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시골 목욕탕

by 이미



OO군 OO면 OO리에서 시골러 생활을 한 지도 벌써 다섯 해가 넘어가고 있다. 여기가 어떤 곳이냐면, 커피 한 잔을 위해 차로 족히 이십 분은 나가야 겨우 그 동네 유일한 카페가 나오는 시골 of 시골이다. 이곳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 길도 익힐 겸, 드라이브 겸, 겸사겸사 동네 구경을 왔었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사과밭뿐이라 처음엔 내비게이션이 고장 난 줄 만 알았다. 지나가던 경운기를 세워 거의 귀가 먹은 할아버지를 붙잡아 여기가 학교가 맞느냐고 소리를 꽥꽥 질러 위치를 확인했다. 사과밭 한복판에 폭 쌓인 한갓진 이 층짜리 시골 학교였다.


입학식 날 처음 아이들을 만나 자기소개를 하며 나는 해맑게 물었다.


“얘들아, 선생님은 커피를 좋아하는 데 여기는 카페가 어디 있니?”


애들은 더 해맑게 대답했다.


“선생님, 여기는 카페가 없어요. 커피 드시고 싶으면 다방 가셔야 해요. 여기는 참깨 다방도 있고요, 참새 다방도 있어요.”


“야야, 그 옆에 수정 다방도 있고 그 옆에는 루비 다방도 있잖아. 그것도 말씀드려야지.”


아이들은 다방 커피 맛은 다 같은 믹스커피 맛이니 아무 데나 가라고 한다. 어떻게 다방 커피 맛을 아냐는 질문에 우리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고 순진하게 모든 걸 털어놓는 시골 애들이었다.



“카페가 없단 말이지. 흠... 얘들아, 그럼,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니?”


버스를 타고 편도 두 시간쯤 가면 △△군이 나오는데 거기에 있는 롯데리아에 가시라는 둥, 아니라고 더 맛있는 맘스터치에 가시라는 둥, 먹는 것보다 피시방이 짱이라는 둥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던 와중에 한 아이가 기막힌 생각이 떠오른 듯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목욕탕 가세요! 여기 목욕비 이천오백 원밖에 안 해요! 그리고 거기 커피 팔아요!”


새벽 다섯 시에 문을 여는 동네 하나뿐인 시골 목욕탕. 작고 누추한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상하게 두근대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놀이동산 귀신의 집에 들어가는 듯한 쫄깃한 느낌이랄까. 남루한 건물의 외관에 압도당해 문을 미는 손이 살짝 떨렸다.


'여기 영업하는 거 맞아?'



매표소에 심드렁하게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줌마를 보고는 이내 마음이 놓였다.


“성인 한 명이요.”


목욕 표를 받기 위해서는 ‘매표소 아줌마’라는 엄청난 관문을 넘어야 했다. 아줌마는 처음 보는 젊은 여자의 얼굴에 한껏 호기심을 내비치며 호구 조사를 시작했다. ‘새댁은 처음 보는데, 누구 집 새댁이고?’부터 시작해서 몇 살인지, 직업은 뭔지, 고향은 어딘지,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형제는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애인은 있는지, 없으면 본인 조카를 만나볼 의향은 있는지까지 모두 다 성실히 대답하면 테스트가 끝난다. 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는 표정으로 아줌마는 목욕 표 한 장을 흐뭇하게 건네주었다. 원래 새벽에는 커피를 안 파는데 새댁한테는 턱별히(특별히) 한 통 만들어 주겠다는 통 큰 씀씀이도 보여주셨다. 각 얼음이 흐드러지게 가득한 게 제맛인 목욕탕 표 블랙커피까지 마저 건네받으면 나는 최종 관문까지 무사통과한 게 된다.


드디어 목욕탕에 입성했다. 새벽 다섯 시, 이른 시간이라 한산할 온탕에서 일하기 싫은 마음을 녹여내 누구보다 산뜻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오르려던 나의 빅픽처는 목욕탕 구석구석 바글바글 모여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할머니 부대에 전멸 당했다. 할머니들은 밤잠이고 아침잠이고 할 것 없이 아예 잠이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나 보다. 생각보다 많은 동네 아낙들이 희뿌연 한 목욕탕에서 아직 감감한 세상의 하루를 일찍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매표소 아줌마가 시골 목욕탕 맵의 마지막 보스 몹인 줄 알았던 건 나의 크나큰 오산이었다. 매표소 앞에서 치렀던 테스트가 수많은 나체의 할머니에게 둘러싸인 채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뉴페이스를 맞이하는 그들의 호기심 짙은 질문 세례에 어버버 하는 틈을 타 점점 더 많은 수의 노인이 주위에 모여들었다. 모두들 너무나 생생한 날것의 상태 그 자체라 내 어린 시선은 갈 곳을 잃고 깜빡깜빡 죽어 가는 목욕탕 천장의 형광등에 꽂히고 말았다.


