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 중이었던 2018년 가을에 쓴 초고를 다듬었습니다.
“세희야, 그럼 엄마랑 한 바퀴 돌고 가자.”
어린이집에 다닌 지 6개월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울상을 짓는 첫째를 달래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14개월 남짓. 처음엔 누워서 우는 것밖에 못했던 아이들이 그동안 흐른 시간만큼 머리칼이 풍성해지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귀여웠다. 유모차 아랫칸에 타고 있는 까무잡잡한 둘째 지희는 다행히 보채지는 않고 가만히 개구쟁이 얼굴을 하고 나를 들여다보았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며 우는 얼굴을 보고싶지 않으니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바람을 쐬어 주어야겠다 싶었다. 세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어린이집에 3월부터 들어갈 수 있다고 연락을 받자, 남편은 좋아했고 나는 걱정했다. 아이들이 돌도 안되어 너무 어리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위치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 1층이었다. 어린이집 원장을 해 본 지인과 맘카페에 이것저것 알아본 후 가는 게 좋겠다고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었다. 첫 날엔 남편과 내가 함께 들어가 한 시간, 그 다음 주는 두 시간. 이렇게 조금씩 늘리다 이제는 점심을 먹고 나서 낮잠을 자고 왔다. 처음 낮잠을 자고 온 날은 아이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다.
엘리베이터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유모차에서 버둥대는 아이들을 보고, “아이고 너희는 쌍둥이라 복 받았네. 자매라 친구도 되고 좋겠다.”라며 부러워하시다 돌연 “엄마가 힘들겠다. 어서 커야 할 텐데…”라며 내 표정을 살폈다. 자주 있는 일이다. 중학생 아들을 둔 아는 언니도 아이들이 이만할 때가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나도 그랬다.
아침 아홉시가 조금 안 된 구월 초, 아파트 밖에 나오니 약간 습하면서도 선선한 공기가 온몸을 한꺼번에 훅 덮친다. 시원하지만 혹시 아이들에겐 춥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 역대급 폭염이 지난하게 진저리를 치더니 몇 번의 비가 온 후 한 풀 꺾였다. 아침저녁으론 이제 제법 가을 느낌이 나려고 했다. 산 밑에 자리한 신도시 아파트라 공기의 변화가 더 잘 느껴지는 건지도 몰랐다.
곧 추석이라는 사실이 잠시 머릿속에 머물렀다 멀어졌다. 친정에서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이번 추석까진 오지 말라고 하셨다. 남편의 폭력이 반복되면서 시댁에는 전화를 하지도, 받지도 않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엔 시댁과 연락을 하지도 않고 명절에 가지도 않을 거라는 사실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지만 애써 다른 데로 생각을 돌리려 했다. 집단 부부 상담 때 들었던 “다 잘할 순 없잖아요.”라는 어느 여자분의 말을 떠올리며.
어느 쪽으로 유모차를 밀까 고민하던 와중에 저쪽 화단 한쪽에 빨간 꽃 하얀 꽃이 활짝 피어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애들이 좋아할까 싶어 가까이 갔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이제 아홉시 넘었겠군’싶어 재활용 쓰레기장 모퉁이를 빠르게 돌아 어린이집 쪽으로 힘껏 유모차를 밀었다. 어린이집은 아홉시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다행히 첫째는 울지 않고 헤어져 갔고, 둘째도 평소처럼 잘 갔다. 성공이다. 아홉시가 땡 하자마자 아이들을 맡기는데도 싫은 내색 없이 매번 반갑게 맞아주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이 새벽 다섯 시에 깨다 보니 아홉 시쯤 되면 배가 무척 고팠다. 한 달 전쯤부터 아이들은 더 이상 낮잠도 오래 자지 않고 새벽 다섯 시 전에 일어났다. 그 때부터 아이들 기저귀 갈고 우유와 이유식을 먹이고 혹여나 걷다 다칠까 따라다니다 보면, 정작 어른들은 아무것도 하기가 어려웠다. 내 오늘 아이들 보내자마자 식당에 가서 꼭 아침밥을 먹으리라.
빈 유모차를 홀가분한 마음으로 끌고 집으로 돌아와 어질러진 장난감을 대충 정리하고, 화장실에 널부러져 있는 똥기저귀를 치웠다. 설거지와 청소는 나중으로 미룬 채 세수만 후닥닥 한 후 옷장에서 집히는 옷을 들춰 입고 차키를 들고 나왔다. 신발은 양말 없이 신기 편한 낮은 검정색 샌들을 신었다. 이번 여름 내내 내 발의 벗이 되어준 이 인조가죽 신발은 인터넷에서 만 원을 주고 샀다. 만원이지만 끈에 금장 장식이 조그맣게 달려 그렇게 싸구려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기 없을 때 신던 많은 신발들은 이제 불편해서 안 신거나, 너무 낡아서 버리게 되었다.
