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욕실 쟁탈전

by 이미


나는 명절 연휴가 길면 길수록 외국으로 얼른 피신하는 사람이다. 집에 있으면 어른들의 시집가란 소리를 받아내느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이니 아무도 나를 모르는 해외로 피신하는 게 심신의 안정에 상책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건지, 명절 연휴 내내 여행 메이트가 되어주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인 하하가 곁에 존재했기에 더욱 오르기 쉬운 여행길이었다. 우리는 항상 일주일 정도의 연휴는 거뜬히 나오는 설이나 추석과 같은 대 명절이 오기 석 달 전쯤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해 휴양지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시집이나 가란 소리를 원천 봉쇄하기에는 해외로의 피신이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피치 못하게 해외여행이 불가할 때는 좋은 수영장이 딸린 국내의 호텔에서 일박 정도 호캉스를 하며 명절을 보내기도 한다. 아니면 총 멤버 세 명의 등산모임 회장을 역임한 나라서일까, 등산 후 온천욕으로 이어지는, 그다음 날 해안가 드라이브가 포함되면 더더욱 금상첨화인, 적어도 일박 이상의 일정을 선호하는 편이다. 올해 들어서는 코로나로 인해 국내에 머무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기에 하하와 나는 각자의 집에 머물면서 부모님의 시집이나 가란 잔소리를 재량껏 감내하기로 하였다.


먹고, 자고, 시집가란 소리를 듣고, 넷플릭스를 보는 게으름의 극치를 달리는 사이클이 반복된 지 삼 일째, 찌뿌둥한 몸을 도저히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가족들과 함께 등산길에 올랐다. 정상이라고 해봤자 해발 500m도 안 되는 작은 산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생각보다 따가운 가을 햇살에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고 말았다. 마스크를 쓰고 등산하면서 더운 날씨까지 감당한 터라 모두 녹초가 된 것을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의 머릿속엔 온몸에 쌓인 땀내와 젖산을 씻어 내기 위한 목욕 생각이 간절했지만, 코로나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한 집합 금지 조치가 목욕탕에까지 내려졌기에 우리는 집에서 순번을 정해 목욕하기로 했다.


문제는 큰 욕조가 달린 욕실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찝찝한 기분에 누구 하나 양보 없이 제일 먼저 욕실을 사용하고 싶어 했다. 피부 위에 찐득하게 달라붙은 소금기와 피로감 앞에서 부자유친이나 장유유서 따위의 덕목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모양새였다.


이렇게까지 이기적인 딸들은 서로 자기를 닮지 않았다고 티격태격하는 김 사장과 권 여사의 가벼운 입씨름을 시작으로, 우리 가족은 목욕 순번을 정하기 위한 화투판을 벌였다. 모두 세수 정도만 하고 카키색 군대 모포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딱 한 판으로 이긴 사람이 목욕 순서를 정하기로 했다. 우리 네 명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일 등을 선점하기 위해 화투판에 열정을 불살랐다. 바닥에 여덟 장을 깔고 다섯 장의 패를 손안에 넣는다. 쌓여있는 화투패 더미에서 한 장을 가져온 뒤 들고 있는 패와 맞춰본다. 그리고 필요 없는 패를 버린다. 기분 탓일까, 숨소리만 가득한 화투판에 이유 모를 적막이 감도는 것만 같았다.



결국, 승리는 김 사장의 것이었다. 재주도 좋게 열두 달 중 같은 달을 두 장씩 모아 도합 여섯 장을 만든 또이또이로 판을 뒤집어 버렸다. 김 사장은 한껏 아량을 베풀어 권 여사를 일 번으로 지목했다. 권 여사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욕실로 입성했다. 그다음은 동생, 그다음은 김 사장, 마지막이 나였다. 왠지 모르게 억울한 나는 김 사장에게 항의했다.


"왜 내가 마지막이야? 나도 빨리 씻고 싶어!"


김 사장이 대답했다.


"억울하니? 억울하면 시집가."


이민을... 가야 하나...? 김 사장의 시집이나 가란 말에 요즘처럼 싱글로 살기 편리한 세상에서 결혼을 위한 결혼이 베이스가 되는 관계가 과연 딩크인 나에게 어떤 득으로 다가오는지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2022년 현재, 사회적으로 충분한 경제 활동을 하며 적당히 잘 벌고 있는 여자로서 1923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현행 법률혼의 장점을 과연 내가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만 든 것이 사실이다.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음과 동시에 나에게는 새로운 역할들이 부여된다. 아내, 며느리, 맞벌이 직업인, 임신 가능자, 산모, 그리고 엄마에 주부까지. 이게 법률혼이 성립함과 동시에 여자에게 갑자기 주어지는 역할의 일부가 아닌가. 통념적으로 결혼해야 하는 나이의 여자란 이유로, 부모가 원하는 상대와 비슷한 상대를 고르는 것이 연애와 결혼이라면, 이 방식은 선택권자의 자유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함께 든다. 김 사장이 원하는 결혼이, 법률혼이 아닌 정신적, 감정적 위안이 바탕인 평등한 파트너십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닐 테니 말이다.

우리 권 여사와 김 사장은 아직도 큰딸이 비혼 by choice에 가깝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든가 보다. 유럽은 이미 법률혼 밖에서 태어난 아이가 전체 출산율의 반을 넘어섰고, 이 아이들과 부모가 보장받는 모든 사회제도적 혜택은 법률혼으로 이루어진 가정의 자녀와 동일하다. 유럽이 사회보장제도를 이렇게 개인단위로 개편한 것은 결국 국가의 유지 성장과 직결되어 있으며, 그 결과 실제로 유럽의 출산율은 상승했다. 우리나라도 프랑스의 팍스나 캐나다의 코패런팅처럼 다양한 형태의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의 사회보장제도를 마련해 '법률혼 = 가정, 출산, 육아, 유전자의 재생산'과 같은 보수적인 방정식을 타파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저출산 문제는 솔직히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전국 가임 지도 따위를 만들고 한 해 몇 조씩 예산을 투입해도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바닥을 기는 추세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 권 여사와 김 사장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직업도, 능력도, 성격도, 외모도, 경제력도, 가정형편도 적당하고 평범하고 괜찮은 남자와 결혼해서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딸 가진 세상 모든 부모라면 응당 꿈꿀 법 한평생의 소망일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자식의 생각까지 당신 세대의 것과 같기를 바랄 수는 없다. 비혼이란 더 이상 개인 선택의 문제로만 비추어져서는 안 되는, 사회 경제적 요인에 의한 인식 변화의 산물인 까닭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생을 편안하게 해주는 남자를 만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싶다. 나는 적어도 인생을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남자를 사랑하겠다는 것, 이것이 내겐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전제한 연애 같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코로나나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누군가는 덜 억울할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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