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이나 혼전계약서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놓친 그 하나가 무엇이었을까

by 이주희

사주팔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치고, 인생이 평탄한 사람이 잘 없다. 엄마도 나를 낳고 많이 아팠어서 그랬는지 어렸을 적부터 나를 데리고 점집에 자주 갔었다. 그렇게 새해가 되면 으레 신년운수를 가족이 다같이 보러 가는 가풍에서 자라 사주팔자는 인생의 한 부분과 같이 늘 자연스레 곁에 있었다.

내 생년월일을 넣으면 화·수·목·금·토가 골고루 들어있다. 한 쪽에 치우친 것보다 오행이 골고루 들어있는 게 좋다고 했다. 문창귀인이 둘이나 들어 어느 역술인은 ‘평생 펜대 잡고 살겠다’고 했고, 마음먹은 일은 여자아이지만 남자애 못지않게 잘 성취해 나갈 거라 했다. 그에 비해 사주상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는데, 병이 둘이나 있어 허약하고 원진살이 있어 주변을 미워할 수 있다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혼을 늦게 하지 않으면 이별수가 있다 했다.

사주 풀이대로 대입시험도 단번에, 임용고시에도 단번에 합격해 스물넷부터 교편을 잡았다. 부모님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는 “다시는 집에 안 내려온다”고 동생에게 선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른이 넘자 집에서 사주 풀이를 잊어버리셨는지 결혼하라는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다고 반대했던 남자친구 몇몇의 소식을 물으며 되려 “왜 헤어졌냐”고 물으셨다. 물론 내가 이혼하는 걸 부모님 탓할 생각은 하나도 없다. 또래 친구들이 결혼하고 애 낳는 걸 보며 ‘이만하면 오래 버텼다’생각하던 참이었으니. 하지만 부모님이 계속 결혼을 안 하고 있는 걸 일종의 ‘뒤처짐’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 마음 속에 부채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남편을 처음 본 건 오사카로 가는 배 안에서였다. 그 배 안에서 연락처를 준 사람은 남편이 두 번째였다. 어린 시절부터 은연중에 사주팔자를 믿었기에 두 남자의 사진과 생년월일을 당시 자주 연락하며 질문을 하던 역술인에게 보냈다. 첫 번째 남자는 ‘너무 고집이 세다’고 했고, 남편을 보곤 ‘궁합이 참 좋다, 친구처럼 잘 지내겠다’했다. 그 당시 ‘이런 남자가 있는데, 만나봐도 될까요?’라고 물어봐서 ‘만나도 되겠다’란 대답은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문 일이었다.

그 후 미국으로 연수를 갔다 돌아와 자궁경부에 이상세포가 생겨 작은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별로 결혼에 대한 욕구가 없었는데, 갑자기 그런 수술을 하고 나니 ‘이러다가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아볼라’하는 불안감이 무겁게 찾아왔다. 그때 그냥, ‘결혼하자!’라고 결심이 섰다.

남편과 나의 궁합을 봤던 그분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친구처럼 잘 지냈었다. 그 남자가 화를 못 참고 주기적으로 폭발하기 전까진.

궁합을 미리 보고 사귈지 말지를 결정했던 것 말고도 결혼에 실패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웠다. 경우의 수를 생각해 일종의 ‘혼전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었으니까. 이제 그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재산 부분만 따로 작성해 법원에까지 들고 갔었으니, 이만하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독서모임에서 「명리」를 읽는 것을 권유받았다. 회원들 사이에 사주팔자를 직접 공부해 풀어보는 유행이 생겼는데, 여기에 기본이 되는 책이 바로 「명리」라고 했다. 나도 기초편은 다 읽고, 심화편을 읽고 있다. 한 가지 한 가지 보는 법을 알아갈 때마다 내 사주를 놓고 가만히 보면, ‘아! 이혼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구나’ 싶을 때가 많다.

한 대학생 회원이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꼭 변호사를 끼고 효력 있는 혼전계약서를 쓰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혹시 생길지 모르는 나쁜 일’을 방지하는 게 정말 멋있는 일이 아니냐며. 당찬 포부를 발표하듯이 말했다. 내가 써봤다고, 법원까지 갔었다고 얘기해도, 그 말에 담긴 부정적 의미를 캐치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도 그처럼 패기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조심하고, 돌다리도 두드려보았다. 그 시절을 복기해 보건데, 모든 대비를 다 한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한 가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수술을 받았던 그 때 옆에 있는 그이가 누구였더라도 ‘큰 결격 사유’가 없었다면 지금의 남편과 했던 것처럼 결혼을 했을 것이다. 요컨대 나에게 결혼이란 그 당시 자신을 위해서 하기로 마음먹었던 하나의 ‘과업’이었을 뿐, 응당 기본이고 전제여야 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관해서는 고민이 부족했다.

헤어지는 것이 싫고 같이 있고파 결혼을 생각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궁합을 보고, 계약서를 쓰고, 파국으로 치달을 것을 막을 다양한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바보같이. 그가 나를 사랑하니, 나는 그를 덜 사랑하더라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아니, 그가 나를 사랑하건 말건 그것조차 내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남녀의 뜨겁다 식는 사랑이 아니라 ‘친구처럼’ 잘 지낼 줄 믿었었다. 결혼 생활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감정에 감흥이 없었다. 그래 그게 문제였나 보다.

내가 결혼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 남학생도 실패하란 법은 없겠지. 하지만 이보게, 인생은 그렇게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네. 그리고 결혼을 생각할 땐 무엇보다,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먼저 곰곰이 생각해보고 시작하게나...

바보 같았던 내가 별별꼴 다 겪고 나서야 결국 중요한 건 ‘좋아하는 마음’인 걸 알았다고, 너무 당연한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밑줄 그어가며 말하고 싶다. 부디 그에게는, 나와 같은 아픔이 생기지 않길.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지길. 그리고 어쩌면 그런 결혼에는 궁합도, 혼전계약서도 모두 필요 없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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