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싶은 복작복작함
계란은 사두면 쓰임새가 많다. 후라이를 해서 아침 식사로 먹을 수 있고, 라면에 탁 깨 넣어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땐 계란말이나 계란물 무친 스팸 구이로 그럭저럭 한 끼를 때울 수도 있다.
원룸 오피스텔에서 39평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이제 계란을 사놓고 요리를 좀 해 먹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며칠동안 싱싱한 계란을 사러 큰 마트를 갈까 고민도 했다. 그런데 도무지 요리를 하게 되질 않는다. 공간만 넓어졌을 뿐 이곳도 역시 식구가 없긴 마찬가지였으므로.
토요일 오전, 숙취가 풀리지 않아 분식집에 가서 해장에 좋다고 적혀있던 김치콩나물우동을 시켰다. 그리곤 사주 공부하는 카톡방에 융의 책을 찾아보러 도서관에 갈 거라고 남겼다. 영주가 “융은 왜?”라고 물어왔다. 어제 독서방에서 이야기 나왔던 ‘남성성과 여성성의 결핍’에 대해 찾아보고 싶다고 했다. 이제 편모가정이 될 테니. 다른 한 분이 “쌍둥이 귀엽겠어요”하며 끼어든다. 핸드폰 업데이트 이후 자꾸 추천으로 아이들 옛날 사진이 떴는데, 어제 본 둘이 같이 나온 사진이 생각났다.
“사진 보여줄까요?”
지난 겨울, 그러니까 일 년 전쯤 둘이 상에 앉아 밥 먹는 모습이었다. 꽃무늬 내복을 입은 둥이들은 신난 표정이었다. 첫째는 입을 크게 벌리고, 둘째는 고사리 손을 펴서 입을 막고 있었다. 토끼가 그려진 분홍색 스텐 그릇과 그보다 더 진한 푸시아색 핑크퐁 숟가락이 눈에 띄었다.
자진해서 사진을 올린 건 나였는데 우동을 먹다 말고 눈물이 났다. 참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매 끼 뭘 먹일까 고민하고 차려주던 그때의 바쁜 마음과 치열함이, 복작복작한 집의 온기가 그리웠다. 언제든 냉장고를 열면 계란이 보이던 시간이었다. 전쟁터에 나간 병사가 가족 사진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알 수 없는 적군이 아니라 남편과 싸우고 있는 내가 어쩌면 그보다 더 처절한 처지인지도 몰랐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넓었지만 여전히 적막이 흐르고 가끔 ‘내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음’에 섬뜩할 때가 종종 있었다. 아이들과 떨어진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마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들과 상관 없이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 수 있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을 챙겨 먹이느라 혼자 우아하게 앉아 먹기 힘들다 해도, 부엌이 엉망이 돼도, 다 괜찮으니 아이들에게 끼니를 챙겨주는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함께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인생, 참 달다”를 외칠 수 있기를. 함께 포만감을 느끼기를. 쑥쑥 커가는 너희를 볼 수 있기를. 이제 그만 나에게 돌아와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