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행보

살아남아 역사를 쓰는 것

by 이주희

남편의 폭력성이 심해지면서 안 좋은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법원에 협의 이혼 서류를 내고 그에 따른 의무인 부모 교육까지 들었지만, 최종 기일에 출석하지 못하고, 생활비 때문에 내 의지에 반해 복직했을 때였다. 잡힌 기일에 판사 앞에 가서 “네.”라고 하자고 같이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의 반응이 무서워 차마 말을 꺼내 보지도 못했다. 편도 한 시간 반이 걸리는 직장을 매일 출근하며 4시면 모든 아이가 하원한다며 아이들을 찾아가기를 은근히 강요하는 어린이집까지….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다.

실은 이렇게 저렇게 실행에 옮겨보기도 했다.

다용도실에서 찾은 가장 긴 전기선으로 목을 칭칭 감아 욕실에 매달리기만 세 번 정도 했다. 아파트 밖으로 떨어지자니 너무 무서워 그러면 허들을 넘듯 뒤로 넘어지면 덜 무섭지 않을까가 인생 최대의 고민이었다. 남편의 방조로 죽으니 내가 죽으면 남편을 꼭 처벌해달라는 문자를 112에 보내고 떨어지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렇게 살아있다.

내가 그때 죽었다면 누구도 지금의 나처럼 내 이야기를 온전히 할 수 없었을 거다. 오히려 난 남편에 의해 ‘정신 나간 미친 여자’로 둔갑해 아이들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말았을 게 뻔하다. 내가 죽으면, 내 이야기는 아무도 대신해서 해줄 수가 없다.


역사란 살아남은 자들이 쓴 이야기가 아니던가?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제 신화가 되고 싶다.

불에 타고도 살아남은 승리자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잘못과 그에 수반된 갖가지 비열함을 하나하나 되짚고 싶다.

그게 내가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가 아닐까 한다. 신고하고 떨어져 죽겠다는 나의 문자 메시지를 보고 그가 달려오긴 했지만, 내가 걱정되어서 온 것이 아님을 나는 잘 안다. 혹시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던 그 사람의 작은 됨됨이를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게 그때 나를 살려둔 그는 곧 ‘차라리 그때 죽게 놔둘걸’이라고 생각하게 될 테니. 내 굳이 그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살아가진 않겠지만, 그의 죄는 언젠가 그 스스로 져야 할 업임을 마침내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야 말겠다.

마침내 네가 패배자가 되어 모든 역사가 바로 쓰였을 때, 그때 너무 슬퍼하지 말길. 결국 네 벌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니. 난 그저 내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 무너질 너를 보게되길 기다릴 뿐.


혹시나 지금 그때의 나처럼 너무 힘든 나머지 죽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히 말하고 싶다.

죽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살아남아 자기 관점의 역사를 써 가라고.

행복을 위한 행보를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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