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목욕탕에서 생긴 일

by 이미


요즘의 나는 참 요상하다. 금요일 오후 ‘야호~ 주말이다’를 외치고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을 하고서는 집 안으로 들어설 때면 ‘출근하기 싫다’는 시무룩한 말로 현관문을 연다. 토요일 아침에도 ‘출근하기 싫다’는 말 한마디로 눈을 뜨고, 점심 식사도 ‘출근하기 싫다’는 말을 뱉은 후 겨우 한 숟갈 떠 입에 넣는다. 자기 전에 가만히 누워 ‘출근하기 싫다’는 말을 천장에 한정 없이 새겨 넣은 뒤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녘에나 겨우 잠든다. 거의 한 시간 단위로 ‘출근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서 일요일을 보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퀭한 눈에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채로 출근하기 싫다는 말을 로봇처럼 해 대는 딸을 보고 권 여사와 김 사장은 적잖은 걱정을 했다. 처음에는. 그러나 매주 이런 염세적인 사이클이 돌아가자 이제는 으레 습관처럼 하는 말인 줄 알고 ‘어휴, 또 시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찰뿐이다. 유쾌하고 낙천적인 딸을 원하는 권 여사와 김 사장은 일요일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번 아웃에 걸린 딸을 대문 밖으로 내쫓아 버리기로 한다. 주말에 출근하기 싫다고 중 염불 외듯 중얼거리지 말고 나가서 데이트라도 하든지 아니면 그냥 콱 시집이나 가라고 말이다. 과년한 딸 따위는 더 이상 거두지 않겠으니 눈앞에서 얼른 사라지라는 부모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고서 나는 시골에 있는 내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길에 동네 하나뿐인 목욕탕이 보인다. 외관이 사뭇 달라졌다. 색색의 풍선이 목욕탕 입구에 요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오늘따라 입구에 사람들이 유독 바글바글한 것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훤한 얼굴로 옆구리에 커다란 물바가지를 하나씩 끼고 있다.


“아줌마, 목욕탕에 무슨 일 있어요?”


“오늘 목욕탕 리모델링 끝나서 새로 열었어. 오늘 가면 오픈 기념일이라고 바가지도 하나씩 줘. 새댁도 목욕하고 받아 가.”


몇 주 전부터 시작된 동네 유일한 목욕탕의 리모델링 공사가 드디어 끝난 날이었구나. 이천오백 원에 목욕비와 사은품까지 커버가 된다면 남는 장사다. 기분을 한껏 좋게 해 줄 달콤한 향에 부드러운 거품이 나는 목욕 제품으로 바구니를 한가득 채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목욕탕으로 출발했다.


세상에나. 새로 리모델링한 목욕탕의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올 새도 없이 장날의 장터처럼 시끄러운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목욕탕 곳곳에 옥수수 알곡만큼 빽빽이 들어찬 여인들의 나체만이 두 눈에 그득 담긴다. 어디 자리를 잡고 앉을 데도 없다. 사람이 앉을 만한 데는 모조리 다 공짜 물바가지가 놓여 있었다. 물 반, 사람 반이 아니고 사람 반, 바가지 반이다.


틈새를 비집고 겨우 한 뼘 정도 되는 공간을 만들었다. 무작정 엉덩이를 들이밀고 요리조리 움직여 공간을 조금 더 늘렸다. 먼저 우아하게 거품 샤워로 목욕을 시작하려던 내 계획은 비누 거품이 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눈을 찌를 듯 삿대질을 해대는 한 할머니에 의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두 귀로 그녀의 노구에 깃든 목청의 여전한 젊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노인은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자극받은 달팽이관이 찌릿한 것이, 공짜 바가지 값으로 치자면 꽤 융숭한 대접이었다. 순식간에 목욕탕 안에 있던 수십 개의 눈이 나를 쳐다봤다. 이윽고 저 멀리서 아줌마 한 명이 손사래를 치며 달려왔다.


“아이고, 어머님. 목욕하러 와서 젊은 아가씨한테 왜 이러고 계세요.”


며느리로 보이는 아줌마는 앞뒤 사정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 시모가 먼저 시비를 걸었겠거니 생각했는지 냉큼 달려와 말렸다. 시모가 이러는 일이 비일비재한 듯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나는 여전히 영문도 모른 채 이번에는 자기 며느리에게 삿대질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노인의 대단한 정정함을 또 한 번 감상한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두 세대의 며느리 중 젊은 쪽이 별안간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역시나 영문도 모른 채 그녀의 눈 맞춤에 응수했고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마디는 나를 아주 미치게 했다.

“어머, 선생님 아니세요? 우리 뿅뿅이 담임 선생님 맞죠?”


마트에서도 만나기 싫은 학부모를 목욕탕에서 마주한 것이다. 나는 굉장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동안 안녕하셨느냐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건넸다. 내 교직 인생 최초로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최초일 것만 같은 누드 상담이 진행되었다. 당당한 누드의 뿅뿅이 어머님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는 포즈로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땡땡이의 학교생활과 교우 관계는 어떤지, 성적은 좋은지 등등.


몹시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선사하느라 부들부들 떨리는 내 입꼬리 위로 서늘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자녀 상담은 제발 학교에 방문해 주시거나 전화로 요청해 주십사 간곡하게 청하였으나, 뿅뿅이 어머님은 바쁜 농사일로 이렇게 만났을 때가 아니면 시간이 없다며 완강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시원하게 깐 이마와 접힌 뱃살, 허전한 가슴이 못내 신경 쓰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불상사가 이런 게 다 있을 수 있는지 도통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나는 멍하니 들어앉은 탕 안에서 한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상념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뿅뿅이 어머님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지? 내 눈일 거야. 그렇지? 암, 사람이 말을 하는데 눈을 보지 어디를 보겠어.’, ‘뿅뿅이 어머님이랑 할머님만 온 거겠지? 뿅뿅이는 안 왔겠지? 왔어도 나를 못 봤겠지? 그럼, 봐도 절대 모른 척했을 거야. 그게 벌거벗은 스승에 대한 예의지.’, ‘내일 내 몸매 다 소문나는 거 아니겠지? 뱃살이 삼겹살이라고 놀림 받는 거 아니겠지? 아휴, 오겹살 아닌 게 어디야. 완전 울고 싶다...’, ‘이 정도로 끝난 걸 차라리 다행으로 생각하자. 내 등까지 밀어주겠다고 나섰으면 어쨌을 거야? 그래, 오늘 일은 그냥 잊자, 잊어.’


목욕을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끝내고 부랴부랴 탕을 나서니 온화한 표정의 뿅뿅이 어머니가 박카스 한 병을 들고 서 있다. OMG. 자양강장제 따위는 제발 넣어두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랑이가 이어질까 봐 바로 그만두었다. 그곳에서는 한 시도 더 지체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넙죽 감사히 잘 먹겠다고 말하고서 빼앗듯 받아 들었다. 공짜 물바가지를 옆구리에 끼고 미처 말리지도 못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목욕탕 문을 미는 내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아, 내일 진짜 출근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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