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일일 명상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눈을 감고 자기의 호흡에 집중해 일 분 동안 몇 번의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지를 세는 활동이었다. 숨을 최대한 느리게 쉬어 숨 쉬는 횟수가 가장 적은 사람이 일 등 먹는 명상 게임. 마지막에는 느린 숨을 쉬는 동안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교탁 앞에 선 강사님이 명상은 스트레스 완화의 아주 강력한 도구고, 명상이 습관화되면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 탄력성이 좋아져 내적 평화가 찾아온다고 열변을 토했다. 나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눈을 꼭 감고 집중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실눈을 뜨고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며 요령을 피워댔다.
그러던 내가 기운이 빠져 쉬이 에너지가 채워지지 않는 날이면 휘뚜루마뚜루로 하루 동안 배웠던 그 호흡법을 온탕에서 자행하고 있다. 나는 사소한 일에도 세심히 마음을 쓰느라 심신이 지친 날의 다음 날 새벽에는 꼭 목욕탕을 간다. 목욕탕에 가서 옷을 벗어 던져 버리기만 해도 피곤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아서다. 내 몸의 회복 탄력성을 소생시키고자 들어앉은 온탕에서 긴 숨을 쉬어본다.
후우 쓰읍 후우 쓰읍
숨을 쉬는 동안 함께 들떠 오르다 꺼지는 가슴과 배를 가만히 느껴본다. 최대한 부풀렸다 수축시켜 굳은 근육을 자극한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정신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낀다. 켜켜이 쌓인 노곤과 피로가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기를 반복한다. 그대로 나라는 존재까지 같이 녹아 버려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은 평온이 찾아올 때까지.
천천히 호흡수를 세다 보면 불안으로 빨랐던 심장박동수도 느린 셈의 속도에 맞추어 덩달아 느려진다. 안정된 심박수가 내 안에서 느껴지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스르르 긴장이 풀린다. 사뭇 뻣뻣하던 어깨와 목, 뒷골의 근육들이 이완된다. 숨을 멈췄다 다시 쉬고, 멈췄다 다시 쉬며 고요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짧았던 호흡이 길어지면서 지난날 미숙했던 내 심신도 따라 원숙해진다.
길게 내뿜은 숨을 통해 나를 잠식시켰던 고단함이나 피로함, 과도한 긴장감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시원하게 해소된다. 다시 가슴 깊숙이 들이쉬는 숨이 새 시간을 살아갈 원기와 활력을 부활시킨다. 해소와 부활의 사이클 속에서 본래의 내가 회복된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속세의 티끌과 먼지가 씻겨나가고 기력이 회복되는 과정은 죄악을 씻고 구제의 축복에 참여하는 세례와도 같다. 탕에 몸을 담그는 것은 그만큼 신성한 행위다. 나는 태초의 나체가 되어 신성함에 신성함을 배가시킨다.
온몸의 감각이 눈을 뜬다. 두 볼에 모인 가느다란 혈관들이 벌써 확장된 모양이다. 체온이 오를수록 얼굴이 더욱 붉게 상기된다. 피부에 닿는 따스한 물의 잔잔한 흔들림이 간지럽다. 내 살갗에 남은 감촉이라곤 나의 등과 가슴팍을 감싼 물의 안온함 밖에 없다. 피부의 감도가 따뜻함에 민감해질수록 차디찬 현실의 시름과 근심은 어느덧 모두 잊힌다. 지금 나를 자극하는 것은 오직 찰랑대는 물뿐이기에,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물의 속성에 집중해본다. 투명하지만 존재하고, 존재하지만 잡을 수 없는 무형의 것.
호흡의 길이가 점점 더 길어진다. 숨에 집중하는 내 정신이 점점 더 맑아진다. 하지만, 이윽고 꼭꼭 숨겨뒀던 과거의 후회와 미련들이 스멀스멀 기억 회로를 헤집고 뛰쳐나와 나를 방해하기 시작한다. 온몸을 포근히 감싸고 있던 다스운 물줄기에 맥없이 씻겨 나가기를 소망하며 호흡을 계속한다.
불결했던 과거를 지우고 순결한 현재를 맞이한다. 아직 순수하기만 한 작금에 달라붙는 의식의 불순물을 최대한 씻어내 보지만, 이내 곧 소용없음을 깨닫고서 추악한 것도 여전히 나요, 무구한 것도 역시 나임을 인정하고 만다.
온탕 안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방울이 톡톡 터진다. 머릿속을 떠돌던 마지막 상념 한 방울도 마저 터져 기화한다. 나의 육체와 정신이 이제 무념무상에 든다는 신호로 저 멀리서 이명이 들려온다. 삐-.
온탕의 더운 열기가 정수리 끝까지 다다랐다 머리칼을 타고 증발한다. 이마와 두피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있다 제 무게를 못 이겨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빼곡히 도포된 모공에 상쾌함이 차오르니 몸이 가볍다. 이런 가뿐함이 곧 평화이고 행복일까? 무심코 쓸어내린 두 뺨의 피부가 매끈하다. 한동안 고개를 빼꼼히 내밀까 말까 고민하던 앞턱의 여드름이 흔적도 없이 쏙 들어갔다. 옛 흔적을 더듬어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없다. 고놈도 있다 없으니 꽤 섭섭하다.
오른쪽으로 머리를 눕혀 지그시 눌러본다. 반대로도 한다. 팔을 이리저리 비틀어 어깨의 근육과 관절을 힘껏 늘려본다. 두 손을 가지런히 합장하고 팔꿈치끼리 맞붙인다. 머리끝까지 들어 올려 양 겨드랑이를 자극한다. 평소 잘 쓸 일이 없어 아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근육. 세월의 풍파에도 끝내 모질어지지 못한 내 여린 구석 같은 그곳.
근처의 이두와 삼두근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참았다가 툭, 팔을 털어낸다. 허리를 빙글빙글 돌려 본다. 등을 둥글게 말아 이제껏 꼿꼿하게 상체와 하체를 지탱한 척추를 한풀 쉬게 한다.
자, 이만하면 오늘도 유연하게 살 준비가 됐다. 아자! 와 으쌰! 로 달은 숨을 내뱉고 드디어 탕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