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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y 03. 2023

흑과 백

"그러니까 이 아이는 선생님의 어떤 부분은 좋고, 어떤 부분은 싫을 수 있다는 걸 몰라요. 이 아이에게 세상은 흑과 백, 딱 두 가지만 있거든요."

 칭찬에 목메다가도 갑자기 돌변해 교사를 때리는 2학년 학생을 두고 대책 회의 자리에서 상담 교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아이가 이렇게 된 주된 이유는 아마도 양육자의 일관성 없는 태도일 거라고도 덧붙이셨다.

 나도 그렇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았다.

 관계가 힘들어지면 자꾸 헤어질 이유를 차곡차곡 모았다. '그래서 내가 헤어지려는 건 당연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좋고 싫음이 아닌 그 중간이 있다는 걸 어른인 나도 자주 잊어버린다.

 체육대회 준비하는데 나오지 않은 옆반 선생님께 화가 나다가도, 또 다른 일로 인해 그 선생님이 좋아질 때도 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나를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땐 때를 쓰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이 담임인 나를 '대체로'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동료 선생님을 '대체로' 좋아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래야 함께 일터에 있는 시간이 덜 괴롭기 때문이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늘 좋고 늘 재미있을 수는 없더라도, 내 이웃과 친구를 대체로 좋아한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너무 싫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대부분 괜찮다. 엄마와 일주일 내내 붙어있지만 않는다면.
 
 나의 마음도 자주 흑 아니면 백 중 하나만 고르려고 하는 경향이 짙다. 어쩌면 그런 단순화가 내게는 편했을까? 최근에는 글쓰기에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너무 바쁘기도 했지만.




 얼마 전 누군가를 애절하게 짝사랑하게 된 스물두 살의 한 여자분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듣고서는 '난 언제 저런 가슴 뛰는 감정이 있었지?' 하고 내 경험을 되돌아보았다. 그런데 그런 시절이 그리우면서도 지금 그런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지나친 이상화는 반드시 실망을 불러온다는 걸 이제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열 번쯤 웃고, 그 사이 다섯 번쯤 짜증 나고 힘들었다면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태도가 결국 인생을 바라보는 눈과 같을 테니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하는 마음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다시 중심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조금은 솟는다.
 흑과 백 사이 어딘가에 놓인 오늘 하루를 사랑하고 싶다.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미움 사이에서 그래도 '사랑' 쪽에 스스로를 가져가본다. 지금 잠깐 미운 누군가에게 예전에 고마웠던 경험을 떠올려본다. 그렇게 흘러가는 지금이 나중에 돌아볼 때 다른 시절보다 조금은 더 반짝였으면 좋겠다. 함께있는 동안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편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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