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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Feb 26. 2024

찻잔의 여행

 엄마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으신다. 덕분에 부모님 댁에 갈 때는 추억 여행을 하곤 한다. 그 집에 십오 년 전에 이사 올 때 이미 조화가 안 되는 그전 집의 의자부터 선물로 받은 오래된 화장품 세트까지, 내 눈에는 이제 버렸으면 하는 물건들 천지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찻잔 세트가 있다. 모양이 예뻐 보여 아주 오래전에 엄마 집서 가져오긴 했지만 그다지 잘 쓰진 않던 클래식한 잔 두 벌이다. 큰 집에서 지금 집으로 이사하며 웬만한 그릇은 다 버렸음에도 이 좀체 쓰지 않는 찻잔 두 개 어떻게 어떻게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커피잔은 이따금씩 남자친구가 커피를 직접 내릴 때 자주 쓰이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그가 처음으로 라떼를 해줬는데, 맛있었다. 사실 커피 맛은 고소하다, 시다, 진하다, 연하다 정도만 아는 이기에 그가 내려준 커피는 다 맛있다.

 이제껏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를 물으며 참 많이 괴로웠던 나는 어디 가고 어느새 '내가 뭘 그렇게 잘했을까?'를 물을 정도로 행복해졌다. 마법처럼.




 주말에 나간 독서모임에서 많은 사람들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떨 때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나의 장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약점은 무엇인지도 늘 염두에 두고 살려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 갖는 무게를 안다. 사랑은 콩깍지이기도 하지만, 유지하는 데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제 안다.


 지난 연애 때까지는 함께 기쁠 때 '이다음은 없겠지.', '다음에 이 시간이 그리우면 어떡하지.'란  마음이 자주 들었다. 마치 언젠가 헤어짐이 반드시 온다는 걸 굳게 믿는 사람처럼.

 요즘도 너무 기쁠 때는 잠시 그런 마음이 드려다가, 이번엔 이다음도, 내년도, 함께 오래오래 있을 거라는 편안함을 믿으려 마음을 기울인다. 그간 내가 자란 만큼의 넓은 가슴을 쭉쭉 뻗어 그에게 내주고 싶다. 그런 내 곁에서 웃기도, 울기도, 쉬기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때때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께,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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