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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올리스트 한대규 Dec 26. 2023

viola music (5) : Vivaldi

사계 ‘겨울’  Le quattro stagion ‘L'inverno’


Antonio Vivaldi

L'inverno 2. Largo

Le quattro stagion

(Violin Concerto No.4 Op.8 )


안토니오 비발디

사계 중 ‘겨울’ 2악장

(바이올린 협주곡 4번 작품번호 8번)


viola music

매거진 ‘viola music’에서는 비올라를 위해 쓰인 곡들을 소개함과 동시에 다양한 곡을 비올리스트의 관점에서 재조명해 볼까 합니다. 재조명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한 것 같고, 비올라의 역할을 ‘줌인 Zoom-in’해서 살펴본달까요, 음악을 바라보는 비올리스트의 시선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곡이죠. 오늘 소개해드릴 곡은 비발디의 ‘사계’입니다. 사계는 비발디가 바이올린과 현악 앙상블을 위해 작곡한 12곡의 콘체르토 (Concerto, 협주곡) 모음에 포함된 네 개의 곡입니다.


협주곡 Concerto에서는 주자가 주인공이 되고 반주를 담당하는 앙상블 그룹은 그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게 되죠. 물론 곡의 중간중간 서로 역할이 바뀌기도 하지만 독주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작곡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비발디가 활동하던 당시, 그러니까 콘체르토 형식이 막 잉태되던 시기에는 더더욱 그 구분이 뚜렷했죠.


사계에는 당시의 일반 콘체르토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이 곡이 널리 알려지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다채로운 각 계절의 모습을 담은 각각의 음악처럼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반주그룹인 앙상블의 구성과 역할이 유기적으로 변화한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자주요.


아돌프 폰 멘첼 Adolf von Menzel의 그림 플룻 협주곡Flute Concerto

예를 들어 첫 번째 협주곡인 ‘봄’ 1악장의 경우, 반주그룹의 일원으로 연주하던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새들이 지저귀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솔리스트와 동등하게 전면에 등장했다 사라집니다. ‘가을’의 느린 악장에서는 아예 솔리스트가 등장하지 않기도 하고, 또 독주자와 비올라 다 감바(지금의 첼로) 파트의 수석 연주자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부분도 나오는데,  마치 이중협주곡처럼 두 악기의 협주가 팽팽합니다.


입체적이랄까요? 수시로 바뀌는 구성은 그만큼 다양한 음향을 만들어내고, 듣는 이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물론 연주자에게도 요! 휙휙 바뀌는 곡의 성격 탓에 많이 연주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곡이 바로 사계입니다.


네개의 계절을 표현한 앨범 자켓 | 사진출처 : 도이치 그라모폰

더불어 사계의 큰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악보에 적혀있는 상세한 텍스트입니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 천둥번개가 치는 소리,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사람들, 모기가 달라붙는 장면 등 디테일이 살아있는 지시어들이 곳곳에 적혀있습니다.


”멍멍 말고, 왈왈! “

“작고 앙증맞은 말티즈 말고, 셰퍼드처럼 큰 개가 멀리서 짖는 소리를 내주세요!”


비올라 역시 이 곡에서 중책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개 짖는 소리’입니다. 비올리스트는 이 곡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개가 짖는 소리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합니다. ‘봄’의 2악장에서 비올라 파트에 Il cane che grida = 개가 짖는 소리라고 쓰여있거든요.  


사계의 웃음버튼이랄까요? 비올라가 개소리(?)를 낼 때마다 다른 파트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리허설 과정에서 비올리스트는 악기로 개소리를 흉내 내는 치욕(?)을 감내해야 하죠. 흠… 왜 비발디는 굳이 비올리스트에게 이런 역할을 맡겼을까요. 좀 더 멋있는 역할은 없었던 걸까요…(물론 비올리스트들은 이렇게 희화화되는 것마저 즐깁니다. 비올라 조크의 탄생 배경이죠^^)

잉글리시 셰퍼드 English Shepherd

눈에 띄지는 않지만 사계에서 비올라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악장이 있으니 바로 ‘겨울’의 2악장입니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음악이죠. 너무나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우리 귀에 익숙한 이 음악 이런 문장을 품고 있습니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난롯가에 앉아 조용히 불을 쬐며 아늑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Passar al foco i di quieti e contenti Mentre la pioggia fuor bagna ben cento.


베이스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담요 같은 울림 위에 얹힌 귀엽고 사랑스러운 바이올린의 피치카토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린 장식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위에서 조용히 펼쳐지는 바이올린의 멜로디는 더없이 아름답죠.


이 악장에서 비올라는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긴~음을 연주합니다. 긴 음은 음악에서 평온한 풍경, 아늑함을 표현하는 음악적 언어로 사용되곤 하는데요. 보로딘의 현악 4중주 2번,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말러의 1번 교향곡 등 많은 예시가 있습니다. 특히 전통음악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마치 스코틀랜드 악기인 백파이프의 지속음도 시골의 한적한 풍경을 연상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겨울 2악장의 악보

자세히 들어야만 들립니다. 하지만 확실히 부드럽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 부분에도 지시어를 적을 수 있다면 이렇게 쓰고 싶어요.


’ 오븐에서 구워지고 있는 은은한 빵내음‘

작자미상 |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있죠. 비올라의 긴 음은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빵내음을 닮았습니다. 살이 아리듯이 추운 겨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바람에 실려온 붕어빵 냄새처럼요.


우리 귀에 익숙해진 사계의 ‘겨울’ 2악장을 비올라가 자아내는 빵냄새에 귀 기울여 들어보시길 바랄게요! 모두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



글 - 비올리스트 한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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