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캄 너무 어려워"
V넥 니트 원피스를 입고 목걸이를 하려 찾았다. 고리를 채우려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 펜던트 가까이에 줄이 한 번 꼬여있었다. 발레리나 목걸이도 줄이 꼬여 며칠 전에 버렸는데 하나 남은 스와로브스키 목걸이마저 이렇게 꼬여버리다니... 분명 잘 빼서 곽에 넣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보다.
나는 꼬인 목걸이 줄을 풀 줄 모른다. 세심하지 못한 손으로 그걸 푸느라 끙끙대면, 어느새 다가와 해결을 해 준 사람은 늘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목걸이 줄 뿐 아니라 은 악세사리의 색이 거뭇거뭇하게 변하면 다시 본래의 색이 되도록 반짝반짝 광을 내주던 일도 그의 몫이었다. 별거한 지 6개월, 내 목걸이들은 꼬인 채 갈 곳을 잃고 서랍 안에 있다.
어제 한 지인에게 내 처지를 톡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연신 “어쩌다가...”, “세상에...”, “제 여동생이었으면 가만 안놔뒀어요.”라며 연신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남편의 폭행과 폭언, 거짓말로 괴로웠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도 왜 마음 한 편으로 남편 욕을 듣는 게 불편했을까?
아침에 한 와인 카페 회원분이 직접 요리한 조개술찜 사진을 올렸다. 제법 큼직해보이는 백합 조개를 올리브오일과 페페론치노를 사용해 이탈리아식으로 끓여낸 요리였다. 토요일에 아내 분과 노량진 수산시장 데이트를 하고 왔다고 했다. ‘해감은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나도 남편을 위해 봉골레 스파게티를 요리하던 때가 있었다는 게 기억났다.
그는 ‘해감’을 ‘해캄’으로 발음했다. 집에서 비린내가 나는 게 싫어 생선구이도 안먹는 사람이 직접 베란다에 조개를 두고 검은색 비닐봉지로 해감을 시켰다. 이렇듯 냄새나고 귀찮은 일은 내가 하기 전에 그가 먼저 했었다. 그리고는 ‘나 잘했지?’ 라고 물어보는듯한 소년같은 미소를 지어보이곤 했다. 청소, 빨래, 설거지... 나보다 청결에 대한 역치가 많이 낮은 그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를 아꼈다는 뜻도 될 것이다. 다른 선생님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러면 샘은 집안일 뭐 해?”라고 물었고, 그 대답은 ‘요리’였다. 그렇게 매일 저녁 누군가를 기다리며 밥상을 짓는 일이 내 생에 다시 있을까. 며칠 전 가사조사 때 “이 여자는 애들 못키웁니다.”라고 했던 당신이, 그 때의 당신과 같다는 걸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은 새 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기 전 마지막 출근날이었다. 7년 동안 교무실 앞 화장실에 족히 몇 천번은 들락날락 했을텐데 싶어 기분이 이상했다. 교장선생님 퇴임식도 있었는데 그 다음 이어서 전출 교사 인사가 있었다. 단상에 올라가 선생님들께 작별 인사를 드렸다.
“...힘든 일도 있었지만... 교직을 싫어하지 않고 새 학교에 갈 수 있어서 기쁩니다.”
여기서 ‘힘든 일’이란 재작년 가을에 있었던 사건을 가리켰다. 주의력 결핍과 반사회적 성향이 심했던 한 5학년 학생이 친구들과 싸우려던 걸 말리는 내게 분노 조절을 하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있는 힘껏 내 손을 물었고 목도 조르려 했다. 당시 나는 영어교사였고 이 모든 일은 영어 시간에 일어났다. 그 때 그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5학년 부장교사시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아이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 아이의 학부모도 1학년 때부터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으로 유명했던 바, 그분은 그저 ‘하루하루 빨리 지나가 저 아이들을 안 보게 해주세요’ 하고 바라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그 일이 일어난 후에도 나를 적극적으로 돕기는커녕, 방관자의 입장을 철저히 고수했었다.
단상에서 내려와 원래 자리로 돌아온 내게 그 분이 다가왔다.
“그 때 정말 미안했어. 항상 마음이 쓰였어.”
그녀의 무능력함이 미워 그 후 그녀 쪽으로는 시선조차 잘 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그녀의 글썽이는 눈을 보니 나도 이내 미안해졌다.
생각해보니 헤어지고 난 뒤에 선물을 받은 일이 유달리 많았다. 대학교 1학년 생일에 고3 때 남자친구가 익명으로 꽃을 보냈었다. 꽃집 아저씨가 ‘익명’이라고 흘려 적은 카드를 보며 도대체 누가 보낸 것인가 기숙사 룸메이트와 무척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결혼할 뻔했던 7살 연상의 남자친구는 헤어지고 난 다음번 명절에 회사에서 지급된 그릴팬을 우리집으로 보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스무살 때 잠깐 만났던 광고과 오빠는 그 때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다며 한국타이어에 다니게 된 십여년 뒤에 우리집 근처에서 밥과 술을 샀다.
그래서 나는 안다. 남편은 지금의 적의에 휩싸여 보지 못할 뿐, 결국 그도 내게 무척 미안해질 거란걸.
종업식 기념으로 얼굴에 샤넬주사를 맞았다. 피부과 근처에 유명한 바지락칼국수집이 있어 들어갔다. 바지락이 제법 많이 나왔다. 부지런히 껍질 속 살을 발라먹고 있자니, “해캄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다 먹지 않고 나오는데 목이 메었다. 앞으로 바지락이 들어간 음식을 볼 때마다 예전 그 시절이 떠올라 목이 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