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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Apr 22. 2024

I got your back.

 영어 표현 중에 이런 게 있다. 'I got your back.' 직역하면 '내가 너의 뒷배가 될게.' 정도, 의역하면 '내가 있잖아.'라는 아주 살가운 말이다. 처음 이 말을 배우던 대학원에서 나는 

 "제게는 이런 말을 할 만한 누군가가 없는 것 같아요."

 라는 쓸쓸한 고백을 했다.


 엄한 부모님 밑에 자라는 나는 뭐든 fm대로 해야 하는 줄 알았고 거짓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루는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 빌린 만화책을 분명 갖다 주었는데 반납 처리가 안되었다고 전화가 걸려 왔다. 부모님은 나를 불러 앉혀놓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나는 분명 카운터에 그 두 권을 올려놓았고, 전화가 왔다. 그 이상은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싸늘한 눈빛 속에 나는 부모님이 나를 믿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한 학생의 학부모님이 교장실로 찾아오셨다. 오신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작년에 일어난 특정한 사건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올해 우리 학교 학교폭력 1호 대상 학생 양쪽이 다 작년 우리 반에서 나왔다는 점은 나도 당연히 듣자마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담당 부장이기도 한 내가 학교 폭력 사안 지도를 게을리했다는 억지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잠깐 내려오라'는 교장 선생님 메시지가 보였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어떤 학생도 이런 일로 저에게 와서 직접 당했다거나 피해를 호소한 일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본 일도 없고요."

 어째서 이런 해명을 해야 하는지, 학교폭력 매뉴얼에도 없는 교장 면담을 누가 허락한 건지 화가 났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교장선생님 이하 교감,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이 있는 자리에서 잘 면담하고 가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해 학생이 작년에 학교폭력 신고가 된 점을 들며 꼭 가중 처벌을 받게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들었다. 나중에 진술서를 보니 최근에도 자기 아이가 당한 것과 비슷한 일을 다른 반 학생도 당했는데 왜 교사가 구두로만 지도하고 화해시켰는지 꼬투리를 잡을 기세였다. 


 한참 교장선생님께서 급히 지시한 성폭력 관련 가정통신문을 부랴부랴 만드는 와중에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수업 끝났어? 별일 없지?"

 라고 묻는 엄마에게 나는 차마 오전에 있었던 일을 꺼내지 못했다. 엄마는 내 편이었던 적이 별로 없으니까.

 힘든 일이 생겨서 괴로운 것보다 그걸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지 못한다는 건 훨씬 더 큰 비극으로 다가온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혼자 어른이 된 내가 다시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오늘은 가을비를 혼자 우산도 없이 온통 맞으며 걸어가는 듯한 내가 눈앞에 펼쳐진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마법처럼 뽀송해져 있기를.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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