집 근처 래미안 아파트에서 하는 자연담은식당은 아침, 점심, 저녁을 파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아침 식사는 여덟시부터 아홉시 반이다. 그보다 조금 늦는다고 밥을 매정하게 안 줄까 싶긴 했지만, 나는 늘 정해진 규칙은 지키는 사람이었고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인 지금도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손목시계의 시간은 벌써 9시 2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식당 앞에 주차를 한 후 시계를 보니 아홉시 이십사 분. 세잎이었다.
오늘 아침 메인 메뉴는 참치김치찌개였다. 반찬은 열무김치와 계란후라이, 오뎅연근볶음. 특출난 밥상은 아니지만 피로한 엄마의 위장을 채우기에 더없이 근사한 한 끼였다. 아침은 삼천오백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아침밥을 ‘판다’가 아니라 ‘준다’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혼자 조용히 먹고 싶어 찻길 쪽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네 시간 동안 애들과 씨름하다 급하게 나온 내 행색이 다른 사람들 눈에 남루해 보일 것 같아 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숟가락으로 슴슴한 김치찌개를 뜨다 산산이 부서진 게 아니라 제법 통으로 들어간 참치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집에선 밥을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지 오래였다. 적당히 양면이 잘 익은, 하지만 안은 촉촉한 따뜻하고 노오란 계란후라이를 흰 쌀밥과 함께 먹으니 세상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푸릇푸릇한 열무김치와도 잘 어울려 한 입 한 입 씹을 때마다 다시 힘이 나는 듯했다.
밥을 부지런히 먹다 요즘 회사일이 바쁘다며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출근하는 모습이 마치 아이들 둘과 나를 버려놓고 일터로 도망가는 것 같았다. 그리곤 그에게 목이 졸리던 일이 기억났다. 그의 손에 무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 느껴진 바닥의 차가움, 목을 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뜨거워지던 내 핏줄, 허덕여지던 숨, 이러다 정말 숨통이 끊어지겠다는 죽음의 공포... 그 기억은 검은 그림자의 형체를 하고 있었다. 차갑고 축축한 형질의 그것은 나보다 더 큰 키를 하고 소리없이 곁에 와서 어느샌가 섬뜩하게 내려다보곤했다. 그 어둠에 고개 들어 응시하노라면 내 마음도 검은 빛으로 물들어 가는 듯 했다. 몸이 바르르 떨렸다.
밖으로 지나가던 버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의 몸통에 커다랗게, ‘체계적인 난임 시술 전문 OO병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저런 병원에서 많은 돈을 쓰겠지, 결국 이렇게 되려고. 결혼을 했으면 아이는 당연히 낳는 거라고 예전의 나처럼 생각하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면 고된 육아가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 한 번 결혼하면 이혼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어쩌면 누군가와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내 깜냥에 가당치 않은 일이었을지도. ‘다른 사람들이 다들 그러고 사니까’라며 그 ‘평범한 인생’의 난이도에 대해 진지하게 가늠해보지 않았던 것은 결국 내 잘못이 아니었을까?
다시 밥과 국 건더기를 입으로 가져가는 기계적인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잡생각이 달아날 것 같아서였다. 어쨌든 아침밥은 직원들이 수다 꽃을 피우기 전에 마치고 싶었다. 마침내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입에 넣자 ‘이렇게라도 아침밥을 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세 끼중 최소 한 끼는 제대로 먹은 셈이었다. 그리고선 이 식당의 멋진 점 중 하나인 자판기 아메리카노를 뽑아 홀 안의 빈 테이블에서 느릿느릿 마시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없기에 가능한 '느림'의 행복이었다.
잠시 앉아있다 아침에 왼쪽 치골을 쑤시는 급격한 통증이 두 번이나 있었던 게 기억났다. 제왕절개 수술 부위 바로 밑이었다. 혹시나 자궁이나 방광 같은 데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렸을 때 방광염으로 입원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아기를 보다 보면 제 때 화장실에 가기가 어려웠다. ‘식당 다음은, 병원이군.’ 전화기를 들었다. 아직 열 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전화를 걸어보니 동네에서 유일하게 산과를 보는 병원은 이미 문을 열었고, 그날은 오전에만 여자 의사가 계시다고 했다. ‘서둘러야겠군.’ 식사 후의 포만감을 편안하게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채 반도 비우지 못한 종이컵을 퇴식구에 올려놓고 아까 주차했던 곳을 향해 다시 급하게 걸어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