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환했구나, 그때는 몰랐지
첫 강습을 코 앞에 두고 수경을 고르던 날
몇 개의 페이지를 넘기며
자꾸만 보이던 단어가 있다.
미러, 그리고 노미러 ㅡ
mirror?
렌즈 표면이 빛을 반사해서
수경 속 내 눈을 숨길 수 있냐 없냐의 차이.
당연히 부끄러우니까 미러지!
이건 단 1초도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아주 쉽구만. 후후.
우리 왕초보반 모두가
미러 렌즈이거나, 까만 렌즈였으므로
나의 수영 세계에는
선글라스 같은 수경이 전부였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던 날이었다.
엥, 뭐지?
늘 똑같은 건 지나치기 마련인데.
눈동자가 만났다.
눈이 마주쳤어.
?!
그 이후로 몇 번
자유수영을 갔다가
노미러이다 못해 정말 투명한
수경의 영자들을 보았다.
멋진 수경들은 죄다 어둡던데,
분명 잘하시는데
왜 아이들이 낄 것 같은 수경을 끼시는 걸까?
그때는 몰랐다.
고인물들의 마음을.
무엇을 하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수력이 조금씩 채워질수록,
아는 게 생겼다.
아는 게 생긴 만큼,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나도 멋진 수경이 갖고 싶어졌다.
큰맘 먹고 비싼 수경을 구입했다.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다.
그다음 수경을 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껏 고수 느낌이 나는
레이싱 수경들은
빛 투과율이 좋지 않아 시야가 어둡다.
애초에 처음 들어간 물이
나의 기준이 되었다.
난 늘 어두운 물속을 헤엄쳐왔고
물속의 명암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네 번째 수경은 남편 눈치가 보여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경을 샀다.
그리고 들어간 물속에서
심봉사가 눈 뜬 것처럼...
내 동공이 커졌다.
아니, 수영장이 어두침침한 게 아니었잖아?
밝은 물속을 헤엄치자니
몸이 가벼워졌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로. 하하
그 이후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나도 모르게 밝은 수경을 집어 들게 되었다.
밝은 수경과 함께라면
힘든 강습도 두렵지가 않다.
마침내
수영 3년 차,
노미러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내가 웃기다. 참나.
결국 고인물의 투명 수경은
단 일초라도 더 환한 물속을 즐기려는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2번 회원님은
부끄러워서 못 낄 것 같다고 했지만,
안 껴보셔서 그래요...
이제 나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예쁘고 멋진 수경을 낀다.
하지만 같은 겨울이라도
코트를 입다가도
한파에는 패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한 번 그 환함을 맛보면
그전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밝은 물속을 더 선명하게 헤엄칠 거야!