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혈압은
낮에 혈압 때문에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이전 병원도 대학병원이었는데 거기서 다른 데를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이 방면에 유명하다고 해서 다니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째다. 갈 때마다 그 곳 심장내과는 시간이 멈춘 듯 같은 옷을 입은 같은 얼굴의 간호사와 의사가 있지만, 그들은 나를 마치 처음 보는 이방인인 양 낯선 시선과 함께 이름을 재차 확인해댄다. 그들 앞에 나는 그저 약간의 고혈압이 있는 30대 여성 환자일 뿐이다.
병원에 발 디디는 순간부터 ‘비효율’적인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셔틀버스는 정해진 시간마다 지하철 역과 병원을 순환했다. 본관에 내려 코로나19 관련 문진표를 핸드폰으로 해서 제출한 뒤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본관과 서관 사이 이어진 길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타고 서관 6층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환자와 보호자로 바글바글한 병원 내부를 보며 아픈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드디어 진료실 앞에 왔다. 자그마한 키에 발놀림이 빠른 중년의 여자 간호사가 잠시 앉아있으라고 하더니 좀있다 혈압계로 수치를 재 주었다. 130에 85. 꾸준히 혈압약을 먹고 있는 걸 감안하면 그다지 좋지 않은 숫자다. 그러고 나서 이십 분쯤 더 기다리자 드디어 진료실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노란빛이 도는 크림색 뿔테 안경을 끼고 다소 어두운 피부의 신 교수님은 아마도 최근에 머리를 좀 더 짧게 다듬은 듯 했다. 그리고 환자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건 여전하셨다.
“그 때 드렸던 작은 알약은... 아마 식생활이 많이 짜진 않으신 걸로 보이며... 빼도 될 것 같습니다. 원래 먹던 약 한 알만 드리죠.”
그리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오늘 처음으로 모니터에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6개월 치 드릴까요?”
이제 6개월마다 와도 된다는 뜻이었다. 의사의 얼굴을 보고 얘기를 들은 시간은 겨우 5분이나 되었을까? 그게 다였다.
수납을 하고, 걸어서 근처 약국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는 처방받은 약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으니 병원 바로 옆 약국에 바로 들르는 편이 귀찮지만 현명했다. 언덕에 있는 몇 개의 흰 병원 건물을 등지고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며, 아무도 묻거나 궁금해하지 않던 내 병의 시작에 대해 스스로 상기를 해 보았다. 아가씨 때 난 원래 저혈압이었다. 앉아있다 일어서면 어지러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쌍둥이를 낳으러 갔을 때 혈압이 평균보다 좀 높다고 했고, 출산 후 다시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무채색의 고혈압 환자였던 나는 그제서야 아이를 출산하고 혈압이 생긴 ’엄마’의 빛깔을 띄었다.
‘인생에서의 어떤 경험은 때로 몸에 잊을 수 없는 어떤 흔적을 남기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 한 켠에, ‘만약 내가 아이들을 데려올 수 없다면, 그래도 살아가야겠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내 소명을 너희들을 키우며 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만에 하나라도 법원에서 그러지 못하도록 결론을 내려도, 그래도 난 살아가야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는 도대체 무슨 의미로 산단 말인가. 보통 때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면 두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오늘은 그 확신이 약하다. 보이지 않는 너희들과 보이지 않게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어느새 도착한 약국 안도 온통 무채색 투성이었다. 앉아있는 사람들은 표정마저 잃어버린 듯했다. 기계처럼 처방전을 받고, 계산을 하고, 조제한 약을 내어주는 세 사람의 얼굴에서 핏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1월의 차가운 바깥 공기만큼 약국 안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법원에서 앞으로 내릴 결정도 이처럼 무채색의 차디찬 것일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