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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Feb 10. 2024

부작위, 단추, 홈 CCTV

 지난주 저녁 교원의 징계에 관한 수업을 듣던 중 '부작위'라는 단어가 보였다.

 "부작위가 뜻하는 게 뭘까?"

 보통 사람 같으면 알지 못해야 할 그 단어 뜻을 나는 알고 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죄가 되는 거요."

 남편의 폭력과 가스라이팅으로 죽음을 생각하던 그때 나는 인터넷에서 부작위라는 죄명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왕 죽을 바에는 나를 죽게 한 남편을 부작위로 신고하는 문자를 112에 보내고 죽을 작정이었다. 그게 내가 '부작위'라는 죄의 뜻을 알게 된 연유다.




 내가 자주 자살 시도를 하는 도중 또다시 경찰에 신고를 한 어느 하루였을 것이다. 근로자의 날부터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연휴였다. 도저히 며칠간 같은 공간에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당시 남편에게 제발 두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쌍둥이 중 하나는 남겨놓고 갔다.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니던 그때, 바깥바람을 쐬고 들어와 잠을 재우는데 아이가 갑자기 떠나갈 듯이 울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봐도 답을 잘하지 못하던 겨우 세 살. 소리가 길어지자 119를 불렀고 지갑도 없이 구급차에 난생처음으로 올라탔다.

 아이의 잠을 재우려 들어간 그 방에 달려있던 홈 CCTV 영상분은 나중에 소송을 당한 전남편이 증거로 제출했다. 증거물에 달린 설명은 내가 엄마로서 제대로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큰 아이는 그저 팔이 빠졌을 뿐이고, 야밤에 달려간 응급실에서 당직 의사가 해준 말은

 "지금 엑스레이를 찍을 수도 없으니 우선 돌아가셔서 지켜보시고, 계속 그러면 월요일에 병원 가보세요."

 였다. 돈도 없이 핸드폰만 겨우 가지고 온 나는 바보같이 남편에게 치료비를 보내달라고 전화를 했고, 그때도 마치 죄인이 된 양 엄청난 타박을 들어야 했다.




 밝은 색 코트의 첫 번째 단추가 떨어져 정말 오랜만에 바느질통을 꺼냈다. 처음 코트 택을 자를 때 있었을 단추는 보이지 않아 단추통을 한참 뒤져 그나마 덜 이질적인 크기와 모양의 단추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혼 때 내 옷에 달린 단추들을 손으로 일일이 써놓은 남편의 글씨가 따라 나왔다.


 누군가 내게 결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정했던 사람이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까발려 고자질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위험'이라고 답할 것이다. 만일 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양육권 다툼 중의 그 조사관에게서

 "제가 어머니 비디오 다 봤는데요, 애가 아파하는데 안아주질 않으시더라고요?"

 따위의 말은 듣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전의 다정했던 모습이 변한 이유를 나에게서 자꾸만 찾으려 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지금처럼 정말 좋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결혼 앞에 주저하는 일이 없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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