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 직장에서 가장 장기근속자다. 작년에 근무지를 옮기고자 한 번 시도해보았지만 운 때가 아니었는지 여기가 내 명인 건지 어쩌다 보니 일 년을 더 발 묶게 됐다. 이곳에서 벌써 관리자 세 분을 모셨다. 첫 번째 관리자는 민원에 심하게 벌벌 떨어 직원을 쥐 잡듯 잡는 것만 뺀다면 뭐, 그런대로 무난했다. 문제는 두 번째 관리자였다. 그는 이곳으로 발령이 나자마자 흔한 첫인사도, 통성명도 하나 없이 직장 단톡을 열었다. 교직원은 기본이고, 학교 소식을 자주 기사화하는 동네 기자처럼 학교와 관련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모조리 초대됐다.
‘이번에 발령받은 교감 김모모입니다. 앞으로 이 카톡을 비상시 소통용으로 사용하겠으니 나가시는 분은 아무도 없으시길 바랍니다.’라는 첫마디로 직장 단톡의 서막이 열렸다. 비상 연락망이라는 상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죄로 나는 그날부터 카톡 감옥의 죄수가 되고 말았다. 무늬만 비상 연락망인 이 단톡이 ‘비상시 소통용’ 이상의 기능을 수행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론, 굉장히 짜증나고 심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말이다.
‘날씨가 화창한 주말 아침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등산 중인 것 같은 누군가의 사진이 뜬다. 그럼 그 밑으로 ‘얼굴이 정말 행복해 보이십니다.’ ‘옆에 계시는 미모의 여성은 사모님?’ ‘무슨 산인 가요? 저도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이번 친목회는 산행 어떨까요?’ 등등의 멘트가 무서울 정도로 후다닥 달린다. 잠이나 늘어지게 자고 싶은 황금 같은 주말 아침에 이게 도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일까 싶다.
아직 어스름한 주말 새벽과 아침 사이에 눈을 떠, 알림 기능이 제대로 꺼져있는지 확인한다. 아뿔싸. 미처 알림을 끄질 않았다. 내 탓이고 또 내 탓이다. 알림은 쉽게 껐지만 이미 깬 잠은 다시 쉬이 들기 어렵다. 직장 상사의 메시지에 대한 답장으로 주말 아침을 여는 것도 사회생활의 일원이거니 생각하며 ‘어머 선생님. 사진 보니까 얼굴에 김 묻었어요. 잘생김^^’ 따위의 인사치레를 날려 볼까 하다 볼썽사납고 더러워서 그만두기로 한다. 이따위 면구스러운 답장은 너무나도 거짓이어서 자칫 상관에 대한 조롱으로 비칠 우려가 있기에.
카톡의 알림을 켜 놓거나 꺼 놓는 것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요는, 내가 직장과 관련된 어떤 이의 메시지도 주말엔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요는, 나는 직장 동료가 주말에 등산을 하든 말든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은 때론, 딱히 알 필요도 없는 너무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오롯이 휴식을 위해 쓰고 싶은 주말조차,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발견한다. 타인의 퇴근 후 삶이나 주말 일상쯤은 제발 몰랐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게 큰 욕심인가 싶다.
살다 보면 아주 작은 바람도 큰 탐욕으로 간주 될 때가 있다. 나만의 고유한 시간을 가지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내비치는 것일 뿐인데도 사회성이 없다든지, 집단에 어울릴 줄을 모른다든지, 너무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라는 평을 들을 때가 있다. 이 단톡에서도 또 그런 취급을 받을까 봐 제발 방 좀 폭파하자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은 맘을 뒤로하고 입을 다물고 만다.
늦은 점심쯤, 이제 등산을 마치고 산채 비빔밥을 먹으러 왔다는 그의 메시지를 읽고 나는 그만 식욕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의 주말 침해는 참기가 힘들어진다. 휴대폰을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이 스마트한 전자기기가 손에 닿지 않을 곳을 찾아본다. 세상에! 있다! 바로 목욕탕이다! 그래, 목욕탕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Technology-Free Zone이다. 넘실대는 환희의 이피파니(epiphany) 속에서 한시의 지체도 없이 목욕탕으로 달려간다. 슝슝.
