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동행 목욕 체험

by 이미



임용 첫해, 전교 학생 수가 네 명인 폐교 직전의 한 시골 학교에서 꿈에 그리던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내가 맡았던 학반의 학생 수는 단 한 명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느 학생들과 같은 십대가 아니라 칠십 세의 할머니였다는 것.


나의 첫 제자, 순이 할머니는 ‘여자가 무슨 학교에 다니느냐, 시집이나 가서 아들이나 술술 잘 낳으라.’ 따위의 남아 선호 사상이 만연한 시절, 어느 가난한 농부의 첫째 자식으로 태어난 여자다. 또한, 어렵사리 초등학교만 마친 후 배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프로 농사꾼이기도 하다. 배움에 대한 열정과 미련을 가슴속에 지니고만 살다 우연한 기회로 집 앞 중학교에 입학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입학을 신청하여 그렇게 당해 유일한 입학생이 된 학생이 바로 순이 할머니다.


순이 할머니는 자두 농사를 아주 크게 지었는데 농번기인 오월쯤이 되면 밭에 비료도 주고 가지치기도 해야 한다는 핑계로 잦은 결석을 일삼는 농땡이 학생이었다. 그래도 영어 시간에 알파벳을 열심히 외워 돼지가 ‘pig’라는 것도 알고, ‘How are you?’라는 질문에 ‘I am good!’이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그 당시 우리 반에는 회장님 책상 같은 널찍한 순이 할머니 전용 책상 하나와 교실 뒤쪽에 역시 순이 할머니 전용 사물함 두 개가 있었고, 책상과 사물함 사이 태평양만큼 넓은 공간엔 항상 은박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순이 할머니는 수업하기 싫을 때마다 돗자리 위에 벌러덩 누워 낮잠을 자자고 조르거나 집에서 만들어 온 부침개를 벌여 놓고 어서 먹자고 나를 꼬드기던 아주 짓궂은 학생이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순이 할머니가 급한 일 때문에 집에 잠깐 들러야겠다고 하여 삼십 분짜리 외출증을 끊어 주었다. 오교시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도 학생이 학교로 돌아올 코빼기가 안 보여 담임인 내가 학생을 찾아 가정방문을 가게 된 날이다.


“순이 할머니, 계세요?”


갑작스러운 담임의 방문에 놀란 기색도 없이 순이 할머니는 한달음에 마루로 달려 나왔다. 방금 씻은 듯, 곱슬곱슬한 그녀의 머리칼에 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부엌에서 나는 구수한 밀가루 냄새가 삐걱대는 옛 한옥의 마루를 타 넘어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지금 수업 땡땡이치고 목욕한 거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급한 밭일 때문에 땀이 나서 어쩔 수 없었다며 싱긋 웃는다. 이건 무단 결과라며 으름장을 놓는 담임의 손목을 끌어 방으로 들이더니 어차피 늦은 거 칼국수나 한 그릇 먹고 가자며 너스레를 떤다. 빨리 먹고 학교로 돌아가자는 나의 말에 알았다며 능글맞게 맞장구를 치고는 면발을 후루룩 들이켰다.


“학교에선 체험학습이다 뭐다 많이 가는데 농사 체험은 왜 없을까. 농사 체험하고 목욕탕 한 번 가면 딱 좋을 텐데.”


“할머니, 농사 체험까지는 괜찮은데 목욕탕은 완전 별로예요. 저는 애들 앞에서 옷 벗을 생각이 절대 없어요. 절대.”

순이 할머니는 같은 여자끼리 뭐가 징그럽냐며 나에게 핀잔을 주고는 아주 결연한 눈빛으로 교장 선생님께 한번 건의 해 보겠다고 말했다. 전교 부회장이었던 순이 할머니는 진짜로 사제동행 목욕 체험을 제안했고, 그녀의 안건은 별다른 문제없이 한방에 통과되었다. 다만 농사 체험 대신 지역의 명산을 등반한 후 오후에 목욕탕을 갔다가 마무리하는 일정으로 확정되었다.


당시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순이 할머니와 다른 여학생 한 명 그리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가는 목욕에 사색이 돼가고 있었다. 일단 창피하기도 했고 사제동행으로 목욕탕에 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와도 서로의 알몸을 공유하고 싶을 만큼 친하지도 않았고, 또 그럴 마음도 전혀 없었다.


사제동행 목욕 체험일이 다가올수록 점점 낯빛이 흙빛으로 변해가는 나에게 순이 할머니는 매번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 노력했다.


“걱정하지 마. 우리 선생님, 그렇게 안 뚱뚱해!”


그녀는 수업에 들어오는 모든 선생님께 ‘우리 담임 선생님은 안 뚱뚱하다.’라는 격려의 한 마디를 부탁해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망의 사제동행 목욕 체험 날, 나는 아주 열심히 등산을 했다. 산행으로 몸을 녹초로 만들고 정신 줄을 좀 놓아야 학생들 손을 붙잡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결단코 때를 밀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농사로 다져진 다부진 근육의 소유자, 순이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만 등을 내주고 말았다. 꽤 많은 사람으로 복작거렸던 목욕탕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희뿌연 수증기, 그리고 다양한 테마로 마련된 탕과 사우나로 인해 나의 알몸을 숨길 곳이 생각보다 많아서였을까, 경직돼 있던 몸과 생각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린 나를 귀신같이 포착한 순이 할머니는 나에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넸다.


그날, 탕 안에서 나는 순이 할머니의 다사한 인생사를 들었다. 어렸을 때 집안의 장녀는 살림 밑천이라고 초등학교까지만 시켰다는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부터 집안 음식을 축내는 입이라면 하나라도 더 줄이기 위해 얼굴만 아는 옆 동네 총각에게 그냥 시집을 보내버렸다는 그녀의 조부 얘기, 수천 평 되는 자두 농사를 홀몸으로 지으면서도 자식을 여섯이나 낳아 키웠다는 그녀의 젊을 적 억척에, 못다 배운 공부에 대한 한을 풀게 해 준 학교에 대한 감사까지, 여느 학생과 담임의 관계라면 여러 번에 걸친 개인 상담을 통해서만 겨우 알 수 있었을 법한 속사정을 모조리 들을 수 있었다.


목욕을 말끔히 끝내고 밖으로 나가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학생 두 명이 쭈쭈바를 입에 물고 쪼르르 달려왔다.


“쌤!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우리 내년에도 목욕탕 또 와요!”


“응, 싫어.^^”


모처럼 읍내로 나가는 길, 도로를 따라 쭉 펼쳐진 사과밭에 주렁주렁 열린 사과들이 아주 탐스럽다. 알알이 새빨갛게 익어 가는 과실 아래서 열심히 농사짓는 농부가 보인다. 일바지 차림으로 앉아 있는 아주머니를 보노라면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 한가득 자두를 담아 내 손에 꼭 쥐여 주던 순이 할머니가 생각난다. 수년이 지나 연락이 끊긴 지금, 그녀가 팔십 대의 정정한 할머니로 여전히 생을 이어가고 있을지 아니면 고운 영혼이 되어 하늘나라로 떠났을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는 함께 목욕한 나의 유일한 제자로, 내 서툰 교직 생활의 첫걸음을 같이 걸어가 준 고마운 학생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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