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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Oct 01. 2024

그들의 총검보다 더 강한 우리의 노래를 지어라

국가를 지으라는 사명을 받다

노래가 총검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프랑스 장군은 이 노래가 전투에서 1,000명의 병사를 더 가진 것과 맞먹는다고 하였고, 어느 독일 시인은 이 노래가 독일군 5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고 썼습니다. 이 노래는 200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고,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탱크에 맞설 용기를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해방을 원하는 많은 민족의 노래에 영감을 불어넣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이야기입니다. - 알렉스 마셜 지음, 박미준 옮김, 『국가로 듣는 세계사』 중에서 발췌


와게 루돌프 수쁘랏만은 마카사르에서 큰누나 루키옘과 매형 밑에서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습니다. 큰누나는 집안에서 남자라고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와게를 너무나도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교직(敎職)에 몸담게 된 와게가 보조교사를 거쳐 정교사로 승진하여 시골 벽촌(僻村)으로 전근을 발령받았는데, 루키옘은 와게를 계속 곁에 두고 보살피고 싶어서 와게가 집을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 큰 어른이 된 와게가 이를 큰누나의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요. 하지만 와게는 누나의 뜻을 따라 교직을 접기로 했습니다.


대신 와게는 매형과 함께 재즈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매형은 와게에게 생일 선물로 바이올린을 사주고 연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을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꽤 깊었습니다. 두 사람의 밴드는 마카사르의 네덜란드군 병영과 사교장, 결혼식장을 돌아다니면서 금세 명성을 얻었고, 순회공연으로 돈도 좀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1920년대 재즈가 대도시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여 고급 호텔과 극장에서 공연되었거든요.


인도네시아 국가인 인도네시아라야(Indonesia Raya, 위대한 인도네시아) 작사 작곡자인 와게가 마카사르에서 매형과 결성한 재즈밴드


와게는 자신의 부친처럼 KNIL에서 원사 계급으로 제대하고 연금을 탔던 매형 집에서 계속 지냈더라면, 유복하지는 않아도 늘 춤과 음악으로 가득 찬 부족함 없는 인생을 즐길 수 있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럽인 초등학교에서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급우들에게 온갖 따돌림과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던 일을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의 큰 재능으로 승화(昇華)시켜야 할 생채기였습니다. 감미로운 선율에만 취한 채 자신의 재능을 사교계의 고객들을 위해 계속 낭비하고 있을 수 없었던 겁니다.




1920년대는 인도네시아 민족 운동이 본격적으로 하나로 결집하는 전환점이 된 시기였습니다. 산발적이던 운동은 지역, 종족, 종교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몸부림쳤고, 인도네시아를 쪼갤 수 없는 단일한 민족으로 인식하며 반식민 투쟁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신문을 비롯한 인쇄 매체는 각 섬과 지역에 널리 퍼져 흩어져 있던 인도네시아인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와게를 큰누나 가족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오게 만든 것도 그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는 사환(使喚)으로 일하다가 읽게 된 신문 기사였습니다.


이번에는 큰누나도 그의 굳은 결의를 굽히지 못합니다. 그는 고향 땅 자와에서 험난한 길을 뚜벅뚜벅 걸으며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하다가 펜을 잡고 기자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에 신문사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불온한 기사가 당국의 검열에 걸리기라도 하면 정간이나 폐간당하기 일쑤였지요. 당시에 기자는 안정적인 직업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여러 신문사를 떠돌다가 바타비아(Batavia, 오늘날 자카르타)에서 화교들이 설립한 신문사 '신포(Sin Po, 新報)'자리를 잡고, 식민 지배의 부당한 현실을 고발하고자 민족 운동가들을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취재했습니다.




Duduk di pantai tanah yang permai
Tempat gelombang pecah berderai
Berbuih putih di pasir terderai,
Tampaklah pulau di lautan hijau
Gunung-gemunung bagus rupanya,
Dilingkari air mulia tampaknya:
Tumpah darahku Indonesia namanya.

해변에 아름다운 땅에 앉았네
파도가 작은 물방울로 부서지는 그곳
백사장에 허연 거품이 일고,
드넓은 대양의 섬들은 푸르르게 보이는구나.
산줄기는 수려한 용모를 뽐내고,
물줄기가 장엄하게 허리를 둘러 흐르는구나.
이곳이 나의 피로 세운 땅 인도네시아라네.

무함마드 야민(Muhammad Yamin)의 시 《나의 피로 세운 땅, 인도네시아(Indonesia, Tumpah Darahku)》에서 발췌


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로 된 출판물을 접하고 같은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독립적인 국가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말을 곱씹어 본다면, 타협을 모르는 민족운동가 무함마드 야민의 시 《나의 피로 세운 땅, 인도네시아(Indonesia, Tumpah Darahku)》가 어떻게 자와인, 순다인, 무슬림 개혁주의자, 무슬림 전통주의자, 기독교인, 프리야이(priyayi, 전통 귀족 및 관리 계층), 하층민 등 정체성이 얽히고설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하나의 인도네시아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로 이끌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 시는 독립의 열망을 불태우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낭독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곧 깨닫게 됩니다. 혁명의 파수꾼을 자처하며 대포 2문만 달랑 끌고 파리로 쳐들어가는 정신 나간 짓을 벌였던 517인(人)의 마르세유 의용군이 고개를 넘어가며 불렀던 '라 마르세예즈'처럼 인도네시아 민중이 신분, 계급, 종교 차이를 잊어버리고 네덜란드군 요새에서 뿜어나오는 총포탄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줄 민족의 상징이 되어줄 노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런 노래가 바로 국가(national anthem)입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350년 동안이나 짓밟고, 수탈했던 네덜란드 사람들의 국가 《헷 빌헬뮈스(Het Wilhelmus)》도 스페인 왕의 압제에 신음하다가 인제 그만 벗어나려고 투쟁의 기치를 올렸던 시기에 지어진 세계 최초의 국가랍니다. 와게는 민족의 노래를 지어달라는 호소가 담긴 신문 기사를 읽고, 그들의 총검보다 더 강한 인도네시아의 노래를 짓겠다는 사명을 짊어지기로 합니다. (계속됩니다)



참고문헌:

Husain, S. B., & HANAFI, T. (2023). From the parliament to the streets.: The State of East Indonesia, 1946-1950. In B. PURWANTO, R. FRAKKING, A. WAHID, G. VAN KLINKEN, M. EICKHOFF, YULIANTI, & I. HOOGENBOOM (Eds.), Revolutionary Worlds: Local Perspectives and Dynamics during the Indonesian Independence War, 1945-1949 (pp. 201–215). Amsterdam University Press. https://doi.org/10.2307/jj.399493.12


2001년에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간행된 앤서니 후타바랏(Anthony C. Hutabarat)의 책 『와게 루돌프 수쁘랏만의 생애 이야기와 역사 바로잡기(Meluruskan sejarah dan riwayat hidup Wage Rudolf Soepratman)』를 토대로 와게 루돌프 수쁘랏만의 생애를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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