샤워를 얼른 끝내고, 제일 좋아하는 온도로 세팅된 온탕에 몸을 뉜 채 생각한다. 아, 편하고 또 편하구나. 요즘 커피 한 잔 값으로 이렇게까지 육체와 정신이 모두 휴식에 들 수 있는 곳은 세상에 목욕탕밖에 없을 테다. 돈만 내면 누군가가 내 더러운 때까지 벗겨주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는 그곳. 돈을 좀 더 내면 신선한 오이 마사지로 피부를 가꾸며 황제 대접을 받기도 하는 그곳. 지상의 last paradise, 마지막 낙원이란 진정 목욕탕이 아닐까?
현대 문명의 기술이 아직 손길을 미치지 못한 동네 목욕탕은 카톡 감옥의 유일한 탈출구이자 내적 평온을 회복케 하는 참 감사한 장소이다. 요즘 동네 목욕탕들이 우후죽순 폐업을 하고 목욕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데, 제발 옛 명성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경건히 비누칠한다.
온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으면 짜증으로 솟구쳤던 신경계가 서서히 역정을 거두고 안정된다. 따뜻한 물이 한껏 경화되어있던 육신을 누그러뜨리면서 기분이 살짝 들뜬다. 들뜬 기분의 틈새로 나를 괴롭히던 스트레스가 하나둘 빠져나간다. 물의 적당한 따뜻함이 주말 아침부터 열 받은 내 마음만큼이나 바짝 올라가 있던 혈압을 천천히 떨어뜨리면, 머리를 옥죄던 지끈한 편두통이 천천히 가신다.
컨디션이 한풀 좋아지면, 이번엔 팔을 빼내어 팔걸이에 걸쳐 본다. 한결 몸이 시원해지며 반신욕이 시작된다. 따스한 물에 충분히 노출된 몸이 열 충격 단백질을 뿜어, 스트레스에 취약한 세포들을 보호하는데 열성을 다하고 있다.
온탕의 찰박대는 물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직장 단톡은 앞으로도 의미 없는 메시지를 마구 쏟아 낼 테니 목욕탕에서 자주 보자고. 온온한 탕의 열기가 지친 내게 위로의 포옹을 건넨다. 목욕의 도움으로 심신이 작은 평안을 얻는다.
목욕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집어 든 휴대폰엔 어김없이 여러 개의 메시지가 와있다. 카톡 감옥에 강제로 갇힌 죄수들이 릴레이로 답장을 이어가는 고문을 받고 있다. 대화를 보다 보니 아까 등산길에 올랐던 그분이 언뜻 내 이름을 언급한 것 같다. 그는 나와 사생활을 나누며 정말로 유의미한 소통을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상사의 말에 아무 답도 없는 하급자인 나를 괘씸히 여기는 것일까... 단톡에 언급된 내 이름 석 자가 사뭇 낯설다.
씹을까 말까 하다 그냥 답장하기로 한다. ‘저는 덕. 분. 에.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을 다녀왔어요. 주말 아침부터 잠을 설쳐 피곤할 땐 누가 뭐래도 목욕이 제격이죠. 선생님도 등산 갔다 오신 터라 온몸의 근육에 피로물질인 젖산이 쌓였을 텐데, 젖산의 녹는점은 섭씨 27도 정도이기 때문에 사우나를 가시거나 온수 목욕을 하시어 젖산을 제거...’까지 썼다가 멈췄다. 솔직히 상사에게 저런 답장을 보낼 용기까진 아직 없는 것 같다. 제대로 된 똘끼의 예시를 보여주려 했는데 용기가 아주 쬐끔, 물 한 방울쯤 모자라다니... 아쉽지만, 무난하게 가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도록 마지막에 눈웃음은 꼭 붙이기로 했다.
“대화 중 죄송하지만, 본 단톡은 근무 관련 피치 못할 비상시를 위해서만 사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쉴 땐 좀 쉬어야지 않겠습니까? ^^”
단톡의 숫자가 점점 줄고 있다. 숫자가 다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답장하지 않는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걸까...? 텅빈 대화 창의 적막감이 폭풍전야처럼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