‘할머니들 저 옷 좀 벗을게요.’라고 어색하게 웃으며 옷장으로 가는 길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양옆으로 쫙 갈라선 노인들의 비호를 받으며 옷장까지 도달해 스르륵 옷을 벗었다. 어깨, 가슴, 배, 허벅지, 엉덩이, 종아리 순서로 그들의 시선이 내리꽂혀 왠지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냉탕에 있다가 온탕에 바로 넘어가면 느껴지는 찌릿함과 따가움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그대들, 제발 그 민망한 시선을 거둬주오...


다양한 연령대의 할머니는 내 몸을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무례한 줄도 모르고 탕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끝까지 나를 쫓던 그들의 시선은 과연 무엇에 닿고 싶었던 것일까? 봉긋이 솟아오른 젖가슴을 다소곳이 가린 내 두 손에 담긴 그들의 새댁 시절 수줍음일까, 아니면 아직 탱탱하고 탄력 넘치는 살갗에서 묻어나는 그들의 지나간 젊음일까. 수십 년 전 당연한 듯 누렸던 건강함에 대한 그리움이려나... 어느덧 훌쩍 흘러가 버린 세월에 대한 미련은 아닐까...


아직 탕에 들어가기도 전인데 마치 사우나에 이미 골백번은 더 들어갔다 나온 듯 온몸이 지쳤다. 겨우 자리 잡은 샤워기 앞에서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다. 뿜은 숨결에 뽀얀 수증기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낡은 건물의 겉과는 다르게 목욕탕 안의 구조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자그마한 냉탕과 온탕 하나씩, 세 명 정도 들어가면 서로의 땀내를 지척에서 킁킁 맡을 수 있을 만큼 꽉 차 버리는 크기의 사우나 하나. 그리고 등밀이 기계.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시골 목욕탕의 포근함이 나름 마음에 들었다.


손이 반 틈도 채 닿지 않는 등을 꾸역꾸역 밀고 있는 나를 보고 안쓰러운 듯 혀를 끌끌 차며 한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그녀는 눈 깜짝할 새 녹색 때수건을 홱 낚아채고는 무작정 내 등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석석. 싹싹. 쓱쓱. 다시 석석.


그녀는 지금 내 등을 도화지 삼아 멋들어지는 소묘를 그리고 있는 걸까? 귓가에 울리는 때 미는 소리가 종이 위를 지나가는 연필처럼 사각거렸다. 세신사는 어디 있냐는 내 말에 오늘 비번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등밀이 기계를 쓰면 된다는 말에도 아랑곳없이 고장 났다는 한마디만 무심히 내뱉고선 계속 등을 밀어주었다. 답례로 당신의 등을 밀어주겠다는 나를 보고 그녀는 ‘나는 저어기(저기) 저 짝에 앉은 호철이네 할마시(할머니)가 이미 밀어줬어.’라며 호탕하게 한바탕 웃고 떠났다.


새벽 다섯 시, 세상의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되는 시골 목욕탕. 일찍이 시집와 본래의 제 이름을 잃고 아들, 손자 이름으로 불리는 동네 아낙들이 익숙한 때밀이 품앗이로 차가운 새벽 공기를 밀어내고 따뜻한 하루를 여는 곳. 생전 처음 보는 남의 투박한 손에 씻겨나간 때만큼 내 속에 쌓여있던 시골의 불편함과 선입견도 한 겹 두 겹 벗겨진다. 카페도 없고 다방뿐이라 여유를 즐길 데도 마땅찮지만, 목욕탕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비에게 과한 관심을 주는 다소 피곤한 시골 사람들이긴 하지만, 앞으론 종종 혼자 목욕을 와도 괜찮을 것 같다. 뭇사람들의 푸짐한 친근감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담아내기에는 이곳 시골 목욕탕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까칠한 도시의 청년에게 마음씨 후덕한 시골 중년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시골 목욕탕의 공기가 참 훈훈하다.


일곱 시 반, 목욕탕 문을 나서며 부서지는 아침 햇살에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을 펼쳐 비춰본다. 수분이 빠져나간 손가락의 주름 골 사이사이로 깔끔하고 깨끗한 여운이 고여 있다. 녹록찮은 하루의 때가 다시금 때꼼때꼼 낄 테지만 목욕으로 일찍 시작한 내 하루가 말쑥한 것이 벌써 만족스러운 건 왜일까?


아침 여덟 시, 출근을 한다.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우리 반 아이들의 환한 칭찬이 마음에 든다.


“와, 선생님 오늘 너무 예뻐요. 얼굴이 반짝거려요.”

keyword
이전 13화라(나)떼(때)는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