓이니 둥둥 떠오르는 고기. 그래도 꿀맛이었던 시절이었지. 고기는 명절이나 제사, 생일 그 이후엔 먹어 본 적이 없던 시절. 동네 누구 집 제사가 언제라더라... 음복 얻어먹으려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 제사 일 좀 도와주고 한 끼 해결하고 그랬어.
그렇게 살던 집도 이젠 아들딸 다 장성하고, 밥 한 숟갈 뜰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겠지.
4. 그 시절의 명절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설날은 오늘이래요.
일 년 달력 나오면 제일 먼저 보는 설날, 추석, 생일.
빨간 동그라미 그려놓고 서로 며칠 남았다고 잠 설치며 설레던 시절. 방앗간은 송편 떡살 빻는 줄로 인산인해고, 재래시장은 북적북적.
어르신들이 몇 푼 쥐여 주면 아끼고 아껴 귀하고 귀하게 쓰던 시절. 잘 못 먹던 기름진 음식을 하루 폭식하고 나면 화장실은 대만원. 그래도 또 기다려지는 그날들...
5. 목욕탕이 귀하던 시절
동네 목욕탕이 한 곳 있었지. 목욕탕집 딸은 언제나 뽀얀 얼굴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신비롭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옆을 지날 때마다 은은히 풍겨오는 이름 모를 향기에 나도 모르게 흠흠 코를 킁킁거렸지. 가까이 가기에 우리와 사는 방식들이 영 딴판일 것 같은 상상을 하면서... 그들만의 삶의 분류를 맘속으로 엄청나게 부러워했었지.
특별한 날이 아니면 거의 가마솥에 물을 펄펄 끓여 아궁이 앞에 큰 통을 놓고 벌벌 떨면서 목욕하곤 했어. 몇 달에 한 번씩 묵은 때를 벗겨 내는 연례행사 같은 그때 그 시절의 목욕. 향 좋은 비누도 샴푸도, 아무것도 없던 시절. 그냥 손으로 쓱 밀기만 해도 국시 고랭이처럼 쭉쭉 나오던 때들. 땟국물이 둥둥 떠다녀도 안 한 것보단 몸이 훨씬 가벼워 기분도 좋아졌지.
층층 자매 형제가 많은 집은 차례로 그 물에 몸을 적시는 진풍경이 집집마다 가관이었지. 그것마저도 힘든 집 아이들은 머리에 도장밥이 군데군데 허옇게 찍혀있고, 코밑은 콧물을 옆으로 쓱쓱 문질러 빤질빤질하게 말라 있으며, 손등은 코를 훔쳐 악어가죽처럼 꺼덕꺼덕했었지.
언제 적 씻은 손인지 손톱 밑은 새까맣게 굳어 있고, 이름 모를 냄새가 진동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 냄새나는 머리에는 새가리와 이가 득실득실, 밤마다 호롱불이나 희미한 전구 불 밑에서 이를 잡는 풍경도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지.
엄마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이가 딱딱 피 터질 동안 천장에서는 쥐들의 향연이 시작되지. 우르르 우르르 백 미터 달리기가 시작되나 봐. 서로 이겼다고 찍찍 쿵쿵, 밤새 쥐들과 우린 긴 밤을 그렇게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았네.
아침에 눈을 떠 보면 쥐들이 얼마나 곤하게 놀았는지 천장엔 새로운 세계지도가 하나 더 만들어져 있었지. 그렇게 오물들이 흘러내려 천장이 쳐지고 쥐똥이 떨어져도 우린 쿨쿨 잠을 잘도 잤지.
큰방 하나에 큰 이불 한 조각, 잘 땐 나란히 자지만 일어날 때쯤이면 이불은 어디 가고 방구석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들 자고 있지.
콜록콜록 기침 몇 번 하고 소금물 한 모금이면, 감기 따윈 저 멀리 도망가던 시절. 모처럼 목욕한 그날 밤은 꿀잠을 잤지.
여름엔 낙동강변에 친구들과 걸어서 목욕하러 다녔어. 긴 모래사장... 여기엔 무명천 방망이질하는 아낙네들이 보이고, 저기엔 불 때서 무명천 삶아 모래사장에 말리고, 천 삶은 냄새가 좋아 흠흠 맘껏 음미할 때도 있었지. 혹 옷가지를 가져와서 빨래하는 아줌마도 여럿이 있었지.
물장구치기 좋은 물살. 발가벗고 그대로 풍덩 뛰어들어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한참 놀다 오던 낙동강변... 몇 킬로씩 되는 먼 거리에도, 우린 걸어서 가고 또 걸어서 돌아왔지.
비가와도 해가 뉘엿뉘엿 져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어.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할 때 집에 가면, 엄마의 볼멘 잔소리도 멜로디로 들리던 그 시절. 내일이 되길 또 기다리지. 낙동강변의 시원한 물살을...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삶 자체가 전쟁터였다 이해하고 감사할 뿐이야. 돈이 궁핍해도,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해도, 우린 그저 건강하게 성장했지. 요즘처럼 전자기기가 없어도, 우린 자연과 한 몸 되어 그렇게 커 갔어.
낙동강 물은 그때도 지금도 무심히만 흐르는데, 인생과 추억을 되짚는, 예순을 짊어진 세월을 돌아보니 백사장에서 같이 뒹굴며 놀던 친구들이 그리워지누나.
어린 시절 멱 감고 놀던 낙동강변을 이젠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휙 눈앞을 지나가네.
가마솥 앞 목욕탕은 엄마의 가슴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웠고, 낙동강변은 벌거숭이 친구들의 놀이터이자 여름 한철 우리의 목욕탕 그 자체였었네.
그때 그 시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
말없이 흐르는 낙동강은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지금처럼 그렇게 흘러